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추남추녀 Apr 21. 2020

책이 팔리지 않을 때

그렇다고 패배자가 된 것은 아니다

야심차게 준비한 내 두 번째 장편소설 <소용돌이>는 기대했던 것만큼 큰 관심을 얻지는 못했다. <밤의 이야기꾼들>이 이상할 정도로 많이 팔린 것에 비하면 아주 소소한 성과를 거뒀을 뿐이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이 소설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소용돌이>는 자전적 소설인 동시에 (내가 생각하기에) 아주 근사한 공포 소설이었으며, 무엇보다 내가 생각하는 의미의 휴머니즘이 들어가 있었다. 그랬기에 내 입장에서는 <소용돌이>의 부진이 조금은 뼈아팠다.


모든 작가들이 그렇겠지만 <소용돌이>를 출간할 때만 해도 대성공을 거두리라는 헛된 전망을 품고 있었는데 그게 무참하게 무너진 것이다. 판권이 팔리지도 않았다. 물귀신이 등장하는 이 이야기에 관심을 두는 영화사는 몇 군데 없었다.


나는 서평을 찾아보지는 않지만 다른 작품에 비해 그 서평조차 얼마 달리지 않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즉, <소용돌이>는 독자들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 것이다.

한 아이의 아빠인 나는 소설 한 편이 소설가에게는 자식과 같다는 말에는 섣불리 동의하지 못한다.

세상에 자식과 같은 건 아무것도 없다.

아무튼, 그럼에도 자식에 준할 만큼 소중한 존재이기는 하다. 그 작품을 쓰는 동안 전심전력을 다했고 많은 걸 쏟아부었으니 그럴 수밖에. 게다가 소설가는 그 한 작품을 쓰기 위해 많은 걸 포기해야 한다. 이를 테면 여름 휴가나 친구와의 만남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니 내 작품이 잘 팔리지 않는다는 걸 알면, 그걸 쓰기 위해 견뎌온 시간 자체가 전부 부정당하는 느낌에 빠지게 된다. 작가들이야 워낙에 감정기복이 심하지만 이럴 때는 그야말로 패배자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괜히 다른 소설가를 질투하게 되고, 독자들을 원망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런 실패의 프로세스에는 그 누구의 잘못도 없다는 것을. 내가 잘 못 쓴 것도 아니고, 편집부가 책을 이상하게 만든 것도 아니며, 독자들의 눈이 밝지 못해서 명작을 못 알아 본 것도 아니다. 책, 특히 소설의 운명은 90% 이상 운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이 협소한 우리나라 소설 시장, 그것도 장르 소설 시장의 현실이다.

예측이 불가능한 산업일수록 투자는 위축되고 변화는 더디며, 과감한 시도는 줄어든다. 장르 소설 시장이 딱 그렇다. 엄청나게 큰 돈을 들여 광고를 해도 잘 팔리지 않는 소설이 있는가 하면 의외의 대박으로 베스트셀러가 되는 소설도 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그건 바로 시장이 작기 때문이다. 시장이 크다면 확률의 법칙이 위력을 떨치지만 작은 시장에서는 운이 훨씬 더 크게 작용한다. 표지가 독자들 마음에 들었다거나, 우연한 기회로 미디어에 노출되었다거나, 그 작품과 비슷한 사건이 실제로 벌어졌다거나 하는 식의 일들만으로도 성패가 갈린다. 한 두 권만 더 팔면 베스트셀러에 진입할 수 있다. 이것은 정말로 운과의 싸움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래. 이번엔 운이 없었어. 뭐, 할 수 없지.' 하고 느긋하게 넘기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니다. 

내 소설이 안 팔린다고 해서 거기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가는 영영 패배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된다. 매일 판매지수를 체크해 봐야 무슨 소용이겠는가. 갑자기 운이 좋아져 판매고가 확 올라간다는 건 기적을 기대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나라면 기적을 기다릴 시간에 다른 작품을 쓸 것이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패배했다는 느낌이 드는 그 순간에도 용기를 잃지 않고 다른 작품을 쓸 수 있는 배짱이다. 소설가가 희망을 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차기작뿐이다. 


괴로워하고 머리를 쥐어뜯고 이 세상을 향해 저주 퍼붓기를 충분히 했다면 이제는 문서 프로그램을 열고 다음 작품의 제목을 쓰자. 그것으로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이다.


<소용돌이>가 나온 후 나는 거의 바로 차기작 구상을 했다. 그 작품이 바로 <고시원 기담>이었고, 이번에는 운이 좋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편집자는 신이니 그의 말을 들으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