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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남추녀 Mar 26. 2023

괜찮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다 괜찮을 거라고, 사람들이 말했다. 그 말이 내게는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는 괜찮지 않았고, 앞으로도 꽤 오래 이 상태가 지속되리라는 걸 알았다. 그럼에도 나는 괜찮다 말하는 사람 앞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안 되었다. 괜찮지 않다고 말했어야 했다. 내게는 그럴 용기가 없었고, 그랬기에 다들 내가 괜찮은 줄 알았다. 그러고는 대단한 위로라도 했다는 듯 미소와 함께 떠나갔다. 안 되는 일이었다. 그저 보고만 있어선 안 되는 일. 가는 사람을 돌려세운 뒤 남의 고통이 괜찮을 만 한 것이라 함부로 단정 짓지 말아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했어야 했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

우리가 늘 괜찮아야 할 필요는 없다. 나무도 괜찮지 않을 때가 있고, 바다도 괜찮지 않을 때가 있으며, 새나 꽃도 괜찮지 않을 때가 있다. 하물며 에스컬레이터도 수리 중일 때가 있으며 놀이기구도 점검 중일 때가 있지 않은가. 누구나, 무엇이나 괜찮지 않을 수 있다. 언제나 다 괜찮아야 하는 법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습관처럼 괜찮다는 말을 달고 산다. 괜찮아요, 라는 말을 힘들어요, 라는 말보다 먼저 배웠다. 힘든데 괜찮다고 하니 결국 몸이 백기를 든다. 그래서 아프다. 


우울증을 오래 앓아 오면서 헛된 위로에 마음 흔들리지 않는 요령을 터득했다. 예전에는 위로가 고팠다. 관심이 절실했고, 그것이 진짜가 아니라고 한들 누군가의 한 마디가 필요했다. 그랬기에 괜찮다는 말을 수집하고 다녔다. 누구든 아주 쉽게 괜찮다, 괜찮을 거다, 넌 괜찮아 질 거다, 라고 말해줬다. 나는 이제 안다. 그 말 속에 악의가 없었던 만큼 진심 역시 없었다는 걸. 인간은 자신이 겪어보지 않으면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없다. 어느 날 의사가 말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고. 나는 대꾸하고 싶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없게 되는 상태가 우울증 아니냐고. 나는 그날 이후 다른 병원을 찾았다.

괜찮다는 말만큼 힘내라는 말도 나는 견디기 힘들었다. 힘을 낼 수 없는데 힘내라니,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아득해졌다. 


괜찮지 않은 건 괜찮지 않다. 억지로 괜찮다고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 자기최면보다 중요한 건 힘듦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언제고 괜찮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이다. 괜찮지 않다고 해서 패배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실패한 인생이 되는 것도 아니고, 영영 낫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나무는 괜찮지 않다가도 해마다 봄이 되면 꽃을 피운다. 바다는 괜찮지 않다가도 어느 순간 잠잠해져 눈부시게 빛난다. 내가 받은 최고의 위로는 헐거운 말 대신 손을 꼭 잡아주는 것, 조용히 안아주는 것, 그리고 따뜻하게 웃어주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도 괜찮지 않다.

그러니까, 적어도 이렇게 말할 용기를 품을 정도로는 괜찮아졌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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