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생각들, 해석과 분석
4월 26일,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재개봉했고 덕분에 극장에서 이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보통 재개봉작은 리뷰를 잘 안 남기는 편이었는데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조금은 정돈되지 않은 형태겠지만 글을 적어봅니다.
※본 포스팅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결말을 비롯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55년에 걸친 시간 동안 꾸준히 평가와 재평가를 받았고 그렇게 시대의 걸작으로 인정을 받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이지만, 이 영화를 그러한 평판을 제외하고 백지상태에서 본다면 참 대담하고 과감한, 어쩌면 무모하기까지 한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인류의 태초부터 머나먼 미래, 심지어는 외계 종족과의 조우까지 앞두고 있음에도 서사성이 굉장히 약합니다. 4막으로 구성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서사가 없는 편이고 마치 옴니버스와 같이 별개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각 막에서도 서사성은 그리 크게 나타나지 않는데요, 그나마 작은 에피소드로서 2막과 3막에 이야기가 개입되기는 하지만 태초를 그리는 1막과 결말에 해당하는 4 막은 사실상 대사 없이 오로지 스크린에 제시되는 이미지만으로 이끌어갑니다. 특히 태초 인류의 진화를 그린 1막이야 그 경과가 존재하기에 일종의 작은 서사가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4 막은 그러한 여지조차도 없어 보입니다. 영화의 러닝 타임이 150분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러한 구성이 굉장히 과감하고 무모해 보입니다.
-이러한 구성을 취한 이유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영화적인 경험으로서, 영화가 제시하는 이미지를 통해 관객들을 설득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반 백 년이 더 넘은 영화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지금 봐도 참신하고 세련된 이미지로 가득 차 있는데요, 우주선의 표현은 일부 20세기적인 디자인을 제외하면 상당히 깔끔한 편이고 우주 공간의 표현은 지금 봐도 크게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촬영이나 편집, 프로덕션 디자인에서도 상당히 우수한데, 자타 공인 명장면으로 회자되는 3막의 360도 조깅 씬은 장면 그 자체로 강한 인상을 남기며 역시나 많은 관객과 평단에게 언급되는 1막의 뼈다귀→인공위성으로 넘어가는 편집은 영화의 테마(진화)를 한눈에 표현합니다. 우주선 내부의 창백한 디자인과 어둡고 붉은 느낌의 디자인이 대비를 이뤄 형성하는 긴장감도 상당히 강력하고, 붉은 점일 뿐인 HAL 9000에게 전후 컷 배치와 클로즈업의 활용을 통해 강한 캐릭터성을 부여합니다. 4막에서 석판(모노리스)의 인도를 받아 워프하는 장면은 시각적 표현의 극치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굉장히 화려합니다. 이후 4막의 이미지들도 현실적인 요소(호텔 방이라는 공간의 정의)과 비현실적인 요소들(변화 과정과 독특한 디자인)이 섞인 형태로, 언어적 설명 없이 계속해서 등장해 이해하기는 굉장히 어렵지만 어쨌든 이미지들이 주는 인상은 상당히 압도적입니다.
-부가적으로 소리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영화의 음향이나 음악의 활용도 상당히 뛰어난데요, 우선 메인 테마로 등장하는 클래식(및 현대곡) 세 곡이 영화에서 발휘하는 효과가 상당합니다. 오프닝에서부터 등장하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특유의 웅장함으로 영화가 다루고자 하는 테마(진화)의 규모를 느끼게 해주며,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은 우주로 나아가는 인류의 기품을 드러내고, 리게티 죄르지의 [아트모스페르]는 미지의 존재가 주는 긴장감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음향의 활용도 굉장히 뛰어난데요, 기본적으로 적막을 바탕으로 숨소리나 반복되는 기계음 등을 배치해 표현하는 우주의 광활함이나 그 안에서의 고립감이 상당히 좋습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이 영화의 결말에 대해 '관객들이 자유롭게 상상해 보고 스스로 결론을 내리길 바란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직접 결말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관객들에게 결말의 해석을 열어둔 셈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해석이 존재합니다. 가장 많은 이들에게 채택되는 니체 사상을 기반으로 한 해석이 있는가 하면 '스페이스 오디세이'라는 제목답게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신화적인 테마를 바탕으로 결말을 설명했으며, 이동진 평론가는 진화의 우연성을 바탕으로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해외에서는 하물며 4 막의 호텔 방을 체스판으로 읽어낸 해석까지 있습니다. 영화가 분명하게 정의하는 건 태초부터 미래까지 뻗은 진화 과정이라는 이 영화의 테마밖에 없는 것 같아 이 테마를 바탕으로 생각해 볼 여지가 상당히 많은 영화인데요, 그 다양한 해석들에 대해 찾아보시는 것도 영화를 즐기는 하나의 재미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관심이 있으시다면 찾아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그중 일부이지만 그나마 잘 정리된 내용을 나무위키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다른 해석을 뒤로하고 제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눈길이 간 부분은 광활한 우주와 대비되는 인간이었습니다. 영화의 1막에서 태초의 인류는 다른 짐승들과 다를 것이 없는 존재였으나 우연한 계기로 동물의 뼈를 무기로 삼아 다른 이들을 무력으로 제압해 우위를 점합니다. 새로운 인류가 탄생하는 순간이고 인류의 첫 번째 진화를 보여주는 순간인데요, 도구를 사용하게 된 것은 인류에게 큰 한 걸음이지만 그 계기에 해당하는 뼈를 손에 쥐는 것은 상당히 작은 행동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 따르면 그 작은 행동조차도 인류는 모노리스를 만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이후 인류가 던진 뼈다귀가 인공위성이 되는 급격한 발전의 순간이 있고 2막에서는 인류가 당도한 우주 공간과 우주선 내부의 (당시 기준)최신 기술 위풍당당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을 배경음악 삼아 전시하듯 보여주지만 다시 한번 모노리스가 내뿜는 자기장 앞에서 인류는 한없이 작아집니다. 그리고 그 모노리스가 없었다면 목성으로 다가갈 수조차 없었겠죠.
-3 막은 인류의 미약함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광활한 우주를 비행하는 드넓은 우주선,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은 단 5명이며 그중 깨어 있는 사람은 단 2명이며 이후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은 단 한 명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3 막은 영화 전체에서 외로운 막이라고 느껴집니다. 더군다나 앞서 언급한 대로 음향의 기조 역시 우주의 고요함을 바탕으로 반복적인 기계음이나 무미건조한 HAL 9000의 목소리, 그리고 우주복 내에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소리만이 들려 이러한 고립감이 더더욱 강조되어 인간은 한없이 작아 보입니다. 3막에서 겪게 되는 갈등이 인공지능 HAL 9000과 인간의 갈등이라는 점도 의미심장합니다. HAL 9000은 오류를 낸 적이 없고 당시 인류가 낼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인공지능이라고 설명됩니다. 하지만 HAL 9000은 임무의 본 목적(외계 존재와의 조우)을 숨기고 있었다는 점에서부터 이미 오류를 내포하고 있었고, 이를 무마하기 위한 과정에서 결국 인간을 살해하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인간의 지능을 본떠 가장 완벽한 형태로 만들었지만 결국 실수를 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의 한계를 그대로 떠안고 있었던 것이죠.
-4 막 역시 드넓은 우주 속 인간이 얼마나 미물인지를 드러내지만 3막과 반대로 4 막은 '우주의 광활함'을 강조해 이를 표현한다고 느꼈습니다. HAL 9000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목성에서 모노리스를 조우한 보먼[케어 둘리 분]은 다른 공간으로 워프하게 되는데요, 영화 속에서 압도적으로 화려하게, 그리고 길게 표현되는 워프 과정은 지금껏 인류가 볼 수 없는 광경이고 이 자체로 상당한 위압감을 전달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보먼이 이동한 공간은 호텔 방처럼 보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현실과 달리 왜곡된 느낌을 줍니다. 그 공간에서 보먼은 식사를 하는 자신의 모습, 그리고 노화되어 죽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됩니다. 자신의 이해를 아득히 넘어선 광경을 모노리스에 의해 보게 된 것이나 다름없죠. 수십 년의 세월이 압축적으로 보이고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모노리스에 의해 보먼은 태아의 모습으로 변해 지구로 보내지게 됩니다. 모노리스를 만나 다시금 진화를 했고 1막의 도구를 쥔 인류처럼, 2막에서 모노리스를 만나 3막의 목성으로 향하는 인류처럼 다시금 새로운 경지를 이룩하겠지만(여기에 오프닝에 등장했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이를 근거하듯 깔리기도 하고) 결국 제3자의 시선에서 봤을 때 그 형태는 결국 태아에 불과합니다.
-결국 영화는 인류가 진화하는 모습을 담아내지만 그 진화는 자의적인 것이 아니라 모노리스가 아니었다면 이뤄지지 않았을 진화였습니다. 그런데 인류는 모노리스에 대해 아는 것이 없습니다. 인류가 조사한 모노리스는 연식과 특정한 방향으로 자기장을 발산한다는 것을 빼면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없는 존재입니다. 자기장의 방향을 따라 목성으로 향했고 그 이후 보먼이 워프하게 되는 장면까지 생각하면 인류는 자신들의 의지나 인지와는 상관없이 모노리스가 인도하는 대로 진화를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물며 영화 내에서 유일하게 자의적으로 인류가 시도한 진화인 HAL 9000은 인간적인 결함으로 인해 자멸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영화가 제시하는 이미지만 보고서 모노리스가 의도하는 바를 이해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마치 영화 속의 인류처럼 말이죠. 영화는 이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관객들이 직접 보고 느끼기를 바란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충분히 보고 듣고 느끼며 생각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영화는 굉장히 느린 템포로 이미지를 긴 시간 노출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영화가 기술적으로는 굉장히 사실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 결과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이해의 영역을 아득히 뛰어넘는 체험의 영역에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논리는 그 체험을 바탕으로 관객들이 직접 써 내려가야 하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다를지라도 아마 이 영화를 본 모든 관객들의 뇌리에 어떤 방향으로든 강렬한 인상으로 남지 않을까 생각하고, 그 인상들이 역시 어떤 방향으로든 관객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이 현상 자체는 동일하게 경험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