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7시 10분, 나는 주무관님이 운전하는 노란 버스를 타고 학교를 나선다.
20여 분을 달려 첫 번째 코스에서 우성이를 맞이한다. 할아버지의 차에서 내려 총총총 달려온다. 어눌하지만 큰 소리로 인사를 하고 우성이는 늘 앉는 자리로 가서, 가방을 풀지도 않은 채 가만히 앉는다.
나의 하루 일과는 이렇게 시작된다.
나는 오랜 시간 교회의 부목사로 살아왔다.
가장 깨끗해야 할 곳은 썩어 있었다. 목사라는 자가 헌금을 횡령을 하고 서슴없이 표절하는 일들의 썩어 문드러진 일들을 드러내자 오히려 나가라고 하는 소리에 밀려 나오게 되었다. 나는 내부 고발자가 되어 법적 투쟁을 거쳐 복직의 문 턱에 섰으나, 교회의 교활한 거짓말로 속게 되고 나는 더 이상 복직하기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새로운 일로 삶을 살아가야 했다.
그렇게 만난 직장이 특수학교의 통학지도원이었다. 하루 5시간,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통학을 돕는 일이다.
통학버스에 탑승하여 아이들의 등·하교 장소에서 보호자로부터 아이의 손을 넘겨받고, 학교가 끝나면 다시 보호자에게 그 손을 건넨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장애를 가지고 있고, 일반적인 소통이 힘들다.
버스 안은 돌발적인 행동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는 장소가 된다.
갑자기 벨트를 풀고 일어나는 아이, 타기 싫다고 몸부림치는 아이, 큰소리로 울고 웃는 아이, 창문을 두드리고 자신의 머리를 치는 아이, 침을 뱉고 문지르고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
“속이지 않는 존재들 곁에서, 나는 다시 숨을 쉰다.”
나는 이 아이들과 하루 3시간 정도를 차 안에 보낸다.
몇 개월의 시간이 지나고, 나는 이 일이 좋아졌다. 소통 너머의 소통을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좋고, 이 아이들의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시간이 좋다.
내가 살아나는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언제까지 하게 될지 모르는 이 일을 기록하고 싶어졌다.
아이들과 학교로, 집으로 가는 시간들과 그 속의 소통이 어떻게 벽을 허물어갔는지,
그 시간들이 소중하여 기록으로 남긴다.
장애로 아이의 삶이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참고로 이 글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 나는 장애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이해만을 가지고 있었다.
나보다 먼저 이 일을 하고 계신 분들의 다양한 조언을 듣게 되었다.
“누구누구는 머리로 받습니다.”
“얼굴을 가까이 대지 마세요.”
“그 아이는 손의 힘이 세어 꺾습니다.”
“침을 뱉습니다. 장갑을 착용하세요.”
팔에 남은 흉터들을 보여주며 “선생님도 곧 이렇게 될 겁니다.”
“단호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친절하게 해도 안 됩니다.”
“길게 말하면 못 알아듣습니다.”
“호통칠 땐 단호하게.”
듣는 말마다 머릿속에 그림처럼 맴돌았다.
'아…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아이들의 명단을 확인하고, 자리를 정하고, 벨트를 채우고, 특성을 기록하며 부모님의 얼굴을 익히는 일... 모든 게 처음이었다.
“학기 초엔 힘이 들 거예요.”
“아이들도 방학을 보냈기 때문에 적응이 쉽지 않아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곧 알게 되었다.
차에 태우자 도망가는 아이, 울기만 하는 아이, 벨트를 끊임없이 푸는 아이, 침을 뱉는 아이,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몸을 흔드는 아이, 내리겠다고 떼쓰는 아이, 안 내리겠다고 떼쓰는 아이... 나는 첫날의 등굣길을 잊을 수 없다.
“하… 이거 할 수 있을까.”
한 아이를 진정시키고 벨트를 채우면 다른 아이가 일어난다.
그 아이를 앉히면 또 다른 아이가 소리를 지른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 학교에 도착했을 때, 몸에서 모든 기운이 빠져나갔다.
다른 차 선생님이 나에게 묻는다.
“어땠어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분은 덧붙인다.
“선생님, 그 차는 얌전한 거예요.”
“네??”
그분은 다시 웃으며 말한다.
“하교 땐 더 심할 거예요. 학교에서 자극을 받아서요.”
말이 통하지 않는 아이들, 자기만의 세계에 깊이 들어가 있는 아이들.
그 아이들을 안전하게 집과 학교로 데려다주는 일. 보람이 있으면서도 까마득함이 몰려왔다.
드라마 속 대사가 생각난다.
“살다 보면 살아진다"
'그래.. 하다 보면 되겠지'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아이들에겐 속임수가 없다. 교묘함도 없고, 가식도 없다.
자기를 조절할 줄 모른다 하여 ‘장애’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세상엔 감정과 본심을 조절하며 타인의 삶을 해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누군가를 속이고, 이용하고, 겉과 속을 다르게 꾸며 잇속을 챙기고, 법을 피해 손해를 끼치며 알량한 권력으로 반칙을 일삼는 이들.
이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엔 더 큰 장애를 가진 이들이 득실거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런 세상인데…
그 생각을 하니 부담이 덜어졌다.
그래, 하다 보면 된다. 살다 보면 살아지듯이, 하다 보면 될 거다.
그렇게 나의 통학지도원 일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