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성이의 노래

하교의 찬가

by 약속의 땅

20여 분을 달려 도착하는 도시 외곽. 논과 밭이 이어지고, 목장이 드문드문 보인다. 그곳 교차로 위에 낡은 트럭 한 대가 서 있다. 트럭의 문이 열리면 우성이가 총총히 내려온다. 아마도 할아버지와 함께, 버스가 다가오는 것을 멀리서부터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버스가 멈추고 문이 열리면 나는 차에서 내려 우성이를 맞이한다.

우성이 어서 와”
“안녕하세요.”
어눌하지만 또렷한 인사. 우성이는 익숙한 발걸음으로 자리를 찾아간다. 뒤쪽에서 세 번째, 우성이의 자리다.
가방을 멘 채로, 어깨가 굽은 자세로 앉는다. 불편해 보인다.
“우성아, 가방 벗고 옆에 놓자. 그럼 편할 거야.”
그러자 조금 높은 성량으로 되받아친다.
“괜찮아요. 편해요.

우성이는 늘 가방을 멘 채로 간다.
잠은 잘 잤는지, 주말은 어땠는지, 아침은 먹었는지 묻는 내 질문에
“네! 먹었어요! 네! 잘 잤어요!”
큰 소리로 씩씩하게 대답한다. 긴 문장은 어려워도, 명확한 질문에는 힘 있게 답한다.


등굣길의 우성이는 언제나 거북이처럼 등을 굽힌 채 조용히 앉아 있지만, 하굣길의 우성이는 다르다.
우성인 노래를 부른다.
가사를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 멜로디도 조금은 엉성한 듯하지만, 신이 나서 흥얼거린다.
“시끄러워”
뒷자리 친구가 핀잔을 줘도 아랑곳 않는다.
내가 “우성이, 소리 작게~” 하면
“네에~!”
또박또박 대답하지만, 노래의 크기는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학교가 끝났다는 기쁨이, 우성이에게는 노래로 표현되는 걸까? 그래서 그렇게 신나게 노래하는 걸까?


우성이의 앞날을 나는 알 수 없다.
날마다 손주를 등하교를 시키는 할아버지의 손길이 언제까지 함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고등학교 이후 전공과 진학은 어려울 것이고,
그러면 대부분의 경우처럼

시설로 향하게 될지 모른다.


스스로 선택하는 삶, 그 당연한 선택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 여전히 이 사회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지 않다.

도움의 손길은 있지만, 그 손길이 삶 전체를 품을 수 없다. 그리고 사회로 녹아 들어 갈 수 없다. 시설이라는 보호의 울타리가 있지만 그건 격리의 또 다른 의미일 뿐이다.

‘너는 장애로 인해 우리와 호흡을 할 수 없어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우성이의 노래가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하교의 기쁨을 노래하는 우성이의 노래가 생을 사는 동안 다양한 모습으로 울려 퍼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