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죄가 없습니다

죄송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by 약속의 땅


아이들을 태운 버스가 정류장에 정차하면
대부분의 아이는
엄마 혹은 아빠의 손을 꼭 잡고 서 있다.

문이 열리면 나는 내려가 아이를 맞이하고,
부모와 간단한 인사를 나눈다.
짧은 그 시간, 부모는 아이의 컨디션을 알려주기도 하고 다음 날 등교 여부를 미리 알려주기도 한다.


아이들이 하나씩 탑승하는 동안,
부모들은 창가에 앉은 아이를
한참을 바라본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 시선에 반응하지 않는다.
창 너머 어딘가를 멍하니 응시하거나,
자신의 세계에 몰두해 있을 뿐이다.


이 일을 하면서
나는 한 가지 마음을 더 알게 되었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었지만
감히 다가가지 못했던 마음.

바로

"우리 아이보다 딱 하루만 더 살고 떠나고 싶다"
장애 아이를 둔 부모의 마음이다.

그것은 공감이라는 말로도 닿을 수 없는,
부모만이 가질 수 있는 고요하고 절실한 마음이다.


한 아이가 태어난다.
옹알이를 하고, 뒤집고, 기고, 걷는다.
어린이집을 가고, 학교를 가고,
사춘기를 지나
어느덧 어른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대학에 들어가고,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고,
결혼해 손주를 안겨주는…

사람의 일생을 담은 이 여정의
한 장면, 한 장면이
부모에게는 기쁨의 선물이다.


그러나 어떤 부모는,
아이를 얻자마자 스스로 죄인이 된다.

"내가 잘못해서 아이가 이렇게 되었구나"
"나 때문에 우리 아이가…"

그 죄책감은
마치 바위에 새긴 글씨처럼
평생을 따라다닌다.


아이를 데려오는 엄마들은
아이가 조금만 문제 행동을 보여도
"죄송합니다"를 반복한다.

"오늘 아이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요."
"오늘 아이가 좀 늦었어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말한다.
"괜찮습니다."
"죄송하실 필요 없어요."
"우리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아이들 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말에도
엄마는 고개 숙이며 다시 말한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한 번, "죄송합니다."

그 죄송함은 새겨진 마음이다.


나는 매일 본다.
차창에 기대 창밖을 멍하니 보는 아이를
그리고 그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을.


엄마의 손이 흔들려도
아이는 반응이 없다.
그래도 엄마는
힘차게 손을 흔들며 말한다.

"잘 가. 잘 다녀와."


마지막 정류장.
많은 아이들이 탑승하는 곳.
한 아이만 빼고
모두 엄마 아빠 손에 이끌려 나온다.

탑승이 끝나고 내가 벨트를 다 매면
부모들은 손을 흔들며 말한다.

"안녕~ 화이팅!" "얘들아, 잘 다녀와" "화이팅!"


자신의 아이뿐 아니라
모든 버스 안의 모든 아이에게 보내는 인사.

세상의 어떤 격려보다
진심이 가득 담긴 응원이다.


하굣길은
등교보다 훨씬 예측하기 어렵다.


울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물을 쏟고,
가방을 열어 물건을 던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조심스럽게 설명한다.

"오늘 00가 컨디션이 좀 안 좋아 보여요."
"오늘 많이 울었어요."
"오늘은 침을 평소보다 많이 뱉었어요."


그러면 부모는 말한다.

"죄송합니다..."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엄마의 입에서는 끝내
죄송합니다가 떨어진다.

이미 새겨진 마음이기 때문이다.


해결해 줄 수 없는 마음을

마주한다는 건 참 어렵다.

어떤 사람들은 장애 아이를 보며
자신의 아이가 건강함에 감사한다.
참 이기적인 감사다.


대부분의 장애는
‘정상’으로의 회복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돌봐주는 것에서 시작된다.

수많은 위로와 공감도
마음의 짐을 완전히 덜어줄 수 없다.

끝내 그 무게는 부모의 몫으로 남을 뿐이다.

학교에서 일하는 이들 중 누군가 말한다.

"저런 아이들이 오히려 지원 더 많이 받아요."
"얼마나 이것저것 나오는지 아세요?"

그럴 때마다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단 하루라도
그 아이들과 함께 살아보시길."

복지가 늘고, 지원이 많아져도

부모의 죄송한 마음이 덜어지는 것은 아니다.


날마다, 매일같이 죄송한 마음의 부모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주 작은 진심뿐이다.

“아이들이 정말 예뻐요.”
“정말 귀여워요.”


나의 하찮은 이 말이 부모에게
조금이나마 덜 죄송한 하루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나는 또

매일 아침 아이들이 평안하기를

기도하며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죄송함이 새겨진 부모들을 만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