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라고 묻지 않기

통역되지 않는 마음

by 약속의 땅

아이들의 행동은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다시 비슷하다.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아이는 많지 않다.
대부분은 눈을 마주치는 것도, 자신의 뜻을 드러내는 것도 서툴다.

그렇다고 해서 의사가 없는 건 아니다.

울고, 소리를 지르고, 때로는 내 손길을 잡아끌며 거부하는 방식으로
아이들은 자기만의 언어를 흩날린다.

가령, 의자를 끊임없이 발로 차는 아이가 있다.
그 소리에 예민한 몇몇 아이들이 눈을 질끈 감고 불편해할 때면
나는 조심스레 아이의 다리에 손을 대고 말해본다.


“안 돼요. 다른 친구가 싫어해요.”


하지만 이 단순한 말은 좀처럼 가닿지 않는다.
내가 손을 떼는 순간, 다시 시작되는 리듬.
쿵, 쿵, 쿵. 탁. 탁. 탁.

마치 나의 개입이 잠시 멈춰진 틈을 알아챘다는 듯
아이의 발은 바쁘게 돌아간다.


‘왜?’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 의중을 알 길은 없다.
다만, 아이는 자신의 의사를 그렇게 표현한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드러나는 아이들의 의사표현에
나는 묻고 또 묻고, 다시 묻고는 한다.


‘왜 자꾸 그러니?’ ‘하지 마.’
‘시끄러워.’ ‘다른 아이들이 싫어해.’


메아리 없는 질문인 걸 알면서도,
답답한 마음에 푸념처럼 내뱉을 뿐이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이상행동을 한두 가지씩 가지고 있다.
자신의 코가 막힌다고 코를 치고, 목을 치기도 한다.
광부처럼 코를 사정없이 파고, 묻어 나온 것을 입으로 가져간다.
의자를 발로 차고, 컵홀더를 손가락으로 딸그락딸그락 무한히 튕긴다.
차가 멈추면 빨리 가라고 소리 지르고,
심사가 틀리면 침을 뱉는다.


모국어가 통하지 않는 건 비단 외국만의 일이 아니다.
아이들은 수많은 외국어를 쏟아낸다.
그리고 행동으로 말한다.


내가 차 안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안 돼.’라는 말이다.
가장 많이 사용하지만, 가장 먹히지 않는 말.

아이들의 행동이 끝날 때쯤이면
나도 모르게 ‘안 돼, 안 돼’를 외치고,
아이들은 그 말을 따라 하면서 다시 행동한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매일 아침 무한의 굴레가 펼쳐진다.

ChatGPT Image 2025년 6월 13일 오전 11_26_35.png

아이들을 다 태우고 학교로 가는 길.
울음소리, 웃음소리, 무엇인가를 치는 소리,

같은 패턴으로 반복되는 소리,
아이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 소리,
그리고 분당 한 번꼴로 들려오는
“선생님, 학교 가요?”라는 질문.
그 질문을 따라 하는 다른 아이의 소리...

때때로 어떤 아이의 소리가 잠잠해져 가보면
조용히 잠이 들어 있다.


생각해 보면, 일반학교를 다니는 또래 아이들도
정신없이 장난치고, 하염없이 재잘댄다.
그 아이들의 소리와 지금 노랑 4호차에 탄 아이들의 소리.
무엇이 다를까 생각해 본다.


그저 아이들은 저마다의 소리로
자신의 감정과 의사, 마음을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아이들의 소리를 다 해석할 수도, 다 이해할 수도 없지만
반복 속에서 조금씩 그 뜻과 감정을 알아가고 있다.


행동을 보면서 '왜'라고 묻는 이상, 그 어떤 답도 들을 수 없다.

그래서 더 이상, '왜?'라고 묻지 않기로 했다.


옆자리에 앉은 신형이가 창밖을 보며 무언가를 중얼거린다.
그리고 왼손으로 안전벨트를 위로 올려 나에게 건넨다.
“고마워~”

나는 웃으며 벨트를 채운다.

이해할 수 없는 말들과 행동이
무한히 밀려오지만,
조금씩, 우리는 서로의 언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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