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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t Oct 19. 2023

을왕리

일몰


을왕리 일몰 촬영을 위해 영종도로 향했다. 마침 간조가 시작되고 있을 때 도착했다. 서해는 조수간만의 차이 때문에 동해와는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에메랄드 빛 바다 색과 새하얀 백사장은 여기에 없다. 갯벌은 시커멓고, 바다는 흙탕물 같다. 


비록 에메랄드 바다색을 가지진 않았지만 ‘을왕리’라는 이름은 너무나 아름답다. 그리고 일몰 또한 그러했다. 

멀리 수평선은 주황색이고, 고개를 조금만 들면 미처 물들지 못한 푸른색 하늘이 남아있다. 주황부터 파랑까지 뒤섞인 그러데이션이다. 화려한 조명이 펼쳐지는 콘서트를 보는 것 같다. 파도는 오케스트라다. 그리고 관중이 모여들고 자기만의 방식들로 공연을 즐긴다. 


엄마는 성인이 된 딸의 사진을 찍어주며 흐뭇하게 미소 짓는다. 딸 못지않게 아름다웠던 자신의 젊은 시절이 생각난 걸까. 

커플은 팔짱을 낀 채 한참을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다. 뒤에서 보고 있으니 일몰이 주례를 서는 듯하다. 

바다엔 물놀이에 진심인 자들이 늘 있는 법. 거기엔 온몸에 타투를 휘두르고 파도에 몸을 던지는 형님들도 있었다. 무서운 분들 같긴 한데 그저 해맑다.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 나온 주인은 개 신나 보인다.


파도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물이 빠지고, 하늘에서 색을 찾을 수 없게 될 즈음에 공연은 끝난다. 그래도 사람들은 아쉬움에 한참을 머물렀다. 앙코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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