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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Jul 15. 2024

메이커시티 세운: 도시제조업과 하드웨어 혁신의 결합

메이커시티 세운: 도시제조업과 하드웨어 혁신의 결합


세운상가군은 1970년대부터 서울의 전자·기계 산업의 중심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도시 발전과 산업 구조의 변화로 인해 그 위상이 점차 약화되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서울시는 2014년 '다시·세운 프로젝트'를 통해 세운상가의 재생을 추진하게 되었다. 단순한 물리적 재생을 넘어 경제, 사회, 환경적 측면을 모두 고려한 '서울형 도시재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세운상가는 제조업, 도소매업, 그리고 산업 서비스업이 밀집된 독특한 산업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전기·전자 부품, 인쇄 및 후가공, 귀금속 관련 업종이 집중되어 있다. 이 지역의 생산 시스템은 1km 이내의 좁은 공간에 다양한 업종이 모여 있어, 원자재 수급부터 제조, 판매까지 전 과정을 빠르게 완료할 수 있는 '하이퍼로컬' 특성을 갖고 있다. 이러한 밀집된 산업 구조는 신속한 제작과 맞춤형 생산을 가능하게 하며, 도심 제조업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독특한 모델을 보여준다.


세운상가군 도시재생사업은 보행재생, 산업재생, 공동체재생이라는 세 가지 큰 축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사람을 중심에 두고 지역의 고유한 가치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를 위해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는 복합적인 프로그램들이 도입되었다.


세운상가-대림상가-진양상가로 이어지는 공중보행테크 건설을 통해 세운상가군의 보행환경을 개선했다. 거의 유일한 하드웨어 사업이었다. 다른 도시재생 사업과 달리 세운 프로젝트는 산업재생, 공동체재생 등 소프트웨어와 휴먼웨어 확충에 집중했다.


메이커시티 세운 프로젝트

세운협업지원센터는 세운 프로젝트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 도심제조업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새로운 창작자들과의 연결을 촉진하는 중간지원조직으로 기능했다. OO은대학과 메타기획컨설팅이 공동으로 운영하며,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간의 협업을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메이커스큐브는 프로젝트의 핵심 공간으로, 공중보행데크에 새롭게 조성된 입주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스타트업과 예술가 그룹들이 도심창의제조산업의 혁신을 이끌어가는 활동을 펼쳤다. 1단계와 2단계에 걸쳐 총 29개 이상의 입주사가 참여하여 다양한 창의적 활동을 전개했다.


세운마이스터회는 지역의 기술적 자산을 활용하는 중요한 프로그램이었다. 2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기술 장인들로 구성된 이 그룹은 그들의 전문성과 노하우를 젊은 세대에게 전수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이를 통해 세대 간 기술 전승과 혁신의 융합을 도모했다.


지붕 없는 인쇄소, 수리수리협동조합, 시제품위원회, 서울시립대학교 베타시티센터 등 다양한 주체들도 각자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들은 각각 창작인쇄, 제품 수리, 시제품 개발, 첨단기술 교육 등의 영역에서 세운상가의 재생에 기여했다.


프로젝트는 또한 주민참여와 역량강화에도 큰 비중을 두었다. 주민공모사업을 통해 지역 주민들이 직접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실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으며,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주민들의 역량을 강화하고자 했다. '세운은대학'과 '충무로는대학' 같은 프로그램은 시민들이 지역의 자원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참여형 플랫폼으로 기능했다.


세운메이드 사업은 지역의 기술력을 활용한 새로운 제품 개발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세운상가군의 특성을 살린 제품군을 발굴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세운맵은 약 3,000여 개의 업체 정보를 담은 온라인 산업 지도로, 지역의 제조업 네트워크를 가시화하고 외부와의 연결을 촉진하는 역할을 했다. 세운메이드를 통해 세운상간 도시제조업과 연결된 기업으로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과 아이웨어 패션기업 젠틀몬스터를 들 수 있다.


세운 프로젝트는 여러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우선, 기존의 메이커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어 지역 내 제조업 기반이 강화되었다. 세운상가는 단순히 유사 업종이 모여 있는 상가군이 아니라 기술자와 창작자, 제작자, 소비자가 유기적으로 만나고 소통하는 도심 속 메이커 시티로 탈바꿈했다. 특히 도심 한복판에서 모든 제작 공정을 한 번에 끝낼 수 있다는 세운상가의 독특한 장점이 부각되었다.


세운메이드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의 기술력을 활용한 새로운 제품들이 개발되었고, 이는 세운상가의 혁신 잠재력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되었다. 또한, 다양한 메이커 프로그램과 행사를 통해 지역 주민들의 참여가 크게 증가하여 공동체 재생이라는 목표에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2018년에는 '메이커시티 세운'으로 브랜드화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메이커시티 세운'은 50년의 역사를 가진 세운상가를 단순히 보존하는 것을 넘어, 과거의 기술력과 현대의 창의성을 결합한 새로운 창작 성지로 재탄생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2022년 8월, 세운협업지원센터의 운영이 종료되면서 세운 프로젝트의 대부분 활동이 중단되었다. 세운메이커스큐브 등 일부 사업만이 남아 지속되고 있다. 프로젝트의 초기 목표와 규모가 크게 축소되었음을 시사한다.


로컬 콘텐츠 타운의 가능성

도시제조업과 현대적 메이커 문화의 결합을 시도한 세운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한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하나의 가능성은 새로운 기업 생태계로 기능하는 로컬 콘텐츠 타운이다. 기존 산업 지원과 새로운 기업 생태계 육성이 도시제조산업 활용의 두 가지 방법이라면, 세운 프로젝트는 기존의 도시제조업을 지역사회, 플랫폼, 외부 자원과 연결해 활성화하는 기존 산업 지원 모델에 가깝다. 도시재생 사업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창업자 지원으로 한정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로컬 콘텐츠 타운 모델은 기업 생태계 구축 사업으로서, 사업 범위를 도시재생 전 영역에서 기업 생태계 구축으로 한정한다. 세운상가권이 가진 풍부한 전자·기계 산업의 역사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하드웨어 스타트업과 소상공인 생태계를 육성하는 것이다.


로컬 콘텐츠 타운 모델에서 로컬 메이커 스페이스의 역할이 중요하다. 메이커 스페이스는 단순히 작업 공간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지역의 기술 장인들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트업과 메이커들이 만나 협업하고,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핵심 거점이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세운상가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가진 제품들이 탄생하고, 이것이 새로운 관광 자원이나 문화 콘텐츠로 발전할 수 있다.


로컬 메이커스페이스의 역할은 하드웨어 기술 기반 스타트업 육성에 그치지 않는다. 세운상가권의 도시 문화를 더 풍부하게 만들 메이커 기반 소상공인, 로컬 크리에이터의 지원도 포함된다. 로컬 콘텐츠 타운으로 성공하려면, 메이커와 스타트업과 더불어 소상공인의 집적도 중요하다.


결과적으로, 메이커시티 세운 프로젝트의 교훈은 도시재생의 가능성과 방향성이다. 한편으로는 기존 시설과 커뮤니티를 활성화하고, 또 한편으로는 기존 자원을 활용하는 새로운 접근 방식과 크리에이터를 유치하는 투트랙 전략의 중요성이다.


향후 유사한 지역재생 프로젝트에서는 지역의 고유한 자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기존 주민과 기업의 지원과 더불어 새로운 생태계의 구축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이와 같은 투트랙 전략을 통해 단순한 물리적 재생을 넘어, 지속가능한 경제적, 문화적 혁신의 거점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1. [서울혁신로드⑥] 4차 산업의 혁신기지 '메이커시티 세운', 김태형(세운협업지원센터 거버넌스 운영1팀장), 2020.06.12

2. 상생 서울, 기술자와 제작자의 성지, 메이커 시티 '다시·세운', 2018

3. 만드는 사람들의 도시: 메이커시티 새운에서 만난 도시의 미래, 최도인 외, 세운협업지원센터, 2021

최도인 외, 세운협업지원센터,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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