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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가 위대하다면

by 골목길 경제학자 Feb 1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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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 모리스가 위대하다면


윌리엄 모리스 투어의 첫날은 모리스가 1878년부터 사망한 1896년까지 살았던 해머스미스에서 시작했다. 동네 이름 자체가 장인스럽다. 망치 'hammer'와 대장장이 'smith'가 결합된 단어다.


모리스는 해머스미스에서 출판사를 운영했다. 템즈강 강변에 위치한 사적 Kelmscott House가 한국인 출판인들이 기념비적인 책들을 출판했다고 평가하는 Kelmscott Press가 있었던 자리다. "뉴스 프롬 노웨어"의 오프닝 장면이 시작되는 Hammersmith 다리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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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는 모리스 작품을 다수 소장한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에서 보냈다. 이곳에서 모리스에 대한 나의 평가를 정리할 수 있었다. 시인, 소설가, 디자이너, 정치가, 비평가 등 모든 지식인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윌리엄 모리스는 19세기 영국의 진정한 르네상스 맨이었다. 후세 학자들도 이런 모리스의 정체성을 규정하기 어려워했지만, 그의 예술가, 작가, 사회주의자라는 세 가지 면모를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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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 받은 인상은 달랐다. 사회주의 운동가로서는 실패했고, 자신의 미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학술적 서적도 남기지 못한 탓에 작가로서의 영향력도 크지 않았다. 디자이너로서의 업적도 예상과 달랐다.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이 소장한 그의 작품들은 19세기 후반 여러 디자인과 공예 조류의 하나일 뿐이었다. 오히려 동시대 스코틀랜드 디자인이 더 인상적이었다.


그렇다면 모리스가 위대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그의 실천적 지식인 모델이다. 모리스는 예술가-기업가라는 새로운 장인 모델을 제시했고, 더 중요한 것은 이를 실천해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일궈냈다는 점이다. 그는 장인을 단순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노동자가 아닌, 예술적 비전으로 사업적 성공을 이룰 수 있는 창조적 생산자로 재정의했다.


실천적 지식인 모리스가 구상한 이런 사업가적 예술인상은 2010년 이후 크리에이터 경제에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그 이전에도 재능 있는 예술가들이 사업적으로 성공한 사례는 있었지만, 일반인이 예술적 콘텐츠로 독립적인 경제활동을 하고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된 것은 크리에이터 경제에서 처음이다. 크리에이터 경제는 모리스가 140년 전에 그 가능성을 보여준 모델이다.


내일은 모리스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윌리엄 모리스 갤러리를 방문할 예정이다. 모리스가 1848년부터 1856년까지 유년기를 보낸 Walthamstow시에 위치해 있다. 당시 그의 가족이 살았던 Water House가 지금의 윌리엄 모리스 갤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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