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의 이유
운동을 시작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다.
연령대별로도 다르고, 계기도 저마다 다르다. 젊은 사람들은 주로
다이어트를 위해 시작하고, 나이가 들수록 건강의 문제로 시작된다.
그런데 이유야 어쨌든 간에, ‘운동을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도전이다.
도전은 크든 작든 반드시 변화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지속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지만, 단 며칠만 했다 해도 변화는 있다.
몸이 쑤시거나, 내 한계를 알게 되거나, 아니면 ‘아, 운동이 이런 거구나’ 하고
스치듯 느낀 것조차도—그게 변화다.
세상엔 억지로 되지 않는 일이 많다.
그중 부동의 1위는 공부다. 공부에는 머리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노력도 필요하지만, 유독 잘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공부를 너무 강요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강요한다고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자발성이 빠진 공부는 그저 노역이다.
그런데 운동도 마찬가지다.
특히 유산소 운동.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문턱이 낮고 접근성이 좋은
것이 바로 달리기다. 학교를 다녀봤다면, 누구나 한 번쯤 달려봤을 것이다.
운동회에서 조별로 뛰어 순위에 따라 공책을 받던 기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동네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갑자기 달리기를 하고, 엄마에게 혼날까 봐
집으로 달려가고, 미친개를 만났을 때도, 동네 깡패를 피할 때도 달린다.
요즘은 신상을 사기 위해서도 오픈런으로 달린다.
그렇게 익숙한 ‘달리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려 할 때,
사람들은 꼭 묻는다.
“어떻게 달려요?”
이건 인체 구조가 달리기를 어떻게 구현하느냐는 질문이 아니다.
정말로 묻는 건 이 걸 것이다.
“지속적으로, 길게… 나도 그렇게 뛸 수 있을까요?”
그럴 때 나는 이렇게 말한다.
“그냥 달려보세요.” 숨이 찰 때까지.
숨이 차서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이 뛰고, 머리가 핑 도는 그 순간까지.
그 순간부터 몸은 반응한다. 운동이라는 낯선 자극에, 나름의 조건반사처럼.
사진출처-네이버달려야 달릴 수 있다.
내 몸이 달리기 시작할 때 느릿하게 걷는 데 익숙했던 근육들이, 온몸으로
피를 빨아들여 에너지를 만든다. 심장은 평소보다 빠르게 펌프질을 하고,
어깨는 팔의 흔들림에 맞춰 균형을 잡는다. 발목과 발가락의 인대가 긴장하고,
뼈는 근육의 그림자처럼 반응한다. 폐는 외부 공기를 5배 이상 들이마시며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교환을 쉴 새 없이 반복한다. 코와 입은 호흡량을 맞추기 위해
유기적인 협업을 시작한다.
단, 100미터를 뛰어도, 우리 몸은 이토록 분주하게 움직인다.
경제가 돌아야 시장이 살아나듯, 강물이 흘러야 강바닥이 썩지 않듯,
기계가 작동해야 녹슬지 않듯—우리 몸도 마찬가지다.
단지 살아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피가 흐르고, 움직이고, 숨이 차야 진짜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된다.
이 흐름을 가장 자연스럽게 만들어주는 운동이 바로 달리기다.
비가 와도 달릴 수 있고, 눈이 와도 달릴 수 있다.
덥고, 춥고, 힘들어도 달릴 수 있다. 조금의 의지만 있다면, 입문자에게
거리란 중요하지 않다. 그건 익숙해진 후에 자연히 따라오는 것이다.
일단은 뛰어야 한다.
아주 조금이라도, 단 몇 분이라도, 뛰어야 한다.
달리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나도 참 많은 질문을 받았다.
“5킬로를 어떻게 뛰어요?”
당황스러운 질문들이지만, 함께 달려 보면 안다.
며칠이 지나면, 그 사람도 어느새 5킬로를 달리고 있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그럼 10킬로는 어떻게 뛰어요?”
질문은 끝이 없다.
“20킬로는요?” “하프는요?”
그런데 어느 날, 그들 스스로 느낀다. 자신이 그렇게 뛰고 있다는 사실을.
이렇게 시작해 보자.
입문자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방법—‘걷뛰’. 걷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100미터 정도 걷다가 50미터 정도 뛰는 식이다. 이때 ‘뛰는 것’도 전력질주가 아니다.
빠른 걸음보다 살짝 빠른 정도, 1킬로당 9~11분 페이스면 충분하다.
중요한 건, ‘뛰는 동작’ 그 자체다.
그 순간부터 몸은 ‘달리는 중’이라 인식하고, 스스로를 거기에 맞춰가기 시작한다.
나의 경험상, 이 방법으로 열 명 중 아홉은 성공했다.
빠르면 일주일, 늦어도 열흘이면 아산 신정호 한 바퀴—4.8킬로를 완주한다.
(내가 사는 곳 아산 신정호)
이렇게 하루 걸러 한 번씩,
뛰는 구간을 조금씩 늘리면 된다. 50미터, 100미터, 300미터, 500미터…
걷는 시간보다 뛰는 시간이 많아지는 날이 온다.
그렇게 슬로 조깅으로 5K를 완주했을 때, 몸보다 먼저 마음이 외친다.
“아, 나도 달릴 수 있구나!”
그 첫 경험이 주는 만족감과 쾌감은
마치 처음 해외여행을 갔을 때의 두근거림처럼 크다.
누가 달릴 수 있을까?
특별한 지병만 없다면, 누구나 시작할 수 있다.
처음엔 장비도 필요 없다. 지금 신은 운동화면 충분하다.
반바지 하나, 티셔츠 하나.
끈 조여 매고 문을 열고 나가면—그 문밖이 곧 트랙이고, 필드다.
묻지 마라. 그냥 달려라.
기억하라.
달려야 달릴 수 있다. 달려보면 안다.
당신의 인생은 달리기 전과 달리기 이후로 나뉘게 될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체력이 쌓이고, 삶의 미션들이 하나씩 수행되고,
쓸데없는 살은 떨어져 나가고, 어느 날은 왠지 우울함이 밀려와도,
어느 날은 실패에 짓눌릴 것 같아도—뛴 당신은 다르다.
단지 뛰었기 때문에, 당신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하프 마라톤을 준비하고, 풀코스를 완주하고,
감히 넘볼 수 없었던 벽들을 뛰어넘게 될 것이다.
그 벽들은 더 이상 ‘넘사벽’이 아니고 넘을 수 있는 허들이 된다.
그 벽들을 넘은 당신은 자기 이야기로 스펙을 만들어가게 된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진 러너가 된다. 곧.
달리기 자체도 대단한 힘을 주지만,
달리기는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원동력이 된다.
그러니 묻지 말고 달려라. 달리면 달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