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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업타운걸 Mar 13. 2021

늘 사람이 들고나는 이 도시에서

안녕하는 방법

이상한 일이었다. 그 해, 몇 년 동안 눈앞에 선명하게 있었던 나의 굵직한 목표들을 다 이루었는데 성취감보다는 허망함이 들었다.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학생회 부회장으로서 맡은 행사도 성황리에 마친 뒤였다.

그러니까, 해야만 하는 것들을 끝내고 비로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막상 손꼽아 기다려온 그 순간이 되니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제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고 내가 공부하고 싶은 것만 공부하면 되었는데. 갑자기 머리가 굳은 것만 같았다.


돌아보면 그 무렵, 내게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하루가 멀다하고 뉴욕에서 만난 사람들과 차례로 이별하고 있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썰물처럼 사람들이 내 곁에서 빠져나갔다. 사촌 언니를 시작으로, 그 해에는 내가 좋아하고 가깝게 지내던 이들이 뉴욕을 많이 떠났다. 물론 하루 아침에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 명을 보내고 돌아서면 마음 추스를 새 없이 다음 사람이 떠날 차례가 왔다. 늘 함께일 것만 같았던 동기들이, 친하게 지냈던 학교 바깥의 친구들이, 하나 둘 도시를 떠났다. 리서치를 위해서, 공부가 끝나서, 집안 사정이 있어서, 직장을 옮기게 되어서, 가족이 생겨서. 좋아하던 사람들의 난 자리는 내게 큰 상실감을 안겨 주었고, 그 빈자리가 쉽게 메워지지 않았다. 이 모든 변화를 동시에 맞이하기에 나는 너무 지쳐있었다. 변화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갑작스럽게 많은 것이 변하고 있었다.



사실 여름까지만 해도 나는 그럭저럭 버티고 있었다. 대학 시절의 친구들이 잠깐 뉴욕에  있어서 떠난 사람들의  자리를 크게 느낄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 하지만 그건 일종의 착시현상이었다.


 출장을 와서 매일 같이 밥을 먹던 친구가 중국으로 돌아가고, 휴가를 와서 우리 집에서 매일 같이 일어나고 잠들던 친구가 서울로 돌아간  학기가 시작되면서 비로소 나는 상실감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가끔 같이 밥을 먹고 맥주를 마시면서 안부를 묻고 시간을 보내던 이들이 더이상 없다는  실감하게 되면서 내게는 멘붕이 크게 왔다.


사람의  자리란 이런 것이구나.  자리를 깨닫기 시작하면서,  마음은 이전보다  쉽게 자주 무너졌다.


처음에 사람들의 물리적 부재에서 느끼기 시작한 나의 상실감은, 내가 글을 쓰지 못하면서 배가 되었다. 다들 초침, 분침의 속도로 앞으로 가고 있는데 나는 시침의 속도로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그동안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내가 그간 이룬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유학을 새로 온 것처럼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이제는 없는, 뉴욕에서 의지하고 지내던 사람들 생각이 자꾸 났다. 누구라면 당장 내가 있는 곳으로 찾아와 내 고민을 들어줄 텐데, 누구라면 이럴 때 꼭 안아줄 텐데. 이따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또 떠날텐데” 하는 생각에 선뜻 곁을 내어주기가 어려웠고, 무엇보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의 가장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나는 한동안 혼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 해 가장 기억에 남는 이별은 예고없이 찾아왔다. 불쑥, 학과 행정을 담당하던 아줌마가 세상을 뜬 것이다. 많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인사를 가고싶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럴 새도 없이 돌아가셨다고 했다. 나는 한동안 학과 사무실에서 행정 조교로 일을 하면서 아줌마와 적지 않은 시간을 보냈던 터라 갑작스러운 부고에 마음이 조금 더 내려앉았다. 그해 연이어 사람들을 떠나보내면서 나는 이별하는 일에 안 그래도 지쳐있었는데, 죽음으로 이별을 맞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아줌마의 죽음을 핑계 삼아 나는 그간 참고 있던 눈물을 쏟았다. 한 명 한 명 떠날 때 울지 못하고 담아두었던 눈물을 장례식장에서 쏟아내고 나니 마음이 조금 나아졌다.


사람이 들고 나는 것이 일상인 이 도시에서, 누군가를 보내고 돌아서는 경험에 나는 그 후로도 익숙해지지 못했다. 작별 인사를 하는 날이면, 여전히 서운함과 아쉬움에 오랫동안 뒤척인다. 숱하게 사람들과 안녕해도 여전히 나는 안녕이라고 말하는 일에 서툴지만, 그 동안 배운 것이 있다면 뉴욕에서 떠나보낸 만큼 다른 곳에서 반갑게 만날 얼굴들이 늘었다는 것. 그리고 안녕하는 순간에 너무 아쉽지 않도록, 평소에 함께 보내는 순간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것. 그러면 조금은 덜 슬퍼진다는 것.

It's me.

바깥에서 만날 사람들이 줄고, 그들과 보내던 시간을 오롯이 혼자 보내게 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집밥을 열심히 차려 먹게 되었다. 그럴 때면 도시를 떠난 사람들을, 함께 먹었던 밥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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