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와 미국산 소고기
아내와 함께 장을 보면서 구입한 미국산 소고기.
선입견 때문이었을까. 생활비가 빠듯하더라도 가능하면 국산 한우, 아니면 적어도 호주산 소고기를 사 먹곤 했다.
확실히 미국산 소고기는 저렴한 가격만큼 그 맛 또한 한우와 큰 차이를 보인다. 당연히 한우의 맛이 월등히 좋았던 것이다. 사람들이 왜 한우 한우 하는지는 누구인들 직접 먹어보면 그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언제쯤 한우 코너에서 가격 걱정 없이 품질 좋은 소고기를 마음껏 사 먹을 수 있을까 내심 씁쓸해하던 중 행복이 무엇일까를 잠시 고민해 보게 되었던 것 같다.
행복의 본질은 아마도 단순히 한우를 마음껏 사 먹을 수 있는 여건이 되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뭐 정신 승리하거나 다른 핑계 댈 것은 사실상 없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한우를 마음껏 사 먹을 수 있는 재력이 있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건 좋은 거다.
그러나 행복을 정의함에 있어서 조금 더 깊이 있게 내려가 보자면, 단순히 그래서 오는 행복이라기보다는 그렇지 않더라도 오는 행복감에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 볼 필요는 있어 보인다. 꼭 그래야만 오는 것이 행복의 정의라면, 그렇지 않을 때는 불행해지기 십상일 수 있다.
아내의 퇴근 시간이 대부분 나보다 늦다.
나는 아내가 퇴근하는 시간에 맞추어 찌개를 끓이고, 밥을 짓고, 김치를 포함한 채소 몇 가지를 씻어서 세팅해 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가 퇴근하여 활짝 웃는 얼굴로 집에 들어온다.
아내와 나 사이에는 국산 한우가 아닌 미국산 소고기가 놓여져 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행복을 꼭 정의하지는 못하는 듯 보인다.
아내를 맞이한다는 것. 음식을 준비해 놓는다는 것. 무사히 하루를 마무리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저녁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준비해 준 것이 고마웠는지 설거지는 내 몫이라며 팔을 걷어붙이고 싱크대로 향하는 아내의 뒷모습과 같은 것들.
물론 좋은 품질의 소고기였다면 더욱 괜찮았겠지만, 우리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충분히 행복했던 저녁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