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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Oct 07. 2021

소상공인 지원은 생태계 지원으로

소상공인 정책이 혼란스러운 이유는 생태계 개념의 부재다. 소상공인 산업이 역동적으로 발전하려면 제조업과 첨단산업과 마찬가지로 개인 기업 지원보다는 생태계 지원 중심으로 육성해야 한다.


문제는 소상공인 생태계의 정의다. 제조업과 첨단산업의 생태계는 클러스터, 공급망, 유통 채널, 혁신시스템, 투자 생태계, 인재 양성 시스템 등으로 정의하지만, 소상공인 생태계는 그런 산업적 방식이 적합하지 않다. 소상공인에게 가장 중요한 생태계는 이미 그들의 활동 장소로 자리 잡은 상권이다. 소상공인의 경제 활동이 대부분 상권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소상공인이 활동하는 상권을 로컬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배출하는 생태계로 지원하고 육성하는 것이 소상공인 생태계 정책이다.


하지만 현재의 상권 정책으로는 의미 있는 소상공인 생태계를 만들기 어렵다. 가장 큰 구조적 한계가 집단행동문제다. 상권에 참여하는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장기적으로는 서로 협력해야 할 유인이 있지만, 단기 이익 추구, 특히 위계질서로 이해되는 임대인-임차인의 적대적인 관계가 상호 협력을 어렵게 만든다. 많은 상권이 젠트리피케이션, 중복 투자, 상가 과잉 공급 등의 집단적 리스크를 극복하지 못하는 이유다.


정부가 상권에서 활동하는 소상공인의 집단적 리스크를 줄여 주려면, 시장 기재를 보완하는 새로운 상권관리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민간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상권 콘텐츠를 강화하는 생태계를 말한다.


상권 중심의 소상공인 생태계 구축을 위한 정부의 과제는 크게 5개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읍면동 단위의 상권 구획이다. 상권 범위가 생활권으로 확장하는 상황에서 상권을 현재와 같이 전통시장 중심으로 정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전통시장, 골목상권, 대로변 상권 등 생활권에 포함된 상권을 모두 포함한 포괄적 개념이 필요하다. 유동인구 기준도 좋은 기준이 아니다. SNS와 위치 기반 서비스가 활성화됨에 따라 소비자 취향과 이동이 수시로 변화하기 때문에 일정 시점에 측정된 유동인구로 상권을 구획해 관리하는 방식은 효율적이지 않다.


둘째, 상권 관리 권한의 읍면동 이양이다. 현재 기초단체가 상권 관리와 활성화 기능을 갖고 있지만, 상권이 형성되는 생활권에 가까운 행정단위는 시군구가 아닌 읍면동이다. 현장과 가까운 읍면동 사무소에서 주민단체와 협력해 상권 활성화에 필요한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셋째, 상권 관리 전문가의 양성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민간의 역량을 상권활성화의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한다. 정부와 민간이 그동안 상권활성화 사업을 통해 상권 개발 전문성을 키워왔지만, 전국의 모든 지역에서 진행되는 상권 사업을 지원할 만큼의 인력을 보유하지는 못한다. 상인회, 주민회, 시민단체가 적극적으로 참여할지도 장담할 수 없다. 이런 이유에서 대규모 상권 재생 사업은 충분한 규모의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이해당사자 참여를 유인하는 장치를 마련한 후 추진해야 한다.


넷째, 건축환경의 관리다. 오프라인 상권의 가장 큰 경쟁력은 매력적인 공간과 거리다. 상권을 재생하려면 불가피하게 골목길, 가로, 건물을 재생해야 한다. 결국 소상공인 생태계 문제는 소상공인이 사업하기 좋은 건축환경을 조성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쿠움파트너스의 김종석 대표는 동네 건축 마스터플랜을 짜고, 이에 따라 건물을 신축하거나 개축하는 사업자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건축 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을 제안한다.


다섯째, 콘텐츠 공급 시스템의 구축이다. 각 기업의 콘텐츠 강화는 기업의 일이지만, 상권 전체의 콘텐츠는 개인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보강하기 어려울 수 있다. 상권 안에 새로운 기업을 유치하고 보육하며 동시에 기존 기업의 콘텐츠 개선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기구나 기업이 있어야 한다. 지속 가능성 기준에서 바람직한 것은 상권 관리를 통해 수익일 올릴 수 있는 '지역관리회사'의 진입이다. 일부 지역에서 상업 부동산 개발의 목적으로 다수의 상업 공간을 개발해 상권 전체에 새로운 콘텐츠를 공급하는 기업이 활동한다.


민간 지역관리회사의 진입이 어렵지만 콘텐츠 개발 잠재성이 높은 지역에서는 정부가 '로컬 콘텐츠 메이커 스페이스'(로컬 콘텐츠 사업화에 필요한 교육, 장비, 작업장을 제공)를 운영해 로컬 콘텐츠를 사업화할 창업자를 직접 육성하는 것도 대안이다.


현재 행정 시스템 하에서 소상공인 생태계 사업을 해야 한다면 생태계 사업의 핵심 과제는 상권 건축환경의 개선과 상권 콘텐츠 공급 시스템의 구축이다. 기존 상권 활성화 사업이 마케팅, 주차장 건설, 디지털 전환 등 기존 상인의 수익을 높이는 사업에 집중했다면, 새로운 상권 생태계 사업은 건축환경, 콘텐츠 공급 등 상권 전체의 콘텐츠 경쟁력을 높이는 사업을 중심으로 추진한다.  


새로운 유형의 생태계 사업에 적합한 지역이 문화자원이 풍부한 소멸지역 읍면 소재지일 수 있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지역 자원을 발굴해 이를 사업화하는데 필요한 건축디자인과 로컬 콘텐츠 메이커 스페이스를 지원한다면, 상당수의 소멸지역 읍면소재지를 자생적인 성장이 가능하고 매력적인 생활환경과 로컬 브랜드를 제공하는 콘텐츠 타운으로 육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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