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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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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Jun 15. 2017

내 열정이 남은 도시, 런던




2년 만에 런던

 부활절이 다가 왔다. 독일에서는 연 중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이 가장 커다란 휴일이자 대목이기도하다.

말인즉, 온 나라가 태엽이 감기지 않은 시계처럼 움직임 하나 없이 고요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다. 시내는 드문드문 보이는 관광객들이 만들어 내는소리와 움직임이 없다면 마법에 걸린 도시처럼 굳어있을 테다. 이런 생활과 문화에 대해사전에 조금만 인지하고 있었더라면 마트에 들려 며칠의 식량을 비축했거나 몇 달 전에저렴한 가격의 교통 티켓을 준비해 어딘가를 떠날 계획으로 설렜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삶은 알아보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라고무식하게 생각하는 탓에 몸으로 머리로 마음으로 부딪혀 세상을 알아가고 있기에 그러면서 나는 꽤나 많은 지출이 발생시키기도 했다. 가령, 부활절이 열흘도 채 남지 않은 시간부터 매일매일을 '저렴한 항공권이어디 없을까?' 틈틈이 생각이라는 게 날 때면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휴대폰을 들고 실시간 항공권을 검색한다. 쪼개어 소비하는 시간도, 쫄깃해지는 심장도 나중에는 이런 게 내삶에 과연 의미가 있는 순간인가 싶기도 하다. 

부활절연휴 사흘 전, 아침에 눈을 뜨는데 유독정신이 또렷하다. 무언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민트 향의 기운이느껴지니 내가 온 정신을 쏟아 붙는 그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반사적으로 침대에 누운 채 항공권 구매 어플리케이션을 켰다. 눈을 껌뻑 대고 두어 번을비벼대고 다시 살펴도 꿈의 가격 37유로(5만원)에 대영항공사의비행편이 오픈 되어 있었다. 살면서 몇 번 없을 재빠른 자세로 침착하게 예약을 하고 결제까지끝내고 몇 분 남짓하여항공사로부터 확인 메일을 받고 나니 아침부터 두 다리에 힘이 풀리고 무언가 커다란 숙제를 끝내 버린듯 피로가 몰려오기시작했다. 그 속에나는 또 혹시나 하는 오지랖으로 다시 한 번어플리케이션으로 내가 구매한 항공권이 더 있는지를 확인한다. 신기루처럼 아침 일곱 시쯤나타나 한 젊은이의 심장을 낚아챈 존재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역시나다.

 

“성공했다.”

 



사흘이라.

돌아오는항공권들은 저렴했기에 선택의 폭은 넓었다.

여행의결심을 세우고 나면 항상 여행을 떠나는 여정과 지금이라는 순간이 공백을 만들고 나는 어김 없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사람처럼 정리를 한다. 집을 나설 때 항상 머물렀던 공간을 정리해두는 사소한 습관은 혼자 살면서부터 의식적으로 시작해 지금은 일상이 되었다. 

 

집안의 물건을 정리하고 가져갈 짐을 포개어 준비한다. 한 톨의 빨래도 남기지 않기 위해 떠나기 이틀 전에 빨래를하여 건조를 하고 떠나는 날 일찍 세탁물을 개어 옷장에 정리한다. 냉장고 문을 연다. 유통기한을 확인하고 쉽게 시들어 삶을 차갑게 네모진 공간에서 마감 해버릴 재료들은 오늘과 내일의 양식이 된다. 이메일을 확인하고 이번 주와 내가 없을 시간, 또 내가 다시 돌아온다고가정했을 때의 시간에 대해 확인해야 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의 목록을 꼼꼼히 나열한다. 온라인으로 판매를하는 일의 가장 좋은 점은 언제 어디에서든 휴대폰으로 주문현황을 확인하고 처리할 수 있기에 장소에 얽매이지 않는 다는 것이다. 반면에 어디에서든 시시때때로 한국과의 시차를 고려하여 한 밤중에도, 또 이른 아침에도 인터넷이나휴대폰으로 온라인 상황을 확인해야 하기에 나도 모르게 디지털 세상의 노예로전락한 패배감을 느끼는 일이 빈번하다.

 

런던은 이년 전 출장으로 삼 개월 동안 머물렀던 경험으로 이번이 두 번째이다. 아침 여덟 시에 출근하여 새벽 한 시에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일을 삼 개월 동안정확히 하루의 휴일도 없이 반복하고 나니 런던을 떠날 때에는 “다시는돌아오지 않아.”라는 말을 수 없이 머리 속으로 생각했다. 왜 당시에는 악몽 같았던 일들이지나고 나면 추억만 남는 걸까. 기억의 메모리가 가득 차서 지우고 싶은 것들부터 지워나가기 때문일까. 출장 한 달 만에 머리맡에 들리는알람 소리에 눈은 뜨고 몸뚱이를 일으켜 세웠는데 귀 뒤로, 정확히 머리 전체가 혈액이 흐르지 않는꽤나 싸한 느낌이 들었다. 잠시 뒤에 발등 위로 따뜻한 무언가가 똑똑 떨어졌다.

 

똑...똑...똑똑.

 

점점떨어지는 속도가 빨라짐을 느끼고 빠르게 가방 속을 뒤져 구겨진 휴지 한 장을 꺼내 코를 감싸 쥐었다. 십 분이 지나고, 삼십분이 지나도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마침 전날 한국에서 출장을 오신 사업부장님께 메시지를남겼다. 코피가 멈추지 않아서 코피만 멈추고나면 바로 출근하겠다고 했다. 답장이 왔다. 코피만 멈추면서둘러 출근하라고. 서러움에 멈추지 않는 코피와 울음이 범벅이 됐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말이 아닌 생각만 했으니 다행이지. 


나는또 런던에 간다. 그 때 당시 일로 만났던 런던의 지인들에게 얼굴책으로나의 런던행을 전했다. 다시 볼 수 있다는 반가움에 어떤 이들은 나보다 기뻐했고 또 어떤 이들은 정해진약속이 있어 볼 수 없음에 아쉬워했다. 역시 가장 많은 이들은 무관심했다. 없으면 못살 것 같은 사람들도 떨어진 시간이 길어 질수록 존재를 잊는 것이 순리임을 받아들였기에 아쉬움은 없다.


가벼운 옷 몇 벌을 챙긴 기내용 가방을 하나 들고 <런던 시티공항(LondonCity)> 에 도착했다. 런던에 공항이 <히드로(Heathrow)>뿐이 아님을 처음 알았다. 시티 공항은 비행기에서내려 런던 시내로 들어가기 가장 가까운 공항이다. <DLR(런던경전철)>을 이용해서 시내에 도착했다. 선뜻 저녁을 먹자고 얘기를 꺼낸 <무쯔미(Mutsumi)>를 만나러 <셰퍼드부시역(Shepherd’s Bush)>으로 튜브를 갈아타고 가야만 했다. 서둘러 튜브에올라타긴 했는데 시간을 보니 약속 시간에 아무래도 5분정도 늦을 것 같았다. 미리 연락해야겠다는 생각에 휴대폰을 꺼냈다가 아차 싶었다. 튜브에서인터넷도 전화도 되지 않는 것을 그사이 잊고 있었다. 불편하고우스꽝스러운 기억인데 나도 모르게 그리웠다. 떨어지던 코피에 눈물 범벅이 된 그 때가 그리운 건 아니겠지.



부활절 연휴 직전이라 한산한 셰퍼드부시의 한 모로코 음식점에서 1년반 만의 재회를 기뻐했다. 나보다 여덟 살이 많은 무쯔미는 이 곳에서 식품영양학을 공부하고 석사학위까지 마친 뒤 얼마 전 연구소에 취업을했다고 했다. 예전에 나는 런던에 한국 음식점을 오픈하는 일을 지원하느라 출장을 왔었고 그 때 레스토랑에일하게 된 직원과 파트타이머들에게 매장 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교육을 했었다. 한국 음식이 낯설기만 한 직원들에게한식에 대한 개념부터 레스토랑 브랜드, 메뉴, 서비스 등을알려주면서 친구가 되었다. 그 중에 일본인이 둘 있었는데 나는 조금하는 일본어로 먼저대화를 시도해서 그들과도 한층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그 중의 한 명이 바로 오늘 다시 만난 무쯔미다. 석사 과정에 있는 동안 생활비를 충당할 겸 레스토랑에 일을 지원했다가인연을 맺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타지에서 홀로 고생고생 하는 얘기부터 새로만난 남자 친구의 이야기까지 잔뜩 털어놓기 시작했다. 보지 않았던 시간의 어색함은전혀 없었다. 결국 우리의 밤은 꽤나 늦게까지 이어졌다.



나를만나겠다고 한걸음에 달려와 준 건 <라모나(Ramona)>였다.

지금은 개구장이 사내 아이의 엄마가 된 라모나와 @런던

그녀는금발 머리에 나의 절반 정도로 추정되는 아주 작은 얼굴을 가진, 웃지 않으면 꽤나 냉소적으로 보이는루마니아 처자이다. 악몽 같았던 런던 출장의 기억에 몇 안 되는 꽃봉오리 같은 추억의 일부인 그녀는 중요하지 않게 얘기했던나의 이야기들을 귀담아 들어 주었다가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헬로키티 인형을선물해 주었다. 그리고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막연함에 함께 울어 주었다. 우리는 카나비스트릿 앞에서만나 수많은 인파 속에서 껴안고 소리를 지르며 폴짝폴짝 뛰었다. 조앤더주스에 가서 과일과 야채가 잔뜩들어간 주스를 마시며 못 나눴던 이야기들을 꺼냈다. 태권도를 배우다 만난 루마니아 태권도 선수 출신의남자친구와 아이가 생겼다고 했다. 오래 같이 살면서 부부나 마찬가지였던 그들도 아이를 낳고 나면 결혼식을올릴 거라고 했다.

 

그때는지금과 달랐다.

런던도달랐고 우리도 달랐다.

많은 것이변했다.

지금이더 좋아 보였다.

나중에다시 만나면 그 때의 우리가 더 좋아 보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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