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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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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Jun 16. 2017

독일 남자와 함께 한 시간



런던로맨스

또 한 사람.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앞 트램 정류장에서 내게 명함을 건넸던 데이빗(그의 이름은 데이빗 슈나이더이다)에게도 메시지를 보냈다. 회사에서 맡은 프로젝트로 월요일에서 목요일은 런던에 지내면서 일을 하고 금요일에 비행기로 프랑크푸르트에 돌아와 주말을 보내는 일을 반복하던 그는 얼마 전부터 회사에서 런던에 거처를 마련해주는 바람에 주말마다 독일에 오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메시지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 답신이 왔고 그는 뮌헨에 사는 친형이 부활절 기간에 런던에서 함께 있게 되어 일정을 조율해야 하겠다고 했다. 그저 몇 번을 만난 사이에, 흔히 말하는 썸이라는 것을 타고 있는 사이에 남자의 친형까지 함께할 수 있을까.



나는 그 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나고 그 동안 자꾸 눈가에 맴돌았던 곳들을 돌아 보았다. 돈이 있을 때는 둘러 볼 시간이 없었고, 둘러볼 여유가 있을 때는생각 없이 쓸 정도의 돈이 없다니. 인생은 아이러니하다. 

<캠든타운(Camden town)>에 들러 유니크함이 돋보이는 <스테이블마켓(Stable market)>의 맞은 편에 오픈한 버거 가게의 테라스에 앉아 에일맥주 한 잔과 버거를 주문했다. 돼지목살과 비슷한 부위인 줄 모르겠으나 영국에서 주로 먹는 <돼지어깨살(Pork shoulder)>을 오랜 시간 쪄내고 구워 잘게 찢어낸 것과 베이컨, 치즈와 양파가 어우러진 푸짐함에 자칫 생각날 느끼함을 씻겨줄 에일은 궁합이 좋았다. 수북했던 감자튀김을 한 톨도 남김 없이 먹고 나니 접시가 깨끗하다. 

그와의 약속 시간이 두 시간 남짓 남았다. 언제까지 함께 일지를 모르니 늦게 귀가 하는 것을 염두 하여 부리나케 숙소로 향했다. 러셀스퀘어역 안 쪽에 있는 호스텔로 들어가 한 시간의 알람을 맞춰 두고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고단함에는 낮잠만한 것도 없다. 며칠 밤을 자지 않고도 쌩쌩하게 여행을 다녔던 게 엊그제 같은데 서른을 넘기면서부터 신기하리만큼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져 하루를 꽉 채운 일정을 소화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두 어 시간을 누워 있고 나서야 녹초가 된 두 다리에 생기가  일어나 대충 씻고 나가려고 하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을 챙기려 했으나 런던도 꽤나 우산을 쓰는 습관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 나도 비를 맞으며 약속 장소로 향했다. 저녁은 내가 추천한 일본 우동가게였다. 비 내리는 날에 국물 있는 밀가루 음식이 딱 이라는 생각은 한국인만 할 수 있는 건지, 구글 지도를 보며 어렵게 가게를 찾아온 데이빗은 살짝 실망한 눈치였다.



그의 형과도 본의 아니게 만남을 갖게 되었다. 형은 뮌헨에서 자동차 공학관련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고 했다. 레몬 빛이 감돌 정도의 밝은 금발의 데이빗과 붉은 기운이 있는 갈색의 곱슬머리 형은 모르는 사람인 내게는 그저 남남 같은 외모였다. 꽤나 똘똘하고 학업에 뜻이 깊어 보이는 형과 데이빗은 눈 앞에 있는 내가 독일어를 기초회화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헤어질 때까지 영어로 대화를 했다. 형제끼리 타인을 배려해서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대화를 하다니. 이들이 독일인의 표준인지는 알 수 없으나 독일인에 대한 경외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가볍게 저녁을 먹고 우리는 소호를 거닐다 소호바에 들어갔다. 조금 이른 시간임에도 실내 곳곳은 음악에 몸을 맡겨버린 사람들이 즐비했다. 나에게도 춤을 권했다. 추지 않았다. 몇 번 몸이 제어가 안될 신나는 노래들이 들릴 때마다 위험했지만 나는 나를 드러내지 않았다. 전형적인 로봇 댄서의 피가 흐르는 독일 남자 데이빗과 그의 형은 춤인지 움직임인지 모르는 율동을 해대며 직원에게 이 근처에 갈만한 클럽을 소개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는피카딜리서커스 근처의 클럽으로 향했다. 꽤나 지루했다. 불현듯 데이빗과 나의 나이 차가 적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내가 대학생 때나 열광했던 음주가무에 안달이 난 모습이 그 증거였다. 설레던 마음은 애당초 달아났고, 의리인지 배려인지 모를 마음으로 밤 늦도록 그 자리를 지키다 녹초가 되어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오후가 되어서야 잠에서 깼다.


런던에서의 로맨스는 내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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