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기대하는 낭만적인 유럽은 아닐지라도
오스트리아 그라츠Graz에서 살 때였다. 외국인 친구들에게 “한국은 이렇지 않아, 그라츠는 너무 조용하다, 한국에선 상상도 못해” 하니까 포항공대 다니는 친구가 ‘포항은 그라츠 같아…..’라고 말했다.
적절한 교환일기를 연재 하면서 ‘오스트리아에는 이런 거 없어요’하자 몇몇 사람들이 ‘아닌데요, 있는데요’ 했다. 그런 사람들은 100% 빈Wien에서 살았던 사람들. 내가 그라츠에 살던 당시 그라츠에는 kfc, 버거킹, 스타벅스, lg서비스 센터 같은 건 없었다. 아마 지금도 없을 것이다(스타벅스 take out이 중앙역에 생겨서 엄청난 논쟁이 있었다). 또 내가 우리과 최초의 동양인이어서, 지나갈 때마다 모르는 애들이 나에게 인사를 해줬다. 길에서도 사람들 심지어 어린아이들도 눈만 마주치면 웃으면서 나에게 인사를 해주었는데, 빈 사람들은 차갑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빈에서 산 사람들이 생각하는 오스트리아인과 내가 생각하는 오스트리아인은 몹시 다를 것이다.
그 나라의 수도는 그 나라를 얼마나 대표할까. 나에게 서울=한국이었다. 나는 평생을 서울에서 살았다. 유럽 애들에게 한국 이야기를 할 때 서울을 기준으로 얘기했다. 문화시설의 80%가량이 서울에 몰려 있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알면서도(1) 그런 엄청난 일반화를 하다니 참 무식했다.
난 유럽에서 줄곧 인구 30만 미만의 도시에서 살았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과 독일, 오스트리아 얘기를 하다보면 종종 민망하다. 그들이 기대하는 것과 다른 유럽을 난 얘기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덜 낭만적이고 더 못생긴 도시에서 더 불편하게 산다. 하지만 어쩌면 이게 진짜 독일인, 오스트리아인의 삶이지 않을까(2).
그리고 이 삶이 나쁘지 않다.
덕분에 도시의 인프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어느 도시를 여행 가든 문화적 기회와 교통 수준, 그리고 주요 산업을 찾아보게 됐다. 관광이 아니라, 삶을 위해서 이 도시에서 산다면 어떨까? 무엇이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까? 도대체 왜 빈은 8년 연속 살기 좋은 도시(3)로 뽑힌거지? 무엇보다, 지방의 청년들이 그 지방에 머물게 하는 요인이 무엇일까?
천만 도시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고 그게 내 삶인 줄 알았는데, 베를린을 여행가서 또 느낀 것은 난 더 이상 가게가 많고 지하철 있는 도시에서 못 살겠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농부가 체질이야. 새벽에는 경운기 몰고 오후에는 공부하는 삶이 나에게 맞는 삶인 것 같다.
(1)몇 년전에 찾아본 통계로 지금은 다를 수도 있다. 문화시설은 영화관부터 갤러리까지를 말한다.
(2)인구 30만의 도시 그라츠는 오스트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많은 오스트리아 친구들이 그라츠에 와서 사람이 너무 많아 충격 받았다고 한다...
(3)Mercer city Ranking. 치안(소매치기는 그래도 몹시 많음), 문화적 인프라, 직업 기회, 성공적인 주택 정책 덕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