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주인공인 풍경 사진

#PODT 28

7월 출사는 파주로 가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파주는 회원들이 여러 번 가본 곳이니 새로운 장소를 찾아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얼마 전 우연히 알게 된 서천 판교마을이 떠올랐다. 판교라는 지명은 하천을 건너기 위해 판자로 다리를 놓았다는 것에 유래한다고 했다. 사진으로 보았던 이곳은 마치 1970년대 내가 살던 중림동 거리의 모습 같았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멈춘 마을’로도 불린다. 판교마을과 그곳에서 멀지 않은 아산 외암마을을 묶어서 AI에게 당일 코스 사진 출사 일정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점심식사를 할 식당을 포함해서 너무나 멋진 출사 일정이 만들어졌다. 나는 이것을 단톡방에 올려놓았다. 사진 수업의 선생님이 잠시 후 댓글을 달았다.


“좋은 제안을 해 주셨군요!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고민을 해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ㅎ”


토요일 출사를 앞두고 거의 1주일 내내 폭우가 쏟아졌고 출사 당일도 비가 많이 온다는 예보가 있었다. 출사를 취소하자고 제안하는 회원들도 여럿이었다. 하지만 매번 그랬듯이 강행하기로 했다. 이제까지 날씨가 나빠서 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한 적이 없다는 믿음 때문이었을까? 폭우나 폭설이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어도 출사 당일엔 언제 그랬냐는 듯 날씨가 맑아졌다. 그래서인지 우리 아특사에 날씨 요정이 있다는 말이 돌았다.


출사 당일이 되었다. 만남의 광장에서 회원들이 만나 미니버스를 타고 서천을 향한다. 고속도로에는 폭우가 쏟아진다. 차들은 비상등을 켜고 달린다. 이런 날 출사를 가는 것이 제정신인가 라는 생각이 마음 한편에 든다. 서천 판교마을에 도착했을 때도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어서 회원들이 우비를 입었다. 나도 며칠 전 편의점에서 장만한 천 원짜리 일회용 우비를 꺼내 입었다. 요즘 카메라는 물에 담가도 되는 완전 방수는 아니지만 비를 가끔 맞아도 문제없이 작동한다. 5분쯤 지나서 비가 멈춘다. 이곳저곳을 천천히 걸어 다니다 보니 ‘시간이 멈춘 마을’이라는 말이 공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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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초등학교 시절 서울 변두리 거리로 돌아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극장에는 ‘저 하늘에도 슬픔이’, ‘별들의 고향’, ‘미워도 다시 한번’ 영화 포스터가 붙어있다. 극장 건물은 낡았고 문도 닫혀 있어서 지금도 영업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집집마다 문패가 걸려 있고, 대부분 두 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한 곳에는 이름 위에 작은 글씨로 ‘우리 아들하고 살어유’라는 글이 보인다. 성이 다른 것으로 보아 어머니와 아들 이름으로 짐작되었다. 오랜 세월을 견뎌낸 양철 지붕, 창문, 나무로 만든 벽들이 적당히 바랜 원색의 페인트와 어울려 멋진 찍을 거리를 만들어 준다. 회원들은 그 어떤 출사지보다 이곳이 마음에 든다고 한다. 선생님이 식당으로 모이라고 부탁한 시간을 30분이나 훌쩍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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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마을의 또 다른 특징은 주민들이 외부 사람을 대하는 태도였다. 지방에 출사를 여러 번 다녔지만 주민들이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두리번거리는 사람들에게 호의적으로 다가오는 경우는 거의 못 보았다. 경계의 눈빛으로 ‘뭐 하시는 분들이에요?’ ‘왜 찍으시나요?’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런데 판교마을의 주민들은 ‘저희 마을에 와 주셔서 고맙네유’, ‘천천히 찍다 가세유’ 라고 말해 주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도 웃으면서 친절해 답해 준다.


오후 일정은 아산에 있는 외암마을이다. 이곳은 약 500년 전부터 부락이 형성되었고 고택과 초가 돌담(총 5.3km) 정원이 잘 보존되어 있다. 매년 여름에 능소화가 돌담에 어우러져 피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나는 수년 동안 외암마을을 사진으로만 보다가 처음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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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무를 맡은 내가 입장료를 사려고 하니 폭우로 인해 개방되지 않는 곳이 많아서 입장료는 받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가 외암마을에 도착했을 땐 이미 오전의 폭우는 완전히 사라졌고 30도가 넘는 폭염이 시작되었다. 회원들은 외암마을 입구에 있는 연꽃 촬영을 시작으로 각자 흩어졌다. 나는 돌담을 주제로 능소화가 피어있는 모습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외암마을 곳곳에는 민박을 운영하며 초가집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도 있었다. 참판댁, 아산건재고택, 감찰댁, 교수댁, 송화댁 이란 이름만 보고도 이 마을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떠올려진다. 사진을 통해 자주 보았던 능소화는 생각만큼 많이 볼 수 없었다. 도중에 만난 직원에게 물어보니 가끔 가지치기를 해 줘야 돌담이나 능소화가 건강하게 유지된다고 한다. 그래서 봄에 가지치기를 해줬다고.


나는 풍경반 사진 수업에 속해 있지만 이번 출사의 주제는 사람이 사는 ‘마을’이었다. 70년대를 연상하게 하는 서천 판교마을, 500년 전부터 만들어진 아산 외암마을. 나를 포함한 회원들은 판교마을에 마음이 더 끌렸다. 아마도 우리가 살아왔던 흔적들을 기억해 낼 수 있어서였을 것이다.


서울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 나에게 아직도 한 집안처럼 살아가는 마을이 있다는 사실은 깊은 울림을 주었다. 나에겐 어려운 삶의 방식이지만, 어딘가엔 낯선 이의 카메라 앞에서도 따뜻이 웃어주는 마을이 더 있으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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