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민이의 세상
내가 타는 노랑버스엔 가장 몸이 약한 아이가 있다.
규민이다. 규민이는 오래 걷지 못한다. 머리엔 헬멧을 쓰고,
팔과 다리는 바람에 날리는 인형처럼 힘 없이 흔들린다.
무릎이 다 펴지지 않아 한 걸음, 한 걸음이 늘 위태롭다.
무엇을 가리킬 때면 그 움직임은 나무늘보처럼 느리고 조심스럽다.
자주 넘어져 무릎은 늘 까져 있다.
처음 만난 날, 규민이는 엄마의 팔에 부축된 채 느릿느릿 버스로 다가왔다.
"한 번 고집을 피우면 힘들어요."
"헬멧을 벗지 않게 해 주세요."
규민이 엄마는 간단히 당부하고 나는 천천히 규민이를 자리에 앉혔다.
마치 곧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리던 규민이는 운전석 바로 뒤, 맨 앞자리에 앉았다.
엄마는 차창 밖에서 손을 흔든다.
"규민아 빠이빠이~"
하지만 규민이는 말없이 고개만 돌릴 뿐이다.
팔을 들어 올린다. 그것이 인사인지 아닌지도 모를 느리고 조심스러운 동작.
슬로비디오처럼, 천천히.
등교 시간, 아이들을 픽업하여 버스는 학교에 도착한다.
모든 버스가 도착해야 아이들은 내릴 수 있다.
스스로 벨트를 풀 수 있는 아이들은 이 시간이 힘들다. 조바심을 내며 낑낑댄다.
낑낑대며 참는다.
나는 다른 아이들의 벨트를 풀고 옷을 입히고, 가방을 메어 주며 하차 준비를 한다.
규민이는 언제나 마지막에 내린다.
담당 실무원 선생님은 규민이 전용 휠체어를 미리 차 문 앞에 가져다 놓는다.
하차는 늘 전쟁이다. 규민이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의자에 몸을 맡기고 버틴다.
"시러, 시러, 시러!"
쇳소리를 내며 소리친다.
어르고 달래고 혼을 내도 소용없다. 결국, 나와 주무관, 덩치 큰 담임선생님,
통학 책임자 선생님까지 규민이의 사지를 들고 휠체어에 태운다.
규민이는 뿔이 난다.
그러나 아침의 모습과 하교할 때 규민이의 모습은 전혀 다르다.
버스 앞에 도착한 휠체어에 앉은 규민이는 햇살처럼 환하게 웃는다.
'누구나 학교는 가기 싫은가 보다.'
그 웃음에 모두가 웃는다.
규민이가 자주 하는 말은 딱 두 가지다.
내릴 때 외치는 샤우팅, "시러 시러 시러!"
그리고 집에 가는 길, 기분 좋게 말하는
"규민아~ 버스가 좋아?" "좋아~"
"규민아, 엄마 안녕~ 해봐."
침묵이다.
"저건 뭐야?"
"버스 버스, 노랑버스." 나는 웃는다.
시간이 흐르며 버스 밖 풍경도 변한다.
신록이 짙어지고 논은 초록의 카펫을 깔아 놓은 듯하다.
학교 앞 도고천이 흘러가고 하늘엔 삼삼오오 구름이 흘러간다.
버스 안, 아이들은 저마다의 소리로 지저귄다.
웃음소리, 외침, 리듬에 맞춰 두드리는 소리들이 조용히 차 안을 채운다.
하차 전쟁이 계속되던 어느 날 나는 규민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규민아, 아침에 학교 가기 싫어?"
대답은 없지만, 규민이는 웃는다.
"내일부터는 1등으로 내려볼까?" 나는 새끼손가락을 내민다.
규민이는 천천히 손가락을 건다. 꾹, 도장도 찍도록 도와준다.
다음 날,
학교에 도착하자 나는 말했다.
"약속했지? 1등으로 내려볼까?"
그때, 규민이가 천천히 일어선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차근차근 휠체어까지 함께 걸어간다.
"와우~ 규민이 잘했어!"
박수를 치고 어깨를 토닥인다. 모두가 대견한 눈빛이다.
그날 이후 규민이는 자주 1등으로 내린다.
물론 아프거나 기분이 안 좋을 때 힘을 빼고 실려 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 달라졌다.
어느 날, 규민이가 엄마 차에서 내리기를 거부한다.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땡깡을 부린다. 나는 다가가 부른다.
“규민아, 학교 가야지.”
그러자 규민이는 힘을 주며 일어난다.
엄마는 기가 막혀한다.
그 편파적인 반응이 나는 싫지 않다. 우리만의 협약이
잘 발효되고 있다는 신호다.
오늘도 여전히 규민이는 말한다.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천천히 가리키며
“버스 버스, 노랑버스.”라고 말을 한다.
규민이는 일반적인 삶의 속도를 따르지 못한다.
기고, 일어서고, 걷고, 자라나 자기의 삶을 살아갈 수 없다.
문장을 만들지 못 하지만 기쁨은 안다.
학교가 끝났다는 것, 집에 간다는 것.
규민이의 기쁨은,
‘버스 버스 노랑버스’라는 말속에 담겨 있다.
나는 바란다. 규민이의 삶에 자신이 좋아하는 노랑버스 같은 순간이
자주 찾아오기를.
사회가, 사람들이, 규민이의 노랑버스가 되어주기를 바라본다.
규민이를 보며 다짐해 본다. ‘나’라는 한 사람이 누군가의 노랑버스로
살아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