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수집가 Jun 21. 2024

핸드폰 화면 밖 진짜 세상을 보는 아이로 자라길

지금처럼 순수하게 컸으면 하는 엄마의 바람

아침에 아이 등원하려고 나왔는데 아파트 1층 현관 계단에 어떤 초등학생 남자아이가 앉아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수지가 그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수지 : 오빠 뭐 하지?


나 : 앉아서 핸드폰 보네.


수지 : 저기는 의자가 아닌데. 계단은 올라가는 곳인데. 오빠한테 지렁이랑 벌레랑 달팽이가 오면 어떡하지?


나는 생각지도 못한 아이의 순수한 발상에 웃음이 나왔다.


등교시간에 핸드폰을 보며 앉아있는 아이를 보고 난 1차적으로 ‘아이고, 핸드폰 많이 보면 안 좋은데.’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수지는 핸드폰을 보는 오빠를 보며 의자가 아닌 계단에 앉아서 지렁이나 벌레가 오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을 한다. 세상에, 난 생각할 수도 없는 생각이다. 나와 보는 초점부터 완전히 다르다.


나는 ‘저게 안 좋은데.’라는 관념이 먼저 올라왔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바라보는 수지는 ‘오빠가 차가운 계단에 앉아서 벌레에게 공격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핸드폰을 보는 게 나쁜지 좋은지는 아예 생각하지 않는다.


이 순수한 아이의 생각에 핸드폰 보는 아이를 판단한 내 마음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한편 마음에서 아직 핸드폰이 없는 내 아이가 보는 것은 화면 속 세상이 아니라 지금 눈앞에 보이는 이 세상이라는 게 좋았다.


수지는 유치원 버스를 타러 가는 짧은 길에도 보이는 모든 것을 오감으로 느끼고 표현한다.


“엄마 이것 봐, 계란 꽃이야!”

“엄마 저 언니 가방 이쁘다”

“엄마 오빠가 뛰어가네. 학교 늦었나 보다.”

“(땅에 떨어진 열매를 집어 들고) 엄마 이것 봐! 열매예요!”


아이야말로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며 사는 것 같다. 지금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최대한 마음껏 느낀다.


아이와 걷다 보면 나도 내 주변에 있는 풍경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고, 내가 사는 이 세상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 아이와 걷다 보면 좀 더 걸음이 느려지고 가다가 자주 멈추기도 한다. 걸음을 멈추게 하는 신기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많아서.


요즘 땅에 떨어진 모과열매가 자주 보이는데 수지는 이 열매가 보이면 주워서 코를 대고 킁킁 거린다. 그리고 냄새가 달콤하다며 해맑게 웃으며 나에게도 맡아보라고 내 앞에 내민다. 열매보다 더 달콤한 향기가 내 마음에 퍼진다.




그리고 등원길에 보이는 초등학생 아이들이 핸드폰을 보며 걷는 걸 보면 수지가 초등학생이 됐을 때의 모습을 잠시 상상하게 된다. 그땐 내 아이도 핸드폰을 보며 등교할지도 모르겠다. 수지가 핸드폰을 손에 쥐게 되어도 폰 속의 화면을 보느라 주변에 가득한 이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히 든다.


계절이 바뀌는 신호를 가장 잘 나타내는 이 자연의 신비함과 아름다움을 제 때 알아차리는 아이가 되었으면 한다.


디지털 속 세상에 가지는 호기심보다
눈앞에 보이는 나무와 하늘, 꽃, 자연에
더 관심이 많은 아이였으면 한다.


지금 아이의 순수함은 언젠가는 변하게 될 것이다. 자라면서 아는 것이 더 많아지고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도 알게 되고, 세상이 보편적으로 말하는 관념들이 생길 것이다.


그렇게 되더라도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내가 매일 보는 하늘이, 나무가, 꽃이 늘 아름답게 내 곁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매 순간 느끼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오늘 구름은 이렇게 생겼구나, 오늘 하늘은 더 파랗구나’ 하고 느끼는 마음은 잃어버리지 않고 오래도록 마음에 살아있었으면 좋겠다.


어쨌든 지금은 나중에 내 아이가 커서 핸드폰만 보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내버려 두고 지금 가장 순수한 내 아이를 보는 기쁨을 마음껏 누려야겠다.


지금 이렇게 보낼 수 있는 때는
 지금 뿐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내 아이와 함께하는 지금의 행복을
 충분히 만끽하고 싶다.


자연을 보며 누리는 기쁨과 행복을 아이와 매일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느끼다 보면 아이가 더 자라서 폰을 들고 등교하는 초등학생 언니가 되어도 등굣길에 보이는 나무와 풀을 보며 이쁘다고 이야기하는 여전히 순수한 아이로 크지 않을까.


욕심보단 바람을 가져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가 엄마아빠 사진을 찍어주는 의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