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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t Feb 15. 2024

도경리역

강원도 삼척


  삼척 바다를 뒤로하고 차를 몬다. 동쪽으로 15분 정도 달리다 보면 오른쪽에 도경리역으로 가는 작은 샛길이 나온다. 길이 좁고 음침해서 만약 조수석에 누군가 타고 있다면 안심시켜줘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걱정은 길지 않다. 구불구불한 길 끝이 보일 때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걱정이 무의미했음을 느끼게 해 줄 것이다.

  소박하고 미니멀한 이 작은 역사는 가까이 갈수록 이상하게도 마음을 울리며 다가온다. 적절히 뒤로 저문 해가 역사 지붕을 비스듬히 비추어 신비로운 느낌도 들었다. 산골 사이에 위치한 탓인지 다른 세계로 가는 차원문 같기도 하다. 실제로 저길 지나면 철로가 끝없이 이어진 다른 세상이 아닌가.


  영동선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도경리역은 그저 아름다웠다. 하얀 외벽과 파란 파스텔톤의 문, 그리고 색이 바랜 듯한 초록색의 기와지붕이 조화를 이룬다. 처음 운영을 시작한 1940년의 시간선을 놓지 못한 듯한 건물은 안팎으로 추억의 장소로 가득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엉덩이로 비벼 된 듯 번들번들한 나무 의자와 보기만 해도 쇳소리가 들릴 것 같은 철제 책상, 그리고 섬세하게 여닫아야 할 것 같은 나무로 된 문까지. 중간에 리모델링이 한번 되었다고는 하지만 큰 변화는 없는 듯하다.

  역 앞 광장은 생각보다 넓다. 과거에 이곳이 한창 운영되고 있을 무렵 사람들이 오가는 장면이 상상이 된다. 각종 먹거리를 가지고 나와서 한 푼이라도 더 벌려는 사람들이 길에 난장을 폈을 것이다. 버스가 오가고 택시도 줄을 섰을 테다. 한때는 석탄 생산의 요충지라는 타이틀과 함께 삼척시의 주요 교통시설이었다고 하니 충분히 그럴 법하다.


  역사 앞에 구멍가게의 흔적이 남아 있는 집이 있었다. 여객취급이 중지되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장사는 접었을 것이다. 그 앞에서 할머니 두 분이 나물을 다듬고 있었다. 여기에 기차가 오는지 물어보니 이젠 안 온다고 하셨다. 난 단순하게도 ‘기차가 안 온다’를 '이 철로로 기차가 다니지 않는다’로 해석했다. 선로로 나가는 문이 열려있었다. 혹시 몰라 좌우로 두리번거리며 선로를 건너가 사진을 몇 장 찍고 되돌아왔다. 그런데 얼마 후 갑자기 굉음을 내며 열차가 당당하게 지나가는 게 아닌가. 그제야 내가 할머니들의 말을 잘못 해석했다는 걸 깨달았다. 열차가 안 온다는 말은 ‘종종 열차가 지나가긴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이 역에는 열차가 정차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던 것이다.(최근에는 안전 문제로 선로 출입이 금지된 걸로 알고 있다.)


  이곳은 열차가 서지 않는 폐역이다. 선로 쪽 역사 입구에 서서 무정하게 뒤도 안 보고 가버리는 열차를 보고 있으니 서운한 마음도 든다. 찾아보니 폐역이 된 건 2008년 3월이었다고 한다.

  구멍가게 흔적이 있는 집 옆으로 서너 집이 더 있었다. 그중 한집을 지키는 꽤 덩치가 큰 개가 있다. 개조심이라고 쓰여있긴 했지만 사람들이 오가며 먹을 것을 줬나 보다. 내가 가까이 가니 꼬리가 사라질 정도로 흔들어 댔다. 폐역이 된 이후 인적이 드물어 개도 쓸쓸했을 것이다. ‘개조심’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정을 붙일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의미일까.


  건축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내가 봐도 이 역사는 특별해 보였다. 외관상으로는 불필요한 것들은 과감히 배제하고 미니멀하게 설계된 듯한 느낌이다. 필요에 의한 설계만을 한 느낌이다. 일본식 건축물의 특징인 건지도 모르겠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이 ‘역사’의 목적은 확실하지 않았을까. 도경리역은 삼척에서 채굴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운반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자원수탈을 위한 교통수단이었고 광산 노동자들이 오가는 교통수단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70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 그때의 슬픔과 분노를 간직한 채 지금까지 살아남았고 국가등록문화재가 되었다. 도경리역은 잊히지 않는 ‘역사’가 된 것이다.


  80여 년 전, 산속 깊은 곳에 지어진 역사는 주변과 조화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시간이 흘러 자연이 이 외부인을 받아들여 준 듯 보인다. 굽은 길을 되돌아가며 차 안에서 뒷거울로 도경리역이 보였다. 역사는 마치 원래부터 여기 있었던 것처럼, 이곳의 풍경으로 동화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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