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소멸의 마지노선
지역소멸의 마지노선은 군청소재지다. 군청소재지는 오랜 시간 행정, 경제,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고, 지역의 다양한 자원과 잠재력을 엮어낼 수 있는 역사성과 기반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 거점도심을 육성하고, 이를 통해 일자리와 정주환경을 창출하는 도시의 구심력을 확보해야 한다.
대부분의 지방 도시가 지역소멸의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역의 자원을 결집하고 연결하는 거점도심이 없기 때문이다. 혁신도시나 최근에 정부가 공급하는 소규모 신도시들은 지역과의 연결성이 부족하고 내부의 창조 능력을 키우지 못해 거점도심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개별 마을의 활성화나 관광지 개발도 자생적 성장의 동력을 만들어내는 데는 역부족이다.
남해군의 사례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잘 보여준다. 소위 '제2의 제주'라 불리는 남해군은 청년들이 운영하는 로컬숍들이 늘어나고, 귀촌인들이 모여 공동체를 만드는 등 새로운 변화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별적 변화들이 지역소멸을 막는 충분한 동력이 되기 위해서는, 이를 담아내고 연결하는 거점도심이 필요하다.
남해군의 '1+3 체제'는 이러한 거점도심 전략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남해읍이 중심 허브가 되고, 상주면, 미조면, 삼동면이 스포크가 되는 구조다. 남해읍 북변리는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행정 중심지로서의 단아함과 풍부한 골목길, 구축 건물을 보유하고 있다. 독립서점 '흙기와' 등 이미 골목상권 콘텐츠가 들어서기 시작했고, 전통 노포와 청년 상점이 공존하는 등 거점 상권으로서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다.
각 면은 저마다의 특색 있는 자원을 가지고 있다. 상주면은 은빛모래비치로 유명한 관광지였다가 2000년대 이후에는 대안학교를 중심으로 한 교육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이는 다시 동고동락협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경제공동체로 확장되고 있다. 삼동면 지족리는 전통 어업과 현대적 감성의 로컬 브랜드가 공존하는 곳이다. 지족항을 중심으로 한 멸치 수산업이 발달했고, 지족거리에는 '아마도책방', '기록의밭' 등 전국적으로 알려진 로컬 브랜드가 모여있다. 미조면은 거점 어항이자 대표적인 항구도시다. 미조항은 멸치, 붕장어 등 남해안의 주요 수산물이 위판되는 거점 수산항이며, 전국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회센터가 발달해 있다.
도시의 창조적 역량도 주목할 만하다. 남해의 로컬숍들은 정부 지원이나 상권개발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지역의 가치를 재해석하고 있다. 팜프라는 농촌 라이프스타일을, 돌창고는 로컬푸드를 재해석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창조적 시도들이 거점도심의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
거점도심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핵심 인프라가 필요하다. 하나는 철도역, 공항과 같은 교통거점이다. 또 하나는 지역의 자원을 사업화한 도시산업이 집결된 로컬 콘텐츠 타운이다. 이를 통해 거점도심은 지역의 관문이자 창조산업의 발신지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로컬 콘텐츠 타운 조성 과정에서는 사업 대상지의 건축물과 보행환경을 개선하는 도시재생 사업이 중요하다.
결국 지역소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거점도심 중심의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거점도심을 확보하고 이를 외곽의 자원과 연결하는 허브와 스포크 전략이 핵심이다. 지역의 창조력 역량을 강화하는데 도움 되지 않는 투자와 정책은 지양해야 한다. 지역의 자원을 결집하고 연결하는 거점도심 체계를 구축할 때, 비로소 지역소멸의 마지노선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