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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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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Jun 19. 2017

바스크에서 시간이 멈추다



내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오월의 어느 날, 나는 스페인으로 떠났다.

가리의 말을 빌려 스페인이 아닌, <바스크컨트리(BasqueCountry)>로 떠났다고 정정해야 하지만 이번 여정에는 그 곳 외에도 마요까 섬에 들리는 것이 포함이 되었으니 나는 스페인으로 떠났다고 얘기할 테다. 입버릇처럼 자기 집에 놀러 오라고 말하던 가리가 독일에서의 인턴십을 끝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가고 나니 일주일에 하루는 확실히 한가해졌다. 프랑크푸르트 한복판에서 일본어로 시끄럽게 웃고 떠들면서 독일 사람들의 이상한 행동을 개그로 승화시키는 일이 더 이상 없으니 예상 외의 허전함이 밀려왔다. 나는 가리의 빈 자리를 채우려 또 다른 회화 친구를 찾진 않았다. 또 다시 누군가를 만나 내가 예전처럼 열정적으로 사람을 대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나는 그럴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횬주, 놀러 와. 바스크에.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가리는 지나가는 소리로 '내가 그곳에 갈까'라고 내뱉은 얘기에 뜻밖에 선뜻 놀러 오라고 반색했다. 내가? 스페인에?전화를 마치고 <스카이스캐너(Skyscanner, 실시간 항공편 구매 어플리케이션)>로 항공편을 확인했다. 꽤나 저렴한 가격이라 얼떨결에 티켓을 구매했다. 이렇게 갑작스레 나는 내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프랑크푸르트 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 만에 <팔마데마요까(Palma de Mallorca)>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역시나 저가 항공사인 라이언에어를 이용했고, 또 역시나 숨 조리는 비행 끝에 항공기 바퀴가 공항 활주로에 닿는 소리와 느낌이 전해지자 빵빠레 음성과 승객들의 박수와 함성이 뒤섞였다. 이륙 직전에 비어 있는 비상구 자리에 앉아도 되냐고 승무원에게 물었더니 내게 영어를 할 줄 아냐고 물었고, 바로 좌석의 앞부분이 넓은 비상구 쪽 자리로 좌석을 옮길 수 있었다. 비상구 쪽 좌석은 긴급 상황이 발생하여 탑승객이 비행기로부터 대피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되면 승객들의 대피를 도와야 하기에 영어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스페인 사람들보다는 영어를 잘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또 모든 말을 생략하고 고개만 끄덕였음에도 내게 비상구 자리를 허락해준 짙은 눈썹의 콜라 병 몸매를 소유했던 스페인 승무원에게 고마움도 말하고 싶었지만 이것 역시 나는 생략했다.


독일인들에게 여름 휴양지로 인기가 있다는 이 곳은 독일어가 함께 쓰여진 표지판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스페인 영토의 동쪽에 위치한 이 섬에서 나는 몇 달 내륙 중의 내륙, 프랑크푸르트에 있으면서 종종 그리워만 했던 바다를 만나 볼 참이었다. 공항에서 나와 눈 앞에 바로 보이는 버스 정류장에 버스 한 대가 멈췄다. 앞 문이 열리자 나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운전수에게 항구에 가냐고 물었다. 거기에 가면 바다를 볼 수 있냐고. 그러자 운전수는 이 버스가 항구에 가니 너는 바다를 볼 수 있다고, 새삼 그런 걸 물어보냐는 식의 미소를 보였다. 운전수에게 직접 요금을 내야 해서 바지 왼쪽 주머니에 손을 넣어 불룩하게 나와있는 동전들을 꺼냈다. 1.5유로다. 독일에서 쓰던 유로를 이 곳에서도 사용할 수 있으니 유럽연합의 편리함을 새삼 깨달았다.

 


"하얀 천과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어"

정신 없이 창문 밖 세상을 구경하다보니 이십 여분 남짓이 흘렀다. 새삼 동양인이 낯설어 기대에 찬 눈빛을 종종 백미러를 통해 던져오던 운전수가 내게 이번에 내리라고 손짓을 보냈다. 공항을 매끄럽게 빠져 나와 시내를 지나니 왼편이 모두 바다다. 날씨는 또 얼마나 좋은지 청록 빛으로 물든 바다와 새파란 하늘, 뜨거운 태양에도 지치지 않게 불어오는 바람이 마치 지상 낙원과도 같은 곳이다. 나도 모르게 훌렁 겉옷을 벗고 두 팔과 가슴팍이 드러난, 그래서 한국에서는 속옷처럼 니트나 가디건 안쪽에 받쳐 입던 민소매에 짧은 반바지 차림으로 휴양지 룩을 완성했다. 선글라스로 태양을 피하고 길게 늘어뜨린 머리를 하나로 높게묶고 나니 나도 모르는 순간 내가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스페인 여행에 왜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가 아닌, 잘 모르는 곳에 가냐고 지인들이 물었다. 왜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를가야 하는데?라고 되묻고 싶다가도 꼬리의 꼬리를 무는 따분한 질문들이 이어질까 그냥 멋쩍은 미소만 보였다. 나는 이번 여행에 여유가 필요했다. 왜 쇼핑을 엄청나게 거하게 하고 싶다거나 맛있는 것을 체중 조절의 압박 없이 먹거나 일상을 다 잊고 손 하나 움직이지 않고 쉬고 싶다거나 그럴 때 있지 않나. 자연이 아름답고 여유가 있다는 가리의 말에 나는 내 친구의 집에서 그가 말한 여유를 보고 느끼고 싶었다. 분명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것을 경험하면서 느끼지 못했던 삶의 여유를 나는 독일에 머무르면서 꽤나 누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여유라는 것도 상대적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 가리와 있노라면, 또 그의 친구들을 함께 만났을 때도, 잘은 모르는 어딘가에서 이들은 행동에 여유가 느껴졌다. 게으르다는 것과는 별개이다. 세상을 여유롭게 대한다고 해야 하나? 그러다 보니 바쁘게 흘러가는 세상에 쫓기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곤 했던 나에게 그들이 동경의 모습으로 비춰졌다.


밤이 되어 비행기로 40분 거리의 <빌바오(Bilbao)>에 도착했다. 밤이 늦어 첫날은 근처 호스텔에 묵고 둘째 날부터는 고맙게도 가리의 친구, 일전에 프랑크푸르트를 찾아왔던 존 콜도의 부모님 집에 머물기로 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에 들어서자 멀리서 곱슬머리에 깡마른 가리가 보였다. 예상치 못한 서프라이즈였다. 늦은 시각에 가리의 부모님까지 함께 나와 나를 반겼다. 밤이 늦었지만 피곤하지 않다면 야경을 보여주고 싶다고 하시며 빌바오 시내를 자동차로 쓰윽 움직이며 곳곳에 보이는 아름다운 건축물과 다리, 미술관 등에 대해 알려주셨다. 날이 밝을 때와 어두울 때 모두 느껴지는 감정이 다르다며 소녀같이 가슴이 벅찬 듯이 상냥하면서도 흥분된 목소리로 얘기하는 가리의 어머니는 그 동안의 내 머리 속에 박혀 있던 스페인 사람과 너무도 상이했다. 그 뒤로 스페인을 떠나기 전날 가리의 집에 묵으며 부모님과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었다. 사랑스러운 엄마와 남성미 넘치는 외모에 정이 많은 아버지, 형을 따라 일본 만화책을 모으는 동생까지 만나고 나니 스페인에서 덤으로 화목한 가정까지 만날 수 있었다.



바스크 친구들이 내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고 노래를 부르던 곳 @가스텔루가체, 바스크 컨트리, 스페인



스페인 요리를 떠올리면 <빠에야(paella)>만 떠올리던 동양인으로 인해 십 수년을 <발렌시아(Valencia)>에서지내며 정공법으로 빠에야 요리를 배우셨다는 존 콜도의 이모까지 호출되어 나를 위한 만찬이 준비되었던 건 잊을 수 없다. 영어를 하지 못하는 어른들과 꽤나 비슷한 듯 다른 포르투갈어로 어떻게든 대화를 해 보겠다고 쏼라쏼라 대는 모습은 내 모습이 우스웠겠으나 어른들은 감사하게도 내 얘기를 알아 들으시고는 스페인어로 대화를 이어가셨다. 이럴 때야 대학 시절에 배운 포르투갈어가 쓸모 없는 게 아니었음을 가끔 깨닫는다. 식사를 마치면 모카 포트에 커피를 끓여 다 함께 마시곤 커다란 비치 타올을 펼치고 뒷마당에 누워 낮잠을 잤다. 해안선을 따라 드라이브를 즐겼고 기분내키는 대로 차를 세워두고 수영을 하기도 했다. 마트에서 먹을 것을 잔뜩 실어 담고 공원에 가서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에서 바비큐를 즐겼다. 친구들과 과거를 추억하고 현재를 이야기하고 미래를 상상했다. 이틀이나 나를 재워주신 존 콜도의 어머니는 나와 티타임을 가질 때마다 자식들이 어른이 되면 혼자 조용히 영국에 건너가 영어 공부를 하며 살고 싶었다고 했다.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그녀는 스페인에서, 그것도 바스크 지방에서 자신의 영어 실력을 계발시키는 일이 꽤나 어렵다고 토로했다. 두 아들의 엄마이고 남자만 셋인 집에 여자로서 가사일을 하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삶을 이십 년이 넘게 이어왔다는그녀는, 아직도 런던의 작은 플랏flat에서의 생활을 꿈꾼다. 존 콜도의 아버지는 내가 떠나는 날 촉촉히 젖은 눈으로 다음 번에 다시 오면 또 다시 머무르라고 하셨다. 바스크에서는 이곳이 내 집이라고 말이다.




당분간 내게 이보다 더 좋은 여행은 없을 거야.

고작 닷새. 스페인의 북부 지방인 바스크에 머물면서 나는 언제고 느낀 적 없는 감흥을 느꼈다. 삶의 여유를 보았고 그 동안의 내가 갖지 못한 여유는 바쁘게 살아야 하고 많은 것을 가져야 한다고 스스로를 몰아 붙이는 나로 인한 것이 없음을 깨달았다. 일이 많은데 시간이 없다고, 남보다 돈이 조금밖에 없다고, 나이를 먹어가는데 결혼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남자 친구가 생기지 않는다고, 영어 공부를 하는데 성적이 좀처럼 오르지 않는다고, 운동도 하고 밥도 줄였는데 살이 빠지지 않는다고, 약을 바르고 손으로 만지지 않았는데도 얼굴에 난 뾰루지가 없어지지 않는다고. 조급하지 않아도 될 일에 조급했고 불안하지 않을 일에 불안해 했다. 이런 생각이 들 때에는 항상 내가 하는 것들이 최선이라고 자부했었다.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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