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처럼 순수하게 컸으면 하는 엄마의 바람
아침에 아이 등원하려고 나왔는데 아파트 1층 현관 계단에 어떤 초등학생 남자아이가 앉아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수지가 그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수지 : 오빠 뭐 하지?
나 : 앉아서 핸드폰 보네.
수지 : 저기는 의자가 아닌데. 계단은 올라가는 곳인데. 오빠한테 지렁이랑 벌레랑 달팽이가 오면 어떡하지?
나는 생각지도 못한 아이의 순수한 발상에 웃음이 나왔다.
등교시간에 핸드폰을 보며 앉아있는 아이를 보고 난 1차적으로 ‘아이고, 핸드폰 많이 보면 안 좋은데.’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수지는 핸드폰을 보는 오빠를 보며 의자가 아닌 계단에 앉아서 지렁이나 벌레가 오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을 한다. 세상에, 난 생각할 수도 없는 생각이다. 나와 보는 초점부터 완전히 다르다.
나는 ‘저게 안 좋은데.’라는 관념이 먼저 올라왔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바라보는 수지는 ‘오빠가 차가운 계단에 앉아서 벌레에게 공격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핸드폰을 보는 게 나쁜지 좋은지는 아예 생각하지 않는다.
이 순수한 아이의 생각에 핸드폰 보는 아이를 판단한 내 마음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한편 마음에서 아직 핸드폰이 없는 내 아이가 보는 것은 화면 속 세상이 아니라 지금 눈앞에 보이는 이 세상이라는 게 좋았다.
수지는 유치원 버스를 타러 가는 짧은 길에도 보이는 모든 것을 오감으로 느끼고 표현한다.
“엄마 이것 봐, 계란 꽃이야!”
“엄마 저 언니 가방 이쁘다”
“엄마 오빠가 뛰어가네. 학교 늦었나 보다.”
“(땅에 떨어진 열매를 집어 들고) 엄마 이것 봐! 열매예요!”
아이야말로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며 사는 것 같다. 지금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최대한 마음껏 느낀다.
아이와 걷다 보면 나도 내 주변에 있는 풍경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고, 내가 사는 이 세상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 아이와 걷다 보면 좀 더 걸음이 느려지고 가다가 자주 멈추기도 한다. 걸음을 멈추게 하는 신기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많아서.
요즘 땅에 떨어진 모과열매가 자주 보이는데 수지는 이 열매가 보이면 주워서 코를 대고 킁킁 거린다. 그리고 냄새가 달콤하다며 해맑게 웃으며 나에게도 맡아보라고 내 앞에 내민다. 열매보다 더 달콤한 향기가 내 마음에 퍼진다.
그리고 등원길에 보이는 초등학생 아이들이 핸드폰을 보며 걷는 걸 보면 수지가 초등학생이 됐을 때의 모습을 잠시 상상하게 된다. 그땐 내 아이도 핸드폰을 보며 등교할지도 모르겠다. 수지가 핸드폰을 손에 쥐게 되어도 폰 속의 화면을 보느라 주변에 가득한 이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히 든다.
계절이 바뀌는 신호를 가장 잘 나타내는 이 자연의 신비함과 아름다움을 제 때 알아차리는 아이가 되었으면 한다.
디지털 속 세상에 가지는 호기심보다
눈앞에 보이는 나무와 하늘, 꽃, 자연에
더 관심이 많은 아이였으면 한다.
지금 아이의 순수함은 언젠가는 변하게 될 것이다. 자라면서 아는 것이 더 많아지고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도 알게 되고, 세상이 보편적으로 말하는 관념들이 생길 것이다.
그렇게 되더라도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내가 매일 보는 하늘이, 나무가, 꽃이 늘 아름답게 내 곁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매 순간 느끼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오늘 구름은 이렇게 생겼구나, 오늘 하늘은 더 파랗구나’ 하고 느끼는 마음은 잃어버리지 않고 오래도록 마음에 살아있었으면 좋겠다.
어쨌든 지금은 나중에 내 아이가 커서 핸드폰만 보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내버려 두고 지금 가장 순수한 내 아이를 보는 기쁨을 마음껏 누려야겠다.
지금 이렇게 보낼 수 있는 때는
지금 뿐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내 아이와 함께하는 지금의 행복을
충분히 만끽하고 싶다.
자연을 보며 누리는 기쁨과 행복을 아이와 매일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느끼다 보면 아이가 더 자라서 폰을 들고 등교하는 초등학생 언니가 되어도 등굣길에 보이는 나무와 풀을 보며 이쁘다고 이야기하는 여전히 순수한 아이로 크지 않을까.
욕심보단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