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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남추녀 Mar 28. 2020

판권 판매, 그 환희의 순간

하지만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

이야기가 주가 되는 장르 소설의 특성 상, 영화나 드라마 혹은 연극이나 뮤지컬 등의 원작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런 걸 두고 이쪽 세계에서는 '판권을 판다'라고 말하는데 이건 작가에게 아주 큰 명예와 자신감을 선물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돈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면에 있어서도 큰 도움을 준다.


특히 장편소설 한 권을 잘 팔면 그해 평균 연봉은 이미 벌었다고 봐도 되기에 소설가들의 궁극적인 희망이자 목표가 종종 판권 판매에 있게 되는 것도 이해해 줄 일이다.

물론 세상의 모든 협상이 그렇듯 아무리 아끼는 작품이라고 해도 내가 원하는 만큼의 대우를 받기는 어렵다. 


<밤의 이야기꾼들>도 마찬가지였다.


베스트셀러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부푼(그리고 헛된) 꿈에서 깨어나고 현실을 직시하게 된 어느 날 출판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밤의 이야기꾼들> 영화화에 관심을 보이는 제작사가 있다는 말과 함께.

제작사에서 꽤 적극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말을 듣고 나는 출판사와 함께 약속을 잡았다. 며칠 후 점심때 합정에서 보기로 하고 무심한듯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는 전화를 끊었는데 그 후로 너무 심장이 뛰어 도무지 진정하기가 힘들었다.  


내 소설이 영화가 된다고?


아직 계약서는커녕 서로 의견도 나누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나는 김칫국을 거하게 마셨다. 소설가들의 단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상상력이 뛰어다나 보니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는 것도 먼저, 최상의 경우를 상상하는 것도 항상 남보다 앞선다. 냉탕과 온탕, 극과 극을 오가는 것이다. 물론 바로 그런 감수성 덕분에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나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미팅 자리에 나갔다. 영화 일을 하는 사람들과는 처음 만나는 순간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는데 결론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그러니까 최상의 상황) 많이 달랐다. 영화사는 <밤의 이야기꾼들> 전체가 아니라 그 안에 들어있는 '홈 스위트 홈' 한 이야기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 부분은 나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밤의 이야기꾼들> 자체가 옴니버스니 하나의 장편 영화로 만들기가 쉽지는 않았을 터.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나 역시 '홈 스위트 홈'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별 고민 없이 계약을 하겠노라 했다. 실제 계약서 작성은 대리인인 출판사나 혹은 에이전시와 하는 것이기에 나는 사인 하나 할 필요없이 그 과정을 지켜보기만 했다. 영화사는 아주 정중했고 작품에 대한 이해도는 물론이고 애정도 컸다. 그래서 믿음이 갔다.


그렇게 내 첫 책은 판권 계약을 끝냈다. 비록 일부분이기는 하지만 내 기분은 날아갈 것 같았다. 그 후의 일이 더 잘 풀렸다면 훨씬 더 좋았겠지만, 세상 일이 다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니......

그때 판 '홈 스위트 홈'은 아직 제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시나리오까지 나왔는데 투자를 못 받고 있다고 들었다. 언젠가는 빛을 볼 날이 있겠지, 라고 나는 또 최상의 상상을 해본다.




앞서도 말했던 것처럼 영화나 드라마 판권을 판다는 것은 소설가에게는 아주 중요하고, 또 도움이 되는 일이다. 나는 운이 좋게도 <밤의 이야기꾼들>을 시작으로 이후 출간한 모든 장편소설의 판권을 다 팔았는데 그러면서 몇 가지 고민도 안게 되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소설을 쓰는 동안 은연 중에 자체 검열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장면에서는 헬리콥터도 좀 띄우고 건물도 좀 무너지고 땅도 좀 갈라져야 하는데 그렇게 썼다가는 제작비 문제로 판권이 안 팔리는 게 아닐까, 하는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속물적인 생각을 해버리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렇기에 나는 판타지와 SF를 거침없이 쓰는 소설가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책을 팔아서 돈을 벌 수 있다면 아마 이런 고민도 덜 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이제는 책만 팔아서는 절대 돈을 벌 수가 없다. 특히 소설가는 더 그렇다. 그 중에서도 장르 소설가는 더욱 더 그렇다. 정부의 창작 지원금을 받는 것도 아니고, 여전히 순문학이 강세인 상황에서 강의나 강연 같은 기회를 갖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판권 판매에 많은 걸 걸 수밖에 없는데 이게 양날의 검이 되지 않으려면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확고하게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 이야기 속의 설정들이 한결 같다면, 설령 제작비가 좀 든다 해도 눈 밝은 제작사는 기꺼이 그 이야기를 사니까.


물론,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가진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고 나 역시 그 방향을 찾기까지 꽤 오랜 과도기를 보내야 했다.

이런 사정과 겹쳐 먹고 사는 문제까지 더해지니 후속 장편소설 작업은 한없이 미뤄졌다.

<밤의 이야기꾼들>이 나온 2014년 여름 이후 나는 그나마 소설가, 혹은 작가라는 호칭에 조금 적응이 되었는데 그걸 마음껏 누릴 새도 없이 완벽한 '을'의 입장이 되는 글쓰기 노동자의 삶을 살게 되었다.


내가 써야 했던, 먹고 살기 위해 쓸 수밖에 없었던 그 수많은 글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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