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불문 원종이

원종의 통학길

by 약속의 땅


매일 아침 8시 9분.
한 초등학교 앞 정류장에 노란 통학버스가 도착하면, 언제나 같은 자리, 같은 시그니처 포즈로 먼저 기다리고 있는 아이가 있다.
원종이다. 한 번도 결석하지 않은, 이 버스의 개근왕 중의하나다.


고등학교 2학년. 겉보기엔 일반 학생들과 다를 바 없다. 찐한 눈썹이 매력적이고, 웃을 때 얼굴 가득 환한 미소가 만개한다.

원종이는 늘 손에는 핸드폰을 쥐고 있다.

차를 탈 때도, 탄 후에도, 학교 가는 1시간여 남짓 그렇게 간다.


힘 겨루기

원종이의 통학길에는 나름의 ‘의식’이 있다.
가끔, 아니면 자주 갑작스러운 큰 소리를 내고,발을 쿵쿵 구른다. 처음 듣는 사람이라면 깜짝 놀랄 만큼 큰 소리다. 그렇게 스스로의 세계를 열어젖히는 시간이다.


몇 번을 반복하다 보면 이내 잠잠해지기에 가만히 둔다. 그런데 간혹 그 진동이 멈추지 않을 때가 있다. 한 주에 한 두 번 정도 그럴 땐 내가 출동한다.


“원종아, 쿵쿵 안 돼요! 조용히 해야지.”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원종이는 내 손을 잡으려 손을 뻗는다.
원종이는 힘이 센 아이다.
이전 선생님은 여자분이셨는데 손목이 몇 번이나 꺾여서 다치시기도 했다.


원종이는 손을 잡으면, 재빠르게 깍지를 낀다.
그리고 힘을 주기 시작한다. 마치 프로레슬링의 두 선수가 손을 맞잡고 서로의 세계를 겨루듯.

나 역시 깍지를 낀 손에 힘을 주고 아래로 눌러본다. 아직은 근력이 내가 한 수 위다. 나는 힘을 천천히 빼도록 유도한다. 서로의 손끝에 감정이 흐른다. 도전과 제압, 의식과 유연함.

그리고 마지막엔 고개를 숙이고 다시 핸드폰 속으로 스며든다. 한 주에 한두 번쯤 벌어지는,원종이만의 소통 방식이다.


최근에는 손을 잡을 때마다 나는 가르쳐 준다.

“원종~ 손은 이렇게“

“악수처럼. 살살 잡아야지.”

눈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하며 가르친다.

악수하는 모양으로 손을 만들어 주고 잡는다.
조금씩, 조금씩 손에 들어간 힘이 빠져간다.

이제는 먼저 확인한다.

“어떻게 잡지?”
“옳지, 살살 잡아야지.”

그 짧은 대화 속에 교감이 오간다.
긴 말 없이도 통하는

말 없는 언어가 거기 있다.


원종이의 장르

원종이의 버스 안 세상은 다양하다.
트로트, 퀸, 메탈리카, 아이유, 변진섭, 뽀로로 오프닝송까지. 찬송가도 흘러나오고, 어느 날은 먹방 소리에 쩝쩝거림이 가득하다.
이문세의 ‘붉은 노을’이 요즘 단골이다.

따라 부르지도 않고 조용히 화면을 응시한다.

그러다 흥에 겨우면 발을 쾅쾅 구른다. 가끔은 나도 모르게 나오는 음악 소리에 흥얼대기도 하고, 운전하시는 주무관님도 웃으며 한 마디 하신다.


"오늘은 안동역이네"

"원종아 네가 퀸을 알어~"


이따금, 우리 차의 ‘군기반장’ 명훈이가 한 소리 쏜다.

“야~ 소리 좀 줄여. 이어폰 가져오라 했지!”

하지만 원종이는 아랑곳 않는다.
딴청 피우며, 묵묵히 자신의 세계를 이어간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아침을 지나고, 각자의 생존법으로 하루를 버틴다.


나는 그런 원종이의 삶이, 좋아하는 노래처럼 흥겹길 바란다. 듣고 싶은 음악을 듣고, 보고 싶은 영상을 보고, 자기만의 리듬대로 살아가는 자유로운 삶이길.


그리고 그 자유를 위해 손에 힘을 빼는 법.

부드럽게 잡는 법도 천천히 배워가길 바란다. 서로의 손을 맞잡으며 우리는 오늘도 힘의 세계를 지나 하루의 첫 장을 넘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세상을 살아가는 어른들의 세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말없이 손에 깍지를 끼고, 자존심과 고집으로 서로에게 팽팽히 힘을 주는 삶.

서로 지지 않기 위해!

꺾이지 않기 위해!

우리도 모르게 손에, 마음에, 말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하지만, 힘을 빼지 않는 이상 소통은 없다.
원종이가 배워가듯, 나도, 그리고 우리 모두도
서로에게 힘을 빼는 법을 배운다면—각자가 좋아하는 노래들이 서로 어긋나는 소음이 아닌 아름다운 화음이 될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아이들에게 배운다.
힘을 빼자. 자존심의 힘을, 고집의 힘을, 내 경험의 힘을 부드럽게 내려놓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