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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강한 기술, 더 강한 장인

by 골목길 경제학자 Feb 2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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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5 더 강한 기술, 더 강한 장인


전작 『크리에이터 소사이어티』에서 윌리엄 모리스를 현대 크리에이터 경제의 예언자로 소개하고 앞으로도 모리스 사상과 비전의 현재적 의미를 탐구할 예정이어서, 그가 태어나고 활동한 런던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5일 런던을 모리스의 도시로 생각하고 걸었다. 당초 예상한 것은 아니지만, 여행을 마치는 지금 나의 생각은 한 단어로 수렴된다.


장인이다. 19세기 영국이 낳은 위대한 예술가이자 사회운동가 모리스. 그는 산업혁명이 인간의 창조성을 억압하는 것을 보며 고뇌했고, 그 대안으로 장인들의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모리스의 고민이 오늘날 우리의 고민과 다르지 않다. 그가 산업혁명의 도전 앞에서 장인정신을 들었듯, 우리도 AI라는 거대한 물결 앞에서 장인정신을 이야기해야 할 때가 왔다. AI 시대가 절실히 요구하는 인간의 자율성, 창조성, 공동체성. 이 가치들은 바로 장인들이 오랫동안 추구해온 것들이 아니던가.


장인정신은 시대에 따라 그 핵심 가치를 달리해왔다. 중세의 장인은 무엇보다 숙련성을 중시했다. 도제 제도와 길드를 통해 완벽한 기술을 추구했고, 이것이 장인의 사회적 지위를 결정했다. 고딕 성당의 화려한 첨탑과 스테인드글라스는 이러한 장인의 숙련성이 빚어낸 걸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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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기에 윌리엄 모리스는 예술성을 강조했다. 대량생산 시대에 장인만이 구현할 수 있는 미적 가치와 창조적 자유를 그는 장인정신의 핵심으로 보았다. 모리스 앤 컴퍼니를 통해 그가 직접 디자인하고 생산한 가구, 벽지, 섬유제품은 현대 건축과 디자인 산업의 미적 기준이 되었다.


1960년대 반문화운동을 대표하는 스튜어트 브랜드는 장인정신의 해방성을 부각했다. 그의 『Whole Earth Catalog 』는 DIY 문화를 통해 기성 질서로부터의 자유와 자아실현을 추구했다. 그가 추구한 개인의 자유와 기술적 해방의 가치는 실리콘밸리 기업가 정신의 근간이 되었다.


2008년 리처드 세넷은 『장인』을 통해 장인정신의 윤리성을 강조했다. 스승 아렌트가 '행위'의 가치를 노동이나 작업과 구분했던 것과 달리, 세넷은 장인의 작업 속에서도 윤리적 실천과 공적 가치의 실현을 발견했다. 작업과 일상에서 최선을 다하는 장인의 모습에서 그는 새로운 직업윤리와 물질문화의 가능성을 보았다.


그렇다면 AI 시대의 장인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나는 '기업가성'이라고 본다. 2010년대부터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창업과 제작 비용이 크게 낮아지면서, 크리에이터 이코노미가 본격화되었다. 누구나 적은 비용으로 창작 활동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고,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 고객과 직접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장인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성공의 핵심 변수가 달라졌다. 이제 장인의 성공은 단순한 기술적 숙련도나 창의성을 넘어, 시장을 이해하고 고객과 소통하며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는 기업가적 역량에 더 크게 좌우된다. 숙련성, 예술성, 해방성, 윤리성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시대의 장인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기업가적 정신이다.


AI가 더 강력한 기술이라면, 우리는 더 강한 장인이 되면 된다.


전통적 장인정신에 기업가정신을 결합한 '기업가 장인', 이것이 AI 시대에 우리 모두가 지향해야 할 직업윤리이자 새로운 직업의 모델이다.


런던은 오랫동안 장인정신의 산실이었다. 존 러스킨, 모리스와 같은 장인 이론가를 배출한 이 도시는 장인의 창의성을 키우는 특별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 AI 시대가 요구하는 더 강한 장인 모델의 형성에도 런던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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