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껏 울고, 마음껏 웃어라!

너의 웃음이 계속되길

by 약속의 땅


기분이 좋다. 기분이 별로다.

우울하다. 슬프다. 신이 난다.

화가 난다. 재미있다. 짜증 난다.


살아가는 동안 느끼는 감정들이 있다.

다양한 감정들이 한 사람 안에서 일어나고

누구도 하나의 감정으로만 살아가지 않는다.

사는 동안 감정은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오르막과 내리막의 길처럼 감정도 그렇다.

기분이 좋다가도 나빠지고, 나빴다가도 좋아진다.

가끔은 하나의 감정이 오랜 시간 나를 붙들고

좀처럼 놔주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땐 전환이 될 계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 계기란 것이 시간일 때가 있다.

지나가다 보면 또 다른 감정들이

섞이고 희석되어 그런대로 살아간다.


이런 감정의 변화 혹은 기복은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인데

때로 애써 굳게 감추기도 하고,

상대에 따라 무장해제 될 때도 있다.

그럼에도 기분이 나쁘다고 좋다고 다 표현할 수 없고,

다 억누를 수 도 없다.

그걸 알아 가는 것과 성숙이란 것이 적절하게 같이 가는 것 같다.

어차피 혼자 살아가지 않는 세상인지라

내 감정대로 살 수도 살아서도 안된다.

사회생활이란 것이 서로가 감정을 적절하게 애써 조절해야

어느 곳이든지 돌아가게 되어 있으니 말이다.


감정을 조절하는 것은 자라면서 학습이 되는 부분이 많다.

엄마의 감정, 아빠의 감정, 가족의 감정들을

서로 학습하고 모방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여러 가지 상황들 속에서

보고 듣고 느끼게 된 감정들이

조용히 묻혀 있다가 싹이 트게 된다.

화를 낼 때, 웃어야 할 때,

조용해야 할 때… 나름 처신을 할 줄 알게 된다.

그렇게 감정을 드러내고 감추는 법을

적절하게 알아갈 때 소위 눈치 있는 사람이 된다.


특수학교에 다니는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아이들에게 감정의 기복,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 어려운 난관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의 감정이 분노로 폭발하는 지점과

한 없이 까르르 웃게 되는 지점을

타인은 좀처럼 파악하기 어렵다.

타인의 눈으로 볼 때

아이들의 감정이 기승전결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보통의 성장과정의 어린아이에게

먹어야 할 때 와 먹지 말아야 할 때를 가르친다.

처음엔 이해하기 어렵고, 단순한 먹고 싶은 감정을

억눌러야 하는 것이 힘겨워 떼를 쓰고 울기도 하지만

몇 번의 과정을 거치면서 받아들이고, 참을 수 있게 되고,

조절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감정을 스스로 조절하게 될수록

철이 든다라고 하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태도를 갖추었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


특수학교의 아이들은 이 훈련을 하기가 까다롭고 어렵다.

의사소통이 힘들고,

자기중심적(이기주의와는 다르다)이기 때문이다.

내가 울어야 할 때

참아야 할 때를 힘들어도 구분할 줄 안다면

그 아이는 자립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우리 차에 타는 28명의 아이들 중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기감정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법을 모른다.

울어야 할 때, 웃어야 할 때,

조용히 해야 할 때, 참아야 할 때,

누군가의 말을 들어야 할 때를 구분하지 못한다.


그중 유독 웃음이 많은 아이가 있다.

하연이는 웃음은 해맑고 깨끗하다.

웃음에도 종류가 있는데

하연이의 웃음은 천진난만하고,

보기에도 좋은 웃음이다.


그런데 하연인 울기도 잘한다.

분명 웃고 있었는데

어느새 주르륵 눈물이 폭포수

처럼 흐른다. 차가 타기 싫어서 울고,

입고 싶은 옷을 입지 못해서 운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웃는다.

학교 가는 길이 즐거워서 웃고

다시 차를 타기 싫어서 운다.


이런 하연이가 버스에게 가장 잘하고,

많이 하는 말은

“선생님 학교 가요~”라는 말이다.

싱글 생글 웃으며 들떠서 이 말을 연신 내뱉는다.

미자막 코스에서 타서 학교를 가는 약 40여분의 시간 동안

못해도 족히 10번은 같은 말을 한다.

“선생님 학교 가요”

“그래~ 학교 가자”

그럼 “네” 하고 웃으며 어깨를 들썩들썩한다.

“하연이는 학교가 좋아?” “네” “왜 좋아?” “재밌어요”


학교가 끝나고 다시 집으로 가는 통학버스를 타야 할 때

하연이를 태우는 일은 나와 주무관, 담샘에게

오늘의 미션이 된다.


버스를 5미터 정도 앞에 두고 멈춰 서서 좀처럼 타지 않는다.

어르고 달래고 한 발 한 발 떼게 한다.

억지로 타게 하면 더 상황이 심각해지기에 조심스럽다.

가끔은 모두가 실패하여 엄마를 호출해야 될 때도 있지만

하연이를 하교 버스에 태우는 일은 시간과 공은 들어도

갈수록 많이 성공하게 되었다.

“집에 가서 하연이 좋아하는 보라색 바지를 입어야지?”

“하연아 누구누구 먼저 탔는데 빨리 타자”

“하연아 버스 타고 하늘 봐야지”

하연이가 좋다고 했던 말들을 기억하여 탈 수 있도록 애를 쓴다.

그중 하나가 코드가 맞으면 갑자기 발을 떼고 훌쩍 버스를 탄다.

하연이가 버스를 타면 주위에 있던 모두가

박수를 치며 미션의 성공을 나눈다.


이런 하연이를 보면서 감정에 대해 다양하게 생각해 본다.

보통의 사람들은 어쩌면 하연의 모습을 보고 기복이 심하다.

조절을 못한다.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지금의 하연이는 작년의 하연이 보다

많이 좋아졌다고 말들을 한다.

느리고, 더뎌도 다양한 교육과

여러 손길들에 의해 하연이는 좋아지고 있다.


이런 하연이가 보통의 사람들보다

감정을 조절하는 법이 서툴고

힘에 겨울 수 있어도

하연이가 살아가는 동안 순수한

감정의 모습 그대로 살아갔으면 한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 한 것이 장애가 되어

세상을 살아가는데 힘겹지 않길 바란다.


사실 하연이처럼 자기감정에

솔직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자기 스스로도 감정을 속이고,

타인을 속여가며 해악을 끼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이지 않은가.


하연이와 더불어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아이들을 돌봐줘야 하는 사회적

부담보다 교묘하게 사람의 감정을 어지럽히고,

속이며 폐악을 끼치는 이들이 가하는

사회적 피해가 훨씬 더 크고 문제스럽다고 생각한다.


관계를 파괴하고,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

암초 같은 사람들도 뻔뻔하게

정상인의 탈을 쓰고 살아가는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모습으로 웃고 울 줄 아는

이 아이들이야 말로 더 보호하고 응원해 줘야

될 일 아닌가.


오늘,

학교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연신

‘학교에 가요 ‘라고 재촉하는

하연이의 말을 들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적어본다.


아… 나도 감정에 솔직하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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