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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Sep 23. 2023

산책

내 방 반지하 창문 너머에 사람들의 발소리가 그치면 나는 그제야 비로소 산책을 고민한다. 후줄근한 옷을 한 겹 더 걸치고, 내놓을 만한 쓰레기는 없는지도 살핀다. 마지막으로 마스크를 쓰는데 그 이유는 면도가 안 된 얼굴을 감추기 위함이다. 문 밖에 세워진 자전거를 들고 계단 반 층을 오른다. 마침내 자전거 페달을 밟고 현관문을 빠져나가려는 순간 B102호 우체통에 꽂힌 세금 명세서를 발견하고는 한숨을 푹 쉬고야 만다.     


자전거 페달을 밟자 밤공기가 이마에 와서 부딪친다. 새까만 망원동이다. 코로나가 한풀 꺾였다지만 아직 밤늦게까지 영업하는 가게는 잘 없다. 집에서 먼 대각선 맞은편에 위치한 빵집 또한 불이 꺼졌다. 오늘 낮에도 저기 빵집 앞은 빵을 사가려는 줄이 아주 길었을 것이다. 망원동에선 낯선 풍경이 아니다. 그 정도로나 핫한 동네에 산다고 부러워들 하지만, 정작 나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다 떠난 지금쯤에야 산책을 나오는 겁쟁이이다.     


‘건물 또 짓네.’ 혼자 중얼거리다가 아스팔트 골목 저 끝에서부터 물비린내가 난다. 한강에 거의 도착했음이다. 내 집에서 한강으로 가는 길은 수많은데 어느 길로 가나 자전거로 오 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이제 터널만 통과하고 나면 한강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 건너편에 위치한 편의점에서 벌써 북적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도착하고 보니까, 삼삼오오 바닥에 앉아 캔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로 한강이 마치 포장마차처럼 변했다. 가게들이 일찍 문을 닫아버리자 전부 여기로 몰려온 것이다. 나는 당장 페달을 멈췄다. 용기 내 시작한 산책을 망쳐버리기가 싫어서, 이번엔 타고 왔던 길과 다르게 한번 돌아가 보자 하고 자전거를 반대로 휙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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