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언어로 소통 할 수 없다

소통 너머의 소통

by 약속의 땅

소통.
일상 속에서 우리는 이 말을 ‘말이 통한다’는 뜻으로 쓴다. 대화가 된다는 것은, 나와 상대방의 말속에 담긴 의미들이 서로를 향해 닿아간다는 뜻이다.


말이 통하고, 의미가 교환되고, 그 안에 공감과 인정이 깃들면 우리는 자연스레 가까워진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 말이 막히고 뜻이 엇갈리면, 마음의 거리도 멀어질 수밖에 없다.


소통의 문제는 인간 사회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이상 피할 수 없는 문제다. 부부 사이에도,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친구나 동료 사이에도…

정치적 견해나 가치관, 기질과 성향의 차이로 인해 우리는 종종 소통의 벽 앞에 선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어쩌면, 대화와 토론, 이해의 노력을 통해 조금씩 좁혀갈 수 있는 일들이다.


하지만 그 모든 가능성을 넘어서는,

훨씬 근원적인 벽이 있다.

말이 아예 통하지 않을 때,

의미가 아니라 언어 자체가 닿지 않을 때,


나는 지금, 매일 그 문제 앞에 서 있다.

통학지도원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과 함께 버스를 타기 시작하면서,

나는 ‘1차원적 소통’의 한계 앞에 부딪혔다.
"벨트를 풀면 안 돼"

라는 아주 단순한 말조차 아이들에게는 닿지 않는다.
이해의 부족이 아니라, 성향의 차이도 아닌, 그야말로 다른 행성의 언어처럼 내 말은 미끄러져 나가고 만다.

세종대왕께서 창제하신 위대한 한글도, 이 버스 안에서는 무력하게 느껴진다. 나는 처음으로 ‘내 언어의 한계’를 실감했다.


절반쯤 되는 아이들은 내 말을 듣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또 다른 절반은 그나마 어떤 방식으로든 반응을 보이지만, 대체로 ‘이해함’과는 거리가 있다.


하루하루가 반복되는 난감함 속에서, 나는 결국 말이 아닌 ‘행동’으로 아이들과 만나기 시작했다.
격한 울음과 소리지름, 갑작스러운 행동, 이유 없는 반복 속에서 나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등을 토닥이고, 눈을 바라보며 조용히 함께 앉아 있을 뿐이다.


침을 반복해서 뱉는 아이에게 “그러면 안 돼”라고 수십 번 말해도 그 말은 공기 속을 흘러 사라질 뿐,

행동은 계속된다.


운행 중 벨트를 풀고 일어나 돌아다니는 아이는, 앉히면 일어서고, 채우면 풀어버린다. 혼내고, 달래고, 부탁해도, 내 말은 아이의 몸에 닿지 못한다.


그중 한 아이, 종범이는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창문을 치며 운다. 말리면 더 격해지고, 두면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운다.


손으로 자기 머리를 치며, 얼굴을 내리치며, 고통을 토해낸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저 그 손을 잡고, 억제하고, 안 다치게 지키는 수밖에 없다.


어느 날, 종범이의 손을 잡아 아래로 내리고,

다른 손으로는 그의 어깨에 조용히 팔을 얹었다.
그리고 말없이, 아이의 볼을 쓰다듬었다.

잠시 뒤, 아이가 조용해졌다.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얌전히 앉아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아이의 팔에서 힘이 빠지는 걸 느꼈다.
두 손으로 그의 손을 잡고 살살 문질러주며, 조용히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지쳐서 멈춘 걸까, 우연이었을까.
하지만 다음 날도 종범이는 울었고, 나는 다시 조용히 그의 옆에 앉았다.

어깨에 팔을 얹고, 손을 잡고, 볼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다시 아이는 조용해졌다.


그날 이후, 나는 종범이를 버스에 태우자마자 벨트를 채우고 무조건 먼저 손을 잡고,

머리를 쓰다듬고, 어깨를 토닥인다.

그렇게 먼저 안정을 준 후에 다른 아이들을 돌본다.
놀랍게도 이 작은 루틴이 종범이와 나 사이를 이어주었다.


물론 여전히 반복되는 행동들은 있다.
격한 날도 있고,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날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 차 안에서만큼은 자기 자신을 세게 때리는 행동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나는 말이 아니라 손으로, 억지로가 아니라

기다림으로, 그리고 진심을 담은 아주 작은 행동들로
조금씩 그 아이와 연결되고 있다는 걸 느낀다.


이것도 ‘소통’이 아닐까.
말을 통한 소통이 아닌, 소통 너머의 또 다른 소통.
그 아이의 손을 잡는 순간, 그 어깨에 팔을 얹는 순간,
나는 나의 마음을 건넨다.


그리고 깨닫는다.
보통의 인간관계에서도 이런 진심이 담긴 행동을 통해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서로가 느낀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조금 더 반목과 갈등 속에서 좋은 방향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내 주변의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는
진심이 담긴 마음과 행동으로

소통을 이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소통이 막힌 채 살아가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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