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군기반장

여행을 즐길 줄 아는 남자

by 약속의 땅


살면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삶의 목적과 소망을 좇아가며,

수많은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며 살아간다.

그러나 정답은 없다.

만족과 불만족이 교차하고, 옳고 그름이 뒤섞이는 매일 속에서 우리는 오늘도 ‘살아간다.’


그렇게 살아가던 중, 나는 이 노란 통학버스 안에서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만나게 되었다.

내가 교회에서 오랜 시간 아이들을 가르치며

익힌 방식은 이곳에선 잘 통하지 않았다.

삶의 고민을 나누거나 미래를 이야기할 수 없는 관계.

의지를 북돋우며 살아보자 말해줄 수 없는 거리감.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더 깊이 바라보게 된다.


그럼에도 이 아이들은 결코 스스로를

불쌍하다 여기지 않는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지만,

숨겨진 존재로 있어야 할 아이들은 아니다.

이 노란 통학버스 차 안에도

여전히 ‘살아갈 인생들’이 타고 있다.


그리고 오늘, 그 인생들 가운데

성실하고, 유쾌한 군기반장

명훈이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매일 아침, 도심 한가운데 있는 육교,

그 아래 버스정류장.

그곳엔 늘 같은 자리에 서 있는 한 아이가 있다.

명훈이다.


내가 이 차를 탄 이후 명훈이는 지각도 결석도 없었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덥거나 추워도.

정확히 6시 30분이면 나와 있다.

버스는 7시 40분에 도착하는데…


“명훈아, 왜 이렇게 일찍 나와?”

“차가 매일 오니까요.”

무언가 맥락이 어색해도 명훈이의 말은 맞다.

차는 늘 온다.

그래도 명훈아, 너무 일찍 나오지 마.

10분 전에만 나와”

“네”


대답은 명확하지만, 다음 날도 똑같이

일찍 나와 서 있다.

마치 거기 원래 있던 가로수처럼.


우리 학교는 초. 중. 고에 전공과 학생들 까지 다 있다.

명훈이는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전공과에 진학한 학생이다.

전공과는 자활을 목적으로

여러 가지 직업에 관련된 것들을

교육하고 돕는 과정이다.

특수학교에서 전공과까지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모든 학생들이 전공과에 진학하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명훈이는 언어, 행동, 사고 등

여러 면에서 스스로의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는 아이다.


실제로 명훈이는 지난달에, 우리 지역의 한 병원에서

약 두 달여 시간을 일을 했다. 명훈이를 못 보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명훈이가 적응을 잘한다면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명훈이는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하루 5시간, 단순 업무였지만 명훈이에겐

결코 단순하지 않았었던 것 같다.

결국은 다시 돌아왔지만,

늘 인사를 잘하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샘~ 저 왔어요”

해맑게 말하던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보다 더 빛나는 건,

명훈이가 우리 차의 군기반장이라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많고, 나는 혼자.

28명의 아이들이 타고 내리는 이 통학버스에서 나는 모든 상황을 다 볼 수 없다.


그럴 때마다 들려오는 명훈이의 샤우팅.

“샘! 00가 일어났어요!”

“야, 앉아! 벨트 풀면 안 돼!”

“야야야 조용히 해라~ 시끄러워~”


그 목소리는 해맑고 명쾌하다.

어딘가 어른스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한 그 말투는

아이들 사이에서 꽤나 ‘먹히는’ 방식이기도 하다.

명훈이의 존재는,

이 통학차량의 질서를 지키는 중요한 요원이다.


군기 반장 역할을 톡톡히 하는 명훈이는

한 가지 취미가 있다.

명훈이는 버스 여행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월요일 아침이면,

명훈이는 주말에 다녀온 여행 이야기로 신이 난다.

“선생님~ 어제 예산 갔었어요. 국밥 먹고 왔어요!”

명훈이는 천안, 소정리, 평택, 홍성… 다양한 지역을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혼자 다녀온다.

처음에 명훈이가 이야기 했을 때 나는

거짓말인 줄 았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게 너무 재밌다고 말하는 명훈이는

여행을 즐길 줄 아는 낭만의 남자다.

이 차 안의 많은 아이들의 부모는 명훈이를 보고

부러워한다.

우리 아이가 명훈이 정도만 되면 좋겠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명훈이가 우리 사회의 일원이 되어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본다.

지금도 명훈이는 다른 회사에 면접을 볼 날을

기다리고 있다.

과연 다음 실습은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명훈이는 해맑게 나에게 말한다.

“샘 거기서 전화 왔었는데요~ 한다고 했어요~”

“그래 잘했어. 잘해봐”

“그래야죠”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1시간이나 미리 나와 기다리는 그 꾸준함이

어느 일터에서도 빛이 나길 바란다.

어린 친구들이 위험할까 봐,

지도하는 내가 곤란할까 봐

누구보다 먼저 반응하고, 돕고, 소리치는

그 책임감이 명훈이라는 사람의 인생에

오래오래 스며 있기를 바라본다.


언젠가 이 작은 버스 안이 아닌

세상의 한가운데에서도

명훈이의 목소리가

멋지게 울려 퍼지길 바란다.


나는 오늘도

머지않아 통학버스가 아닌 인생버스를

기다릴 명훈이를 태우러 간다.

이제 방학이 다가온다.

명훈이는 들떠 있다.

보다 더 많은 시간을 버스를 타고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낭만을 즐기는 자유로운 여행객처럼

명훈이의 인생에도 즐거움의 낭만이

가득하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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