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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업타운걸 Mar 16. 2021

우리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집을 나왔다. 왜냐면

바스락 바스락.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0월. 친한 이들이 뉴욕을 떠나고 부쩍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기 시작하던 때였다.


나는 환기를 위해서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 이상 늘 부엌 창문을 방충망을 친 채로 열어두고 지냈다. 바스락 바스락. 그 날은 유난히 바람이 세게 부는지 방 안에 있는데도 자꾸만 비닐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창문 밑에 모아둔 비닐 봉지에서 나는 소리인가? 그 소리가 점점 거슬리기 시작해 나는 공부를 하다 말고 부엌으로 나가 창문을 닫았다.


이상하네, 바람이 그렇게 센 것 같지는 않은데.


바스락 바스락. 소리는 계속됐다. 책상에 앉아 있다가 짜증이 나서 부엌으로 나가보면 부엌은 조용했다. 잘못 들은 건가. 바깥에서 들려오던 차소리도, 창문을 닫으니 들리지 않았다. 내가 요즘 예민하긴 예민한가 보다.


바스락 바스락. 자려고 누웠는데 또 소리가 났다. 바스락. 짜증이 확 나서 부엌에 가서 불을 켰다. 이번에도 부엌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혹시…?

침대로 돌아가지 않고 불을 끄고 가만히 서서 귀를 기울였다. 바스락 바스락. 설마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불을 켜고 여기저기 살피다 설거지통 옆에서 찢어진 과자봉지를 발견했다. 얼마 전 먹다가 집게로 집어 놓았던 것이었는데, 정면이 파헤쳐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설거지할 때 먹지도 않은 과자 조각이 싱크대에 떨어져 있었던 생각이 났다.


과자 봉지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나는 침대로 돌아와 벌벌 떨었다. 눈으로 보지 않고 소리만 들어서 더 무섭게 느껴졌다. 도대체 몇 마리가 들어온 건지, 얼마나 큰 것들이 들어온 건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 찾아보고 나는 밤새 부엌을 정리했다. 상온에 두었던 음식은 전부 내다 버렸다.


다음 날 건물 관리인에게 그 사실을 알렸더니 심드렁하게 다른 집에도 쥐가 들었다면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가끔 있는 일이라고 했다. 소독 업체에 연락해서 쥐약이랑 끈끈이랑 쥐덫을 놓아주기로 했는데 며칠 시간이 걸릴 거라고 했다.


그 때 나는 번아웃을 가까스로 버티고 있었다. 그런 나의 유일한 쉼의 공간에 등장한 쥐는 나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말았다. 쥐가 처음 들어왔던 밤엔, 그게 그냥 한 마리 쥐가 아니라 내가 여기에서 혼자서 견뎌야하는 모든 것의 상징 같아 실제보다 훨씬 크고 무섭게 느껴졌다.


나는 도무지 집에 있을 자신이 없어서 아는 언니네 집으로 몸을 피했다.홀랑 밤을 지새우고 학교에 가서 그 날의 할일을 모두 다 마친 뒤 잠깐 집에 들러 후다닥 짐을 챙겼다. 저녁 늦게 그 집에 도착하자 나는 그제야 눈물이 났다. 왜 하필 지금 같은 때 나에게 이런 일이. 하루를 무사히 보내고 난 안도감에 서러움, 분함, 두려움, 원망 같은 것들이 한데 뒤엉켜 눈물이 돼 쏟아졌다.


사실 우습게도 내가 그 집에 가게 된 것은 집 주인 언니가 집을 비우게 되어 고양이 밥 줄 사람이 필요해서였다.


“야, 그럼 그 고양이를 너희 집에 데려가면 되겠네!”


이야기를 들은 이들은 다들 저렇게 말했지만 그게 생각처럼 단순한 일은 아니었다. 고양이는 사람을 무서워해평소에  침대 밑에서 지냈기 때문이다.  때가 돼서 연어캔을 따는 소리가  때만 잠깐 얼굴을 비출 뿐이었다.


낯가림이 심해서 비록 쥐 잡는 데는 도움이 안됐지만 그 고양이는 나름의 방식으로 나를 위로해 주었다. 종일 침대 밑에 있다가 밤이면 잠깐 침대 위로 올라와 내게 머리를 디밀고 쓰다듬어 달라고 하는 것으로, 내게 온기를 나누어 주고 다시 침대 밑으로 사라지는 것으로.


그 때 섣부르게 이래라 저래라 네가 이랬어야지 저랬어야지, 하는 말들은 되려 놀란 내 마음에 상처가 되었고 나를 더 불안하게 했다.


내게 필요한 것은 이해와 공감이었다. 그럴 때 그 겁쟁이 고양이가 잠깐 내 곁으로 와 가만히 엎드리면 그게 그렇게 위로가 되었다. 그 섬약한 애가 침대 위로 올라오면, 쥐 때문에 놀란 네 마음 내가 잘 안다고 다독여 주러 고민 끝에 용기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손에 머리를 맡긴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으면 우리 둘의 모양새가 어딘지 짠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해서 눈물과 웃음이 동시에 나왔다.


그렇게 며칠 동안 겁많은 고양이와 함께 지내며 마음을 추스르고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학기 중이었고 해야 할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얼른 일상을 회복하고 싶었다.


하지만 쥐약이랑 쥐덫을 놓는다고 문제가 금방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집에 들어갈 때면 나는 혹시 집에 쥐가 죽어 있을까봐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졌다. 집에 들어가서는 심호흡을 하고 쥐약이랑 끈끈이, 덫이 놓인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 일과의 일부가 됐다.


그러고선 한동안 집에서 밥을 하기도, 먹기도 싫어 가능한 밖에서 사먹고 집에는 잠만 자러 들어가는 날들이 이어졌다. 혼자만의 공간이 생긴 걸 누구보다도 좋아했었던 내게 정말로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마침내 소독업체 아저씨가 쥐가 다닐 만한 구멍을 다 찾아서 막고 나서야 집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쥐 사건 이후에 나는 잔잔하게 반복되는 일상을 회복하고 유지하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에 집중하고 나를 위한 밥을 차리기 시작하면서 그 해 겨울, 나는 번아웃을 이겨낼 수 있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누군가는 그때 우리집에 들어온 것이 보통 쥐가 아니라 “쥐저스”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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