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학버스도 쉰다

방학을 맞이하며

by 약속의 땅


아침마다 통학차를 타고

아이들을 학교로 데려다주고,

다시 집 앞에 내려놓는 일을 했다.

한 학기 동안 수없이 같은 길을 오가면서,

나는 장애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됐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

그가 어떻게 장애를 가지게 되었을까,

이전의 삶과 지금의 삶은 얼마나 달라졌을까를

무례하게나마 상상해 본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려 하지만,

그저 ‘안타깝다’는 말로는

도저히 다 닿을 수 없는 벽이 있다.

안다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예전엔 잘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건,

아마 내가 하는 일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속한 일, 좋아하는 무언가에 따라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관심의 초점이 바뀌면, 세상의 풍경도 함께 바뀐다.


방학을 하루 앞둔 날,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내려주며

“방학 잘 보내, 다시 보자” 하고 인사를 건넸다.

돌아오는 건 아이들의 무심한 표정과

변함없는 등진 모습.

대신 부모들이 대신 인사를 해준다.

“방학 잘 보내세요. 한 학기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더 힘드시겠어요. 하루 종일 아이를 보려면.”

나도 웃으며 답하지만,

그 웃음 뒤에 남는 무기력한 미안함이다.


과연 이 사회는 장애를 가지고 살아볼 만한 곳일까.

‘예전에 비하면야’라는 식으로

얼버무릴 수 없는 문제다.

십 대로 살아가기는 이미 버겁고,

이십 대는 전쟁처럼 버겁다.

삼사십 대가 되면 버거움이 사라질까? 아니다.

나 역시 사십 대의 끝자락을 살면서 버거움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님을 느낀다.

그 속에서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무게일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주 작다.

아이들을 귀찮아하지 않는 것.

잘 알아듣기 힘든 말과 몸짓에도 귀 기울이는 것.

그 마음을 놓지 않는 것. 내가 하는 일은 제한적이지만,

그 마음 하나가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 덜 버겁게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방학 동안에는 수입이 없다.

공무직 특성상 일한 만큼만 급여를 받기 때문이다.

그나마 여름방학이 짧아 다행이다.

이중직이 허용되지 않아 다른 일을 할 수 없으니,

나는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특수교육, 통합교육, 차별의 언어…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누구나 장애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그 가능성을 안고 사는 모두가,

장애와 비장애를 나누고 차별하며,

그것을 짐처럼 여기는 일이 조금씩 사라지기를 바란다.


작년 겨울 이후, 사회 전반이 혼란과 피로 속에 있다.

권력을 사유화하고, 사적인 이익에만 몰두하는 이들.

허울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챙기려는 자들.

법의 이름으로 그들을 교묘히 보호하는 사람들.

어쩌면 이들이야말로

‘진짜 장애’를 안고 사는 존재가 아닐까.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마음은

누구보다 맑고 순수하다.

육체적·지적 불편함 속에서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존재가 거울이 되어,

돌보는 이들의 마음을 부끄럽게 만든다.

반면, 사회를 어지럽히는 잘 배운 이들은

부끄러움조차 모른다.


이번 학기를 보내며 나는 바란다.

버거운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조금은 덜 버거울 수 있도록,

제도와 환경이 나아지는 날.

그리고 그 변화의 어딘가에,

내가 건넨 작은 마음이 조용히 자리하고 있기를.


무더운 여름을 아이들이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다시 만나면 반가워할까. 기억을 할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며

아이들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도록

책을 뒤적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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