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 인삼수도'라 불리는 충청남도 금산군을 방문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약용작물 클러스터인 이곳에서 접한 인삼 관련 콘텐츠의 다양성과 깊이를 체험했다. 특히 산지에서 직접 대면한 금산 인삼과 인삼 음식의 품질은 도시에서 경험하는 그것과 확연히 달랐다.
금산은 현재 국내 인삼 산업의 핵심 집적지로서 확고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인삼공사 자료에 따르면, 생산·가공·유통을 포함한 금산 인삼 산업의 총 경제 규모는 연간 1조 원을 상회한다. 인삼 재배 면적과 농가 수를 기준으로 할 때, 금산은 국내 2위 산지인 경북 영주시(풍기인삼)의 약 3배에 달하는 규모를 자랑한다.
이처럼 고유하고 강력한 지역 자원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산이 '지방소멸지수' 상승과 지역 경제 활력 저하를 우려하는 모순적 상황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금산이 인삼에 대해 더 할 일이 있을까?
인삼 산업의 정의
가능성은 인삼 산업의 확장성에 있다. 금산은 전통적으로 인삼 산업을 '생산(1차)-가공(2차)-유통(3차)'이라는 가치사슬 구조로 정의하고 이에 기반한 산업 생태계를 구축해 왔다. 지역 내에는 인삼 재배 농가(생산), 인삼 가공 및 제조업체(가공), 도매상 및 중간 유통업체(유통)로 이어지는 수직적 산업 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금산군은 이러한 산업 구조를 지원하기 위해 대규모 인프라인 금산국제인삼유통센터(B2B 거래 촉진), 금산인삼약초진흥원(R&D 및 품질 관리), 금산세계인삼축제(마케팅 플랫폼) 등을 전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의 근본적 한계는 '공급자 중심 가치사슬' 관점에 치우쳐 있다는 점이다. 인삼이 재배되어 가공되고 시장에 유통되는 물리적 흐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현대 경제에서 새롭게 부상하는 가치 창출 단계인 '소비자 경험'과 '장소 기반 소비'를 창출하는 '경험 리테일' 부문이 산업 정의에서 누락되어 있다.
경험 리테일은 단순히 유통의 최종 단계가 아닌, 별도의 독립적 산업 영역이다. 금산의 전통적 인삼 도소매상은 리테일의 초기 형태에 해당하지만, 현대적 의미의 리테일은 이를 크게 확장한 개념이다. 오늘날의 리테일은 제품 판매를 넘어 인삼을 테마로 한 F&B(식음료), 라이프스타일 상품, 경험 디자인, 문화공간 운영, 콘텐츠 제작 등 소비자의 직접적 참여와 체험을 유도하는 복합적 비즈니스 모델을 포괄한다.
지역 경제 활성화의 관점에서 볼 때, 방문객들이 단순히 인삼을 구매하고 떠나는 '구매 완결형 방문'이 아닌, 지역에 머물며 다양한 인삼 관련 경험을 소비하는 '체류형 방문'을 유도할 수 있는 리테일 생태계의 부재가 핵심적 문제다. 생산-가공-유통 단계가 아무리 효율적으로 작동하더라도, 최종 소비자가 직접 참여하고 몰입할 수 있는 리테일 단계가 취약하면 지역에 인적·경제적 자본이 축적되기 어렵다.
현재 금산의 인삼 산업 구조
현재 금산의 인삼 도소매 기업은 시내 '금산인삼약초시장'과 주변 상권에 집적되어 있다. 이 시장은 1305년 고려시대부터 이어온 역사를 가진 특화시장으로, 약 300여 개의 점포가 한 지역에 모여 있으나, 대부분은 인삼 및 한약재 원물 판매와 단순 가공품에 중점을 둔 전통적 유통 형태에 머물러 있다. 다른 특화 시장들과 유사하게, 특산품 판매 외에 현대적 소비자 경험이나 체류를 유도하는 콘텐츠가 부족한 구조다.
인삼 기반 경험 리테일 비즈니스가 전무한 것은 아니다. 인삼 전문 카페, 인삼 성분을 활용한 디저트, 인삼주 제조업체, 소규모 인삼 체험 공방 등이 최근 몇 년간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아직 산발적이고 소규모로 운영되며, 전국적 인지도와 브랜드 파워를 갖춘 로컬 기반 리테일 성공 사례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공공 부문도 체류형 인삼 콘텐츠 개발에 투자해 왔다. 아쉽게도 이러한 시도들은 기존 도시 조직과 생활권에 유기적으로 통합되지 못했다. 대표적으로 '금산인삼엑스포광장'은 축제장, 유통센터, 인삼박물관, 체험관 등이 포함된 관광단지로 조성되었으나, 도심과 분리된 위치와 일상적 도시 생활과의 연계성 부족으로 축제 기간 외에는 방문객 유입과 활성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전국의 많은 테마파크형 개발 사업들이 직면한 '섬 효과'와 유사한 문제점을 보여준다.
인삼 라이프스타일의 가능성
인삼을 현대 리테일 산업과 연결하는 핵심 개념은 '라이프스타일 브랜딩'이다. 금산인삼관의 '생활 속의 인삼' 전시관은 이러한 접근의 초기 시도로 볼 수 있다. 이 전시에서는 인삼 추출물이 함유된 화장품, 인삼 섬유로 제작된 침구류, 인삼 성분의 주방용품 등 다양한 생활 제품들을 실제 주거 공간(침실, 거실, 주방)에 배치하여 인삼이 단순한 건강식품이 아닌 일상생활 전반에 걸친 웰빙 요소임을 시각화했다. '인삼 라이프스타일'이라는 통합적 브랜드 경험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의미 있는 시도다.
이 전시는 '큐레이티드 리테일 경험'의 관점에서 볼 때 몇 가지 한계를 가진다. 전시물은 관람객에게 강한 감정적 연결과 '열망 가치'를 제공하기보다는 단순히 기능적 제품을 주거 공간에 배치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현대 리테일 트렌드인 '라이프스타일 숍(lifestyle shop)'이나 '컨셉 스토어(concept store)'가 추구하는 통합적 경험 디자인과는 거리가 있다.
진정한 인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구축하려면 제품 자체를 넘어 인삼의 철학적 가치(자연, 지속가능성, 건강, 힐링 등)가 반영된 공간 디자인, 건축, 인테리어, 가구, 소품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금산 외곽에 조성 중인 '인삼 아토피 힐링마을' 프로젝트는 주거 공간 전체를 인삼의 치유적 가치를 중심으로 설계한 라이프스타일 기반 부동산 개발의 좋은 사례다.
인삼 라이프스타일과 관련해 아쉬운 것은 재배지 경관이다. 인삼 재배지를 지배하는 시각적 요소는 '해가림'이라 불리는 검은색 차광막이다. 이 폴리에틸렌 소재의 인공 구조물은 재배지를 태양광 발전소와 유사한 모습으로 보이게 한다. 금산인삼박물관의 자료에 따르면, 인삼재배지가 항상 현재와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해가림용 차광재는 친환경 소재인 볏짚이었고, 지지 구조물인 장대는 자연 소재인 목재였다.
인삼 재배지는 도시 경관과 마찬가지로 한국 농촌 경관이 현대화 과정에서 심미적 가치보다 기능적 효율성을 우선시하며 점차 획일화됐다. 이제부터라도 인삼 재배지 경관을 단순한 생산 효율성보다는 1차(농업)·2차(가공)·3차(서비스업) 산업을 융합한 6차 산업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즉, 인삼의 생산성과 더불어 인삼 체험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도록 매력적으로 농업 경관을 관리해야 한다.
대안과 제언
대안은 시내에 건축마을을 조성해 그곳에 인삼 리테일 콘텐츠를 집적시키는 것이다. 필자의 언어로는 '건축 주도 문화지구'를 조성하는 것이다. 인삼 카페, 인삼 스파, 인삼 테마 숙박, 인삼 체험 공간 등 다양한 리테일 비즈니스가 활성화된다면, 금산은 단순한 '인삼 구매 장소'가 아닌 '인삼 문화 체험의 중심지'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인삼을 라이프스타일, 콘텐츠, 문화공간, 디자인, 도시재생 비즈니스로 전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삼 콘텐츠를 체계적으로 사업화할 수 있는 사업자와 창업자가 필요하다. 이들이 경험 리테일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인삼 가공, 건축과 디자인, 장사 분야에서 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 인삼 리테일 사업자를 육성하고 이들에게 적절한 기술을 훈련하는 로컬 메이커스페이스 운영을 건의한다.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금산과 같이 압도적인 지역 자원을 보유한 지역은 지역 소멸 문제를 쉽게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특산물 산업을 1차, 2차, 3차 산업으로 한정하지 말고, 이를 융복합한 경험 리테일 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 특산물을 빨리 재배하고 가공해 시장으로 공급하는 것이 아니고, 이를 현지에서 도시 콘텐츠로 만들어 정주 요건을 개선하고 로컬 브랜드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경험 리테일 생태계를 6차 산업이라고 부를 수 있으나, 지금까지 추진한 체험마을 사업과 다른 인삼 콘텐츠 타운, 인삼 문화지구 사업이다. 진정한 지역 발전은 산업 구조의 완성, 즉 '생산-가공-유통-경험'의 완전한 가치사슬 구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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