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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코리 Jun 23. 2020

6월, 오키프의 파인애플 꽃

파인애플은 신대륙을 탐험하면서 발견한 식물이다. 솔방울을 닮았는데 사과 맛이 난다하여 파인+애플로 명명했다. 원래 이름은 아나나스. 새로운 것을 향한 누군가의 도전정신으로 맛있는 과일이 세계에 소개되었다.

파인애플과 관련된 도전을 한 화가가 있다. 바로 미국의 화가, 커다란 꽃을 화면 한 가득 그린 그림으로 미술사에서의 위치를 공고히 한 미술가, 조지아 오키프다.


1938년 여름, 오키프는 하와이안 파인애플 회사로부터 한가지 제안을 받았다. 하와이의 여행 경비를 부담할 테니, 파인애플 회사 광고에 쓰일 그림을 두 점 그려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51세였던 오키프에게는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이미 꽃그림으로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올랐지만, 뉴멕시코에서 그리기 시작한 새로운 시리즈가 그닥 좋은 평을 받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던 데다 남편의 계속되는 외도로 골머리가 썪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키프에게는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고,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그려도 좋다는 조건으로 파인애플 회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와이 여행은 오키프에게 새로움 자체였다. 처음 가보는 섬이기도 했거니와 작업의 전환점이 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매일 접하는 이국적인 풍경과 처음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처음 먹어보는 생선회와 처음 신어보는 샌달까지 오키프에게는 낯설고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러나 여행은 그리 순조롭게 흐르지 않았다. 파인애플 회사는 자신들의 농장을 보여주었고, 오키프는 농장 근처에 자신의 거처를 마련해 달라 요구했다. 회사는 농장은 여성 화가가 노동자들이 머무는 곳에서 숙식을 하는 일은 부적적하다며 오키프의 요구를 거절하였고, 오키프는 여기에서 빈정이 상했다. 그녀 자신이 노동자 출신이었으니까. 게다가 파인애플 회사는 파인애플을 자르는 것은 남성의 일이라며 오키프에게 잘 잘라진 파인애플 속살을 제공하였다. 회사로서는 멀리서 온 손님에게 예의를 표하고자 하는 의도였겠지만, 오키프라는 손님에게는 적절한 행동이 아니었다. 그간 여성 화가로서 미술계 내외부츼 편견에 지쳤던 오키프였기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했을 수도 있다. 이리하여 파인애플 회사와 오키프는 약간의 신경전을 가졌고, 오키프는 스스로 운전하며 하와이의 네 개의 섬을 탐방했다.

오키프는 처음 보는 하와이 풍경에 흠뻑 매료되었다. 약 스무 점 정도의 하와이 풍경을 담은 캔버스를 보면 하와이에서 그녀가 받은 감동과 감탄이 전해 온다. 그 중 <Hibiscus>는 하와이 하면 생각나는 대표적인 이미지일 것이다. 본토 미국인이었던 오키프에게도 이는 마찬가지였나 보다. 하와이의 푸른 바다를 연상시키는 푸른 색을 배경으로 하늘 거리는 꽃잎들이 화면 가득 자리한다. 걱정 하나 없을 것 같은 느낌의 꽃. 하와이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휴양이 떠오르고, 거기에 딱 맞는 수종과 스타일의 그림이다. 여러 복잡한 일들이 벌어지는 삶의 현장을 벗어나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있는 여행객으로서의 기대와 즐거움이 한껏 느껴진다. <Hibiscus>는 크리스티 경매에서 4.8밀리언 달러에 판매되었다.

Hibiscus, 1939

1939년 4월, 9주 동안의 여행을 마치고 오키프는 뉴욕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약속대로 파인애플 회사에 그림 두 점을 보냈다. 파파야와 헬리코니아였다. 그림을 받은 파인애플 회사는 당황했다. 아무거나 그려도 된다고 했지만 파인애플과 전혀 상관 없는 그림을 그려 보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파파야는 경쟁사의 대표수종이었다.

“Papaya Trees – lao Valley,” 1939, oil on canvas, 19 x 16 in, Honolulu Academy of Arts


담당자는 당장 파인애플을 뉴욕으로 보냈다. 오키프의 마음을 돌려 광고에 사용할 수 있는, 이왕이면 파인애플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그림을 다시 받기 위해서였다. 회사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노력이었다.

파인애플은 서른 여섯시간 만에 오키프의 작업실에 배달되었다. "아름다운 식물이다. 초록색의 긴 칼날과 같은 이파리로 이루어져 있는 이 식물의 윗부분에서 파인애플이 자란다. 나는 이를 전혀 몰랐다." 파인애플을 본 오키프의 소감이었다. 파인애플 농장까지 견학 갔던 오키프가 파인애플의 외형을 열심히 본 적이 없다는 것이 의외일 수 있다. 그러나 오키프는 꽤나 고집스러운 성격이었다. 파인애플 농장에서 마음이 상한 후 파인애플에 눈길도 주지 않았을 만큼.

결과는 성공이었다. 오키프는 파인애플을 그렸다. 오키프의 기법은 그녀가 늘 그리던 방식과 동일하다. 대상을 화면을 꽉 채울 정도로 가까이서 들여다보는 것. 사람들이 꽃을 자세히 들여다 보도록 하고 싶었다는 바람에서 온 그녀만의 방식이었다. 대상으로부터 매료 당했던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싶어서였을 거다.




오키프의 파인애플 그림은 광고로 사용되었다. Saturday Evening Post 와 Women’s Home Companion에 실려서 미국의 각 가정에 배달되었다. (광고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그 파인애플 회사는 DOLE이었다.)

1940년 2월 1일, 스티글리츠의 갤러리에서 전시된 하와이의 열대수림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그린 20 점의 작품들도 호평을 받았다.

사실 오키프가 하와이에서 그린 그림들은 하와이 자생지 식물은 하나도 없다. 파인애플 또한 하와이가 고향이 아니다. 오키프를 비롯한 평범함 사람들이 하와이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히비스커스 등도 동인도와 중국이 원산이고, 플루메리아도 콜롬비아가 원산이다. 뉴욕 식물원의 전문가는 하와이의 자생식물로만 정원을 만든다면, 오키프의 그림들과는 사뭇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https://news.artnet.com/exhibitions/georgia-okeeffe-hawaii-botanical-gardens-1289351)


이후 오키프는 적어도 한 번 이상 하와이를 방문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직접적으로 하와이에서 마주친 식물을 그린 것은 더 이상 없다. 1940년 이후의 그림도 하와이 방문 이전부터 그렸던 뉴멕시코의 풍경이었다. 가장 직접적으로 하와이 방문의 영향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선인장 꽃 클로즈업해서 그린 그림이다. 파인애플 꽃을 그렸던 경험을 살려, 뉴멕시코에서만 볼 수 있는 선인장의 꽃을 그린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그렇지만 아마 오키프에게 파인애플 꽃의 의미는 특정 그림이나 소재에 국한되지는 않을 거다. 하와이를 방문한 이후로 오키프는 동남아시아와 인도, 중동과 이탈리아를 여행했다. 78세에 7미터가 넘는 대형 작품을 그렸으며, 80대 중반 시력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도자 작품을 시도했다. 눈 감는 날까지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파인애플 꽃은 오키프의 멈추지 않는 도전정신, 새로운 것을 끊임 없이 시도하는 용기와 열정을 의미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파인애플에 대한 재미있는 사실 한 가지. 집에서 파인에플 머리 부분을 잘라 밑둥이 물에 닿게 몇일을 놔두면, 뿌리가 자라기 시작한다. 그 때 화분에 옮겨 심으면 파인애플이 쭉쭉 자란다고 한다. 5년 정도 후면 파인애플 열매를 먹을 수 있다. 마트 가면 바로 사먹을 수 있는 파인애플이지만, 이런 수고를 들이는 것은 낯선 곳에 자리 잡아 열매 맺는 파인애플처럼, 그리고 그것을 그린 오키프처럼, 새로운 도전에 대한 용기를 매일 얻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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