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수집가 Apr 30. 2024

입원한 엄마를 향한 아이의 마음

"나도 병원 갈래. 엄마 지켜줄거야"

"수지야, 엄마 아야 해서 병원 가서 수술해야 돼. 그래서 엄마는 병원에서 내일 자고 올 거야. 수지는 아빠랑 집에서 자야 해. 아빠랑 같이 잘 수 있지?”


“나도 병원 갈래. 엄마 지켜줄 거야.”


지난주 자궁용종제거 수술로 병원에 하루 입원해야 했다. 나는 지금까지 아이와 한 침대에서 같이 자고 있어서, 엄마 없이 잠을 자는 게 익숙하지 않을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이 말을 들은 아이는 잠시 순간 얼음 된 듯 멈추더니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그리고 나에게 “나도 병원 갈래. 엄마 지켜줄 거야.”라고 했다.

이 말에 울컥 감동이 밀려왔다. 생각지 못한 대답이었다.


엄마랑 같이 잠을 못 잔다는 것보다 아이에게 더 중요한 것은 아프다는 엄마 곁을 지켜주는 것이었다. 마음에 밀물 듯이 밀려오는 감동과 고마움에 아이를 꼭 안았다. 이렇게 이쁜 마음으로 이렇게 따뜻한 말을 해주다니.


잠시 하루 입원 하면 되는 간단한 수술이어서 내가 혼자 있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도, 나를 지켜준다는 아이의 그 마음이 너무 든든하고 고맙고 행복했다.


그리고 수술 당일 아침에 수지는 유치원 안 가고 엄마 병원에 갈 거라고 떼를 썼다. 평소에는 즐겁게 잘 등원하는 아이인데, 이 날은 울면서 안 간다고 떼를 썼다. 안 가려고 하는 이유가 엄마 병원에 같이 가고 싶어서. 이런 아이가 너무 사랑스럽고 고마우면서 짠하고 미안했다. 그래서 우는 수지를 달래며 한참 설명했다.


“수지야 엄마가 여기 배가 아야 해서 병원 가는데, 수지는 지금 같이 못가. 의사 선생님이 엄마만 와야 한 대. 수지 나중에 유치원 마치고 아빠 차 타고 엄마 보러 와. 알겠지? 우리 수지 씩씩하게 잘 다녀오자”


나중에 보러 오라는 약속을 하고 나서야 겨우 울음을 그치고, 다행히 밝은 모습으로 등원했다.




그리고 나는 오후에 수술을 하고 누워서 휴식하고 있었는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수지가 지금 엄마 보러 병원에 가자고 하는데 지금 가도 돼?”


“응, 5시까지 병원 1층으로 와.”


남편이 전화한 시간을 보니 수지가 유치원 버스에서 내린 직후의 시간이었다. 아마 수지는 유치원에서 하루종일 마치고 엄마 보러 갈 생각만 했을 것 같다. 그래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아빠를 보고 한 말이 ‘엄마 보러 가자’였다.


아, 정말 사랑스러운 내 보물, 내 천사 같은 아이.




수지가 온다니 기다려졌다. 내가 환자복을 입고 링거를 맞고 있는 모습을 보고 수지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했다. 만나기로 한 1층 로비에 가니 파란색 원피스를 입고 양갈래 머리를 한 귀여운 수지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에 봤는데도 병원에서 보니 또 너무 반가웠다.


수지는 처음에 나를 보고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수지에게 “수지야 이리 와. 엄마 안아줘”라고 하니 수지가 날 조용히 안아주었다. 그리고 남편과 잠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수지가 갑자기 집에 안 가고 엄마랑 여기 있을 거라며 아빠에게 가라고 했다.


그런 아이에게 수지는 집에 가서 아빠랑 자야 한다고 달래며 말했다. 엄마랑 자고 싶다고, 집에 가기 싫다고 하는 아이에게 집에 가서 자야 한다고 말을 하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엄마랑 있고 싶은 아이 마음을 너무 잘 알 것 같아서.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오늘은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마음이 아팠다.


“엄마는 주사 하나 더 맞고 집에 가야 하니까 아빠랑 오늘 집에서 자고, 내일 엄마 데리러 와~”  


점점 수지의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울음이 떼쓰면서 왕왕 크게 우는 울음이 아니라 서러움을 참고 참다가 흐느끼며 우는 울음이었다. 아이는 목이 메어서 ‘흑흑’ 거리며 울었다. 너무 마음이 아팠다. 차라리 왕왕 떼를 쓰고 큰 소리로 우는 게 차라리 맘 편할 것 같았다. 그런데 아이가 감정을 참으며 흑흑 우는데 이건 새삼 처음 느끼는듯한 감정이었다. 아이 마음을 아는데 그 마음을 내가 밀어내는 것 같아 너무 마음이 아팠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병원에 왔는데, 막상 오늘 밤에 같이 못 있는다는 게 갑자기 큰 슬픔으로 아이에게 몰아닥친 것 같았다. 슬퍼하며 서럽게 우는 아이를 보니 나도 마음이 너무 아파서 발길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우는 수지를 안고 눈물 닦아주고 토닥이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하지만 수지를 계속 데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남편도 이 상황이 길어지면 안 되겠다 싶었는지 아이를 나에게서 떼어 놓으려고 했다. 안 떨어지려고 하는 아이는 더 크게 울었다. 병원 문 앞에서 한참 수지를 안고 달래 고를 반복했다. 그러고 나서 이제 ‘진짜 빠빠이’ 하기로 하고 “엄마 엘리베이터까지 데려다줘, 그리고 이제 빠빠이 하는 거야.”라고 했다. 수지는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내 손을 꼭 잡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갔고, 난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나를 수지는 따라 타지 않았다. 아이도 아는 거다. 오늘 엄마랑 같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그 어린아이가 슬픔을 꾹꾹 참으며 엄마를 놓아주었다. 엘리베이터에 혼자 탄 나를 보더니 아이는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엉엉 우는 수지를 남편이 안았고, 내가 우는 수지를 바라보는 동안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문이 닫히면서 엄마가 눈앞에서 안 보이게 됐을 때 아이가 얼마나 서럽고 슬펐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고 저녁에 남편에게 전화했다. 남편은 우는 수지를 달래기 위해 장난감을 사줬고, 장난감을 사러 가는 길에 수지에게서 내내 “아빠 때릴 거야”라는 협박과 구박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장난감이 있는 쇼핑몰로 들어가자마자 신나서 뛰어다녔다고 한다.


장난감을 보는 순간, 조금 전까지만 해도 수지를 지배했던 슬픔과 서러움을 다 잊고 아이는 지금 이 순간 눈앞에 있는 장난감에 완전히 빠졌다. 참 단순하다. 그리고 단순해서 다행이다 싶었다. 좋아했다는 아이의 말에 안도가 되면서, 장난감을 보고 기분 좋아진 수지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나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엄마 옆에 있을 거야 하며 울었는데 새 장난감이 그 울음을 뚝 그치게 해 주었다.


남편이랑 통화를 하고 있는데 옆에서 수지가 “엄마~” 하는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나 변기 장난감 사떠! 엄마 집에 오면 내가 이거 신기한 거 보여줄게! 여기 응가도 있어! 엄마 빨리 자~ 시간이 다 됐어! 엄마 오면 뻥튀기도 줄게!”


생각나는 대로 하고 싶은 말을 나에게 쏟아내는 수지의 밝은 목소리를 들으니,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안쓰러움에 조금 그늘졌던 내 마음이 환해졌다. 그리고 나도 밝은 목소리로 답했다.


“응! 수지야 엄마 집에 가면 응가 장난감 보여줘! 뻥튀기도 엄마 줘~! 엄마 잘게 수지도 잘 자!”  


슬픔에서 금방 행복으로 전환하는 아이를 보며, 아이는 바꿀 수 없는 것에 계속 미련을 두며 집착하지 않고 지금 누릴 수 있는 행복에 최대한 집중하는 행복의 비결을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단순함이 행복의 열쇠가 아닐까.


마음이 단순한 아이는 슬픔에서 행복으로 전환하는 게 너무 쉽다. 단순함은 가볍고 편안한 마음으로 날 데려다준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지난 시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지금 현재에 집중하게 해 준다. 


나도 이 날 저녁 아이를 못보는 미안함은 내려두고 지금 휴식에 집중하며 편안하게 잘 쉬었다. 내일 웃으며 만날 아이를 생각하며.  







                     

매거진의 이전글 모든 순간이 행복이었던 놀이동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