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무게'를 응원한다

민호의 선택

by 약속의 땅

노란 통학버스는 어김없이 7시 10분에 학교를 출발한다. 같은 길, 그러나 조금씩 다른 배경과주인공들이 바뀌는 풍경 속을 달려간다.

요즘은 논마다 흰 점을 찍는 듯 백로가 한창이다. 논에 먹을 것이 많기 때문이겠지.


회색의 왜가리도 나를 봐달라며 중간중간 동상처럼 서 있다. 초록으로 펼쳐진 논 위로 하얀 백로의 점들이 통학길 아침 풍경에 재미를 더한다.


우리 차는 첫 코스에서 유성이를 태우고 두 번째 코스에 정차한다. 항상 먼저 나와 있는 명훈이는 힘차게 인사하고, 자리에 앉아 핸드폰으로 드라마를 본다.
잠시 후 시후와 규민이가 오고, 이내 쌍둥이들이 나타난다. 한 치의 오차 없이 각자의 자리에앉아 각자의 루틴을 시작한다.


그리고 조금 뒤,

우리 학교의 메달리스트 민호가 등장한다.
성큼성큼 걸어와 힘차게 인사하고

나를 번쩍 안아 올린 뒤 볼에 뽀뽀를 한다.

처음엔 조금 무서웠던 이 행동이,

지금은 아침을 여는 민호만의 루틴이 되었다.

아, 가끔 집에서 기분이 나쁜채로 오면

건너 뛴다.

민호의 인사에 나는 여전히 징그럽다며 피하지만, 민호는 씩 웃으며 맨 뒷자리에 가서 이어폰을 낀다. 민호는 엄마랑 나오다가 이제 혼자 등교한다. 민호를 위한 엄마의 자립 훈련이다.


민호는 중학교 3학년, 키는 180cm가 넘고

몸무게는 120kg이 훌쩍 넘는다. 이런 피지컬 덕분에 민호는 학교에서 ‘역도’를 하고 있다.


역도. 무게에 무게를 더해 들어 올리는 경기.
중력을 뿌리치고, 온몸으로 쇳덩이를 들어 올리는 경기. 장미란 선수가 올림픽에서 엄청난 무게를 들어 올렸을 때의 해설이 떠오른다.

“지금, 대한민국의 장미란 선수가 세계를 들어 올렸습니다.”


민호는 그렇게 장미란의 뒤를 따라가고 있다.

얼마 전 체전에서 민호는 동메달과 은메달을 땄다. 차를 타며 해맑게 자랑하던 그 모습이 기억난다.

“저, 메달 두 개 땄어요!”


민호는 틱장애와 발달장애가 있다.

집중력이 짧다. 하지만 그는 그 집중력의 파도를 버티며 훈련을 해냈고,

결국 무대를 견뎌냈다.

학교엔 축하 현수막이 붙었고,
나와 주무관은 민호에게 힘껏 박수를 보냈다.


“이야~ 민호 대단하다! 축하해~ 파이팅!”


사실 민호는 금메달도 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은메달을 확보한 뒤, 집중력이 무너졌고, 금메달 경기에서는 아예 들어 올리지 않았다. 허락된 시간이 지나가도 민호의 바벨은 그대로였다.


선생님들은 애가 타서 애를 쓰며 응원했지만
샘들의 혈압만 올라갈 뿐 민호는 들지 않았다.

금메달은 날아갔다.

하지만 민호는 아쉬움이 전혀 없어 보인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지금 난 들고 싶지 않았을 뿐이에요.”


민호는 비염이 심해 코가 막히면 자기 주먹으로 코를 내려친다. 그럴 땐 내가 재빨리 달려가말려야 한다. 힘이 세서 쉽지 않아 혼을 내며 단호하게 말해야 그제야 멈춘다.

훈련도 마찬가지다.
감정과 컨디션에 따라 할지 말지가 결정된다.
주변의 사람들은 답답하게 보이지만, 민호는 후회를 하지 않는다.


한 번은 차 안에서 민호에게 물어보았다.

“민호야, 금메달 못 따서 아쉽지 않아?”
“왜요? 저 메달 두 개 땄는데요?”
“맞다 맞아, 그것도 대단한 거야!”


민호는 다시 이어폰을 꽂고, 틱으로 인한 루틴을 이어갔다.


장애가 있기에 훈련 방식도 무게도, 집중력도 다르다. 그러나 시간을 견디고 훈련을 쌓아가는 일만큼은 누구나 같다.

민호는 자신의 속도로 그 무게를 들어 올리고 있는 것이다. 민호는 어떤 목적을 향해 운동하지 않는다. 그저 즐겁기 때문에 한다.

즐거운 것.

단지 그것이 민호가 운동을 하는 ‘이유’다.


우리는 종종
“한 번만 더 들었으면 금메달인데.”
하고 말하지만,

민호는 말했었다.
지금은 그냥, 들고 싶지 않았어요.”


사회가 만들어놓은 루틴, 성과, 효율의 잣대 속에서 우리는 종종 ‘해야만 하는 일’에 자신을 속이며 산다.

하지만 민호는 그 감정을 속이지 않는다.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을

그대로 드러낸다. 민호의 행동이 더 건강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런 민호의 결정을 응원하고 싶다.

장애라는 이름 아래 살아가는 동안 민호에겐 제약이 많다.

하지만 역도로 성과를 냈기에
조금은 나은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때론, 어른들의 욕심이 민호를 덮칠까 걱정이다. 더 많은 무게, 더 많은 시간의 무게를 짊어지게 할까 두렵다.


민호야,

지금처럼
‘즐거워서’ 무게를 들어 올리는

너였으면 좋겠다.


민호는 욱하는 성격도 있다.
덩치만큼 행동도 터프하다.
때로 차 안에서 아이들이 내 말을 듣지 않을 때도 있다.

가끔 떼를 쓰고 위험한 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제지하다가 아이들이 흥분해서 막무가내로 반응을 할 때가 있다. 아이들이 다치면 안 되다 보니 내가 다치거나 할 때가 많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민호는 달려와 나를 도우려 한다.


“선생님 다치면 안 돼요. 제가 때려줄까요?”


물론 그 말과 행동을 허용할 수는 없지만
그 마음이 참 곱다.


아이들이 소리치고 이상행동을 보이면
민호는 군기반장처럼 소리친다.


“야야! 너 조용히 해라~ 혼난다!”.


다른 아이들도 민호의 말엔 제법 반응한다.

누가 힘이 센지, 누구 말이 통하는지
아이들도 본능적으로 안다.


나는 민호가

이 따뜻한 터프함을 잃지 않길 바란다.
경쟁이라는 시스템이
민호의 즐거움을 앗아가지 않길 바란다.


이제 곧 방학. 훈련도 없다.
민호는 여전히 일본 애니송을 들으며 코와 씨름하고 매일 아침 나를 번쩍 안아 올린다.


민호야,
너의 무게를 들어 올리는

투박한 마음을 응원한다.

세상의 금메달 앞에서

결과를 향한 채찍질 앞에서
가끔은…


“나, 들기 싫어요”

라고 말할 수 있는 그 마음을
나는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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