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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 다정함 Nov 07. 2023

노동하지 않는다는 죄책감

우리는 어떠한 노동을 숭배하고 있는가?

나는 작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딱히 수입이 고정적인 직업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있다. 꽤 운이 좋기 때문이거나 돈을 많이 필요로 하는 삶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인 런던 시민보다 크게 돈을 많이 쓰지 않아 큰돈을 벌 필요성은 딱히 느끼지 못한다. 물론, 예측불가능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늘 한구석에서 나를 괴롭히고 있다.


하지만 불안정한 직종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은 순간들은 불필요하게 자주 찾아온다. 누군가는 너무나도 바쁘게, 많은 돈을 벌면서 살고 있는데, 나는 적은 돈을 벌면서 바쁜 시기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삶은 요가를 하고, 저녁식사를 만들고 작업실에 가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전시를 준비하거나 기금 지원서를 쓰며 보낸다.


누군가는 나에게 그러니까 그 모양 그 꼴이지 하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기금 신청을 한 개 할 때 두 개를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작품 생산을 하는 일도 좀 더 전투적으로, 판매지향적으로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남는 시간에는 요가 대신 투자 공부를 해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노력을 해야 할지도. 하지만 딱히 전업작가를 꿈꾸지 않는 나에게 그런 삶은 고달프게 느껴진다. 미래의 돈에 대한 걱정도 늘 머릿속에 존재하고는 있지만 미래의 내가 어떻게든 해결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다. 때로는 돈이 안 되는 창조 행위를 시간을 비워두기보다는 다른 일을 해야 하지 않나 싶지만 창조 행위의 즐거움을 쉽게 놓지는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직업은 현재까지는 '작가'다.


나는 꽤 오랫동안 노동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고심해 온 듯하다. 예술활동을 노동의 범주에서 사고하는 문제 그리고 무임금 혹은 저임금 문제가 심각한 예술계의 문제, 예술과 예술 이외의 노동의 차별성 등을 작업의 주제로 삼아왔다. 나는 예술도 노동이다,라는 것을 은연중에 주장해 온 듯한데, 최근에는 그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예술을 노동의 범주로 들여왔을 때 내가 느끼는 창작의 즐거움은 줄어든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어쩌면 내가 너무 어떠한 행위를 정의 내리는 데에 초점을 크게 두고 있었는지는 모르나, 결국 나에게 있어서 예술은 노동이 되기가 어렵기에 나는 나 자신이 가짜 노동자처럼 느껴진다. 결국 노동이라는 것은 돈을 목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돈을 못 버는 노동자, 스스로 부여한 이 직책에 대한 유효성을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고 죄책감에 싸여 있었다.


하지만 나만 가짜 노동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책 가짜 노동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일을 하지만 자신의 노동의 무가치함에 괴로워하고 있다는 연구를 보여준다. 직장에서 딱히 할 일이 없어 그 상태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으나 자신의 시간을 무가치한 일을 하는데에 보내며 존재론적 위기에 빠지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내 주변에도 소위 좋은 직장을 다니던 사람 중에 직장을 바꾸고 새로운 일을 시작한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어쩌면 내가 하는 노동이 아주 가짜노동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생계를 책임지는 노동은 아니지만, 나는 예술을 향한 나의 비관적인 태도 안에서도 희미하게나마 맥을 유지하는 예술의 의미와 술래잡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정말 이 일을 해서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나의 노동을 완전히 긍정하기에는 사회적 시선과 편견이 내 안에 깊이 자리 잡아있기는 하지만. 노동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났을 때, 생계에 구애받지 않는 노동을 할 때에, 이 모든 가짜노동을 끝냈을 때,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노동을 시작할 수 있을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그때는 나의 예술을 진정한 노동으로서 긍정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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