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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백 Mar 22. 2022

멋진 신식 아파트와 쓰러지기 직전의 집

누가 어떻게 사는가

어느 날 친구 집을 찾아가던 중, 새로 지은 집들 가운데 다 쓰러져가는 집을 봤다. 나무를 대충 세워서 기둥을 만들었고 판자로 지붕을 올렸다. 군데군데 구멍이 나있었고 비닐 같은 걸로 땜빵을 해놨다. 부엌이랄 게 없어서 마당에서 불을 지피고, 옷을 빨고 있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집’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모습이었다. 번듯하게 쌓아 올린 벽돌집들 사이에 덩그러니 있으니 더 외로워 보였다.


운전 중이던 남편에게 “저 집은 나중에, 우기에 비 많이 오면 무너지겠는데… 어떻게 살지?”라고 말했더니, “저 사람들이 그걸 모르겠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무너질걸 알지만 어쩔 수 없으니 저렇게라도 짓고 현재를 사는 거라고.



비가 와서, 바람이 불어서, 집이 무너지고 날아간다는 상상을 살면서 해본 적이 없었다. 내 집에 도둑이 들 거라는 생각도 심각하게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나의 안전은 내가 인지하지 못했지만 잘 보장되어 있었던 거다. 저기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어떤 마음일까. 이건 평생 안전함 속에서 살아온 나로서는 감히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빈민가니 판자촌이니 뉴스에서나 들어본 이야기이고 그럴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은 들었지만, 사실 그때뿐이었다. 내 일이 아니니까, 내 친구가 아니니까, 주변 사람이 아니니까… 하면서  관심을 껐던 것 같다.



그런데 우리 집 가사도우미가 저런 집에 산단다.

지금 우리 집에서 내려다보면 보이는 판자촌 같은 곳이 있는데, 집이 어디냐 물어보니 거기를 가리켰다. 그것도 열명이 넘는 대가족이 산단다. 갑자기 알아서는 안될 것을 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 얘가 청소해주는 우리 집은 남편과 나, 강아지 세 식구가 살기에는 너무 크고 넓다. 그런데 나는 늘 벽에 벗겨진 페인트가 보기 싫었고, 따뜻한 물이 안 나와서 짜증이 났고, 집안 곳곳에 부서지고 고쳐야 할 것들만 눈에 들어왔던 거다. 새로 짓고 있는 아파트를 보며 나도 저런 깨끗하고 ‘모던’한 집에서, 내 ‘취향’에 맞는 물건들을 채워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상했다. 감사하는 마음과 반성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신식 아파트에 살고 싶어 했던 마음이 잘못된 건 아니지 않냐는 억울한 마음이 울컥하고 올라왔다. 사람은 누구나 다 더 좋은 것을 갖고 싶어 하니까!


하지만 그냥… 뭔지 모르게 계속 이상했던 거다. 괜히 미안한 마음, 안쓰러운 마음. 그러다가도 아니, 내가 뭔데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을 불쌍하게 생각하나? 이런 마음도 들고 말이다.


재벌도 아닌 내가, 중간도 아닌 저 아래 어딘가에 끼여서 빈부격차를 위아래로 몸소 느끼려니, 알 수 없는 마음과 이런저런 생각이 가득했다. 집이라는 게 대체 뭔지, 어떤 게 좋은 집인지…



며칠 전 시부모님 댁 근처 길거리에서 노숙 중인 할아버지가 거기서도 본인의 옷으로 칸막이를 만들어 화장실을 따로 만든 것을 보고 알았다.


누구에게나 최소한의 안전과 인간다움이 보장된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내가 집을 사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기로 했다. (당연하지만) 가사도우미에게 월급을 꼬박꼬박 잘 챙겨주기, 내가 가진 것들 중 필요 없는 것은 물어보고 나눠 주기.


시어머니가 매주 요구르트를 만들어서 그 노숙자 할아버지를 포함한 주변 이웃들에게 나눠주는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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