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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남추녀 Mar 27. 2020

베스트셀러 작가를 꿈꾸며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있었던 일 

먼 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20014년 여름 광화문 교보문고의 여름 현판은 정호승 시인의 '풍경달다'의 일부였다. 원래도 좋아하던 시였는데 저 부분만 떼놓고 봐도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그해 여름의 나는 '보고 싶은 마음'을 달랠길 없어 광화문 교보문고에 드나들었기에 더욱 감정이입을 했다고나 할까?


첫 장편 <밤의 이야기꾼들>이 서점에 깔린 이후로 나는 흥분을 감추기기 힘들었다. 사실 표지를 봤을 때부터 약간 제정신이 아니었는데 꿈을 꾸는 것도 같고, 거대한 몰래 카메라를 찍고 있는 것도 같았다.


정말 내가 장편소설을 출간한다고?


이 표지를 받아보고 나서 몰래 카메라에 대한 의심은 거뒀다.


분명히 연재했던 이력도 있고, 저자 교정까지 마친 원고도 있으며, 출판계약서까지 작성을 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의심을 했다. 감정기복도 심해졌다. 

금방 나올 테니 조금만 기다려봐, 아니야 막판에 결국 출간을 못하겠다고 할 거야. 그러니 그때를 대비하라고!

두 개의 감정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내 마음을 지배했는데 대게 두 번째가 이기고는 했다.

나는 장편소설 출간의 경험도 없었지만 마음의 준비도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랬다. 갈팔질팡했던 것은.


그러거나 말거나 책은 나왔다. 

이 녀석, 그러니까 <밤의 이야기꾼들>을 처음 만났을 때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저자 증정본을 들고 나는 한참을 내려다봤다. 


'전건우 장편소설'


두개의 말이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았다. 상투적인 표현을 쓰는 작가는 게으른 작가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연재를 하며 전전긍긍했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다.

무더운 여름, 매미는 그악스럽게 울어대고 미래는 불투명하고 태풍 소식이 들려오고 책은 생각보다 가볍고 표지는 실물이 훨씬 마음에 들고 다음달 카드값은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고 아들은 칭얼거렸던 그날 오후, 나는 조금 울었다.


새책 위로 톡 떨어진 눈물 방울 하나를 똑똑히 기억한다. 

나는 그 책에 사인을 했다. 큼지막한 사인이었고, 그 사인은 내가 나에게 해주는 처음이자 마지막 사인이었다.


<밤의 이야기꾼들>은 여름 한철 교보문고 매대에 쌓여 있었다. 나는 그해 여름의 현판 내용을 외울 정도로 자주 교보문고에 들렀다. 들러서는 내 책이 얼마나 줄어들었는가 가늠해 보곤 했다. 그게 다였다. 신간 소설 매대에 서서 내 책을 바라보는 일.

혹 누군가가 <밤의 이야기꾼들>을 집어들거나 하면 나도 덩달아 긴장을 했다. 

제발 사!

마음 속으로 주문도 많이 외웠는데 실제 사는 사람은 몇 명 보지 못했다. 그래도 좋았다. 아무렴 첫 장편소설이었으니까. 욕심을 품지 않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혹시 베스트셀러가 되면 어떻게 할까, 하는 헛된 상상이 피어오르기도 했다. 그렇게 된다면 여기서 사인회를 하게 될까? 독자와의 만남은 재미있겠지? 베스트셀러가 된다면 돈다 많이 받고 영화 판권도 팔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런 일을 상상하며 지낸 몇 달 동안 나는 참 행복했다.

그해 여름이 지나며 <밤의 이야기꾼들>은 생명력이 다해 더 이상 평대를 지키지 못했다. 

<밤의 이야기꾼들>은 지금의 내가 보기에는 여러가지로 허점도 많고 아쉬움도 많은 작품이다. 작위적인 부분도 있고 매끄럽지 못한 전개도 있다. 후속편을 암시해 놓고 아직 쓰고 있지 못한 것도 흠이라면 흠일 터.

하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그게 최선이었다. 2013년과 2014년 사이의 초보 소설가 전건우는 당시 가지고 있던 모든 능력과 힘과 기술을 백퍼센트 사용해 <밤의 이야기꾼들>을 써냈다.

그래서 후회하지 않는다.


지금 다시 써도 아마 그때만큼 재미있게 쓰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비교적 운이 좋은 축에 속한다. 제법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결국 장편소설을 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책이 나오기까지는 여러 선배의 도움이 있었다. 그런 이들을 만났다는 것도 내게는 행운이었다.


지금은 그때와 달리 굳이 장편소설을 쓰지 않고도 장르 소설가가 활동할 수 있는 길이 많이 열려 있다. 웹소설이라는, 아예 다른 매체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를 하고, 그걸 제외하더라도 앤솔로지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소설가 활동을 이어갈 수 있을 정도로 이 바닥이 제법 탄탄해졌다. 정말 고무적인 일이다. 아마 앞으로 훨씬 더 새롭고 멋진 매체가 생겨날 것이고 장르 소설가들은 작품의 길이에 상관없이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어쩌면 장르 장편소설이라는 게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출판사나 작가 모두에게 너무 돈이 안 되는 아주 비효율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1년도 넘게 걸리는 시간 동안 장편소설을 쓰는데 소설가는 그동안 다른 수입원을 찾지 못한다면 굶기 십상이다. 미래의 불확실한 대박을 꿈꾸며 현재를 참아내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럼에도 나는 장르 소설가로 계속 살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면 꼭 한 번은 장편소설을 쓰라고 권한다.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서 캐릭터를 그 안에 집어넣고 마음껏 활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너무나도 즐거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 즐거움 덕분에 나 역시 오늘도 장편소설을 쓴다. 나는 아마 장르 장편소설의 쓸모가 다할 때까지 쓸 것이고 미련스레 종이책을 계속 낼 것이다.


그러다 보면 베스트셀러까지는 어렵더라도 꾸준히 팬이 늘어나지는 않을까?

그리고 판권도 잘 팔리지 않을까?


판권 이야기가 나왔으니 다음에는 <밤의 이야기꾼들>의 영화화 판권 계약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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