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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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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Jun 14. 2017

공포의 초콜릿 시즌, 부활절




나는초콜릿이 무섭다

나는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 입 안에 닿으면 진득하게 혀를 감싸며 감칠맛을 느끼게 하는 달콤함이 내게는 부담스러운 존재이다. 설탕으로 만들어진단 맛이 입술을 여자라면 으레 단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일반적인 인식을 가진 남성들을 만날 당시에는 케이크, 마카롱, 초콜릿이 눈 앞에 꽤나 자주 등장했다. 처음에는 내가 좋아할 것 같아서 준비했다고 했지만 분명히 내가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카페에 갈 때에 어김 없이 케이크를 주문하는 사람들은 애초부터 달디 단 음식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해줬다. 단 걸 좋아한다고 남자들은 왜 표현하지 않을까. 단 걸 좋아하는 건 취향이지 죄가 아닌데 말이다.


11월부터 4월까지 시종일관 달콤한 향연이 이어지는 독일에서 단 건 입에도 대지 않는 내가 즐거울 수 있는 것이라고는 식료품을 사러 마트에 들를 때마다 사지도 않을 초콜릿 코너를 부러 들러 새로 들어온 제품들을 구경하는 것이다. 어떻게 저런 모양의 초콜릿들이 진열대에 빼곡히 나열되어 어른 아이 할 것 없는 무수한 구원의 손을 기다리고 있을까를 생각 하노라면 독일의 초콜릿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기 마련이다. 한국에서 보통의 시즌 한정 제품을 생각한다면 패키지 디자인을 바꾸거나 여러 가지 제품을 조합하여 선물 세트를 만드는 것을 상상하겠지만 이 곳은 상식을 뛰어 넘었다.


크리스마스에는 커다란 산타클로스 모양의 초콜릿이, 부활절에는사랑스러운 토끼와 개구리 모양의 초콜릿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초콜릿 하나만으로도 길고 긴 진열대가 가득 채워져 있는 마트는 독일에서 특별한 볼거리가 아니다. 거기에 크리스마스와 발렌타인데이, 부활절은 시즌 한정 디자인과 포장으로 무장한 제품들까지 합세하여 정규 판매 코너에 특별 매대, 결제 코너 옆에까지 다양한 초콜릿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저 많은 맥주는 누가 다 마실까’라고 처음 내가 독일에 도착하여 마트에 들렀을 때 셀 수 없는 종류의 맥주들이 쌓여있는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지만 몇 달이 지나고 나서야 익숙해질 수 있었다. 어르신들은 평일 대낮에도 햇볕이 비추는 곳에서 맥주를 즐기시고 주말이면 아침부터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자주 눈에 띌 정도였으니 눈에 보이는 맥주 소비는 걷잡을 수 없이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물론 그 곳에 나도 일조를 하고 나니 마트에 쌓여 있는 맥주는 “우리”가 다 마신다는 결론을 내렸다.





저 많은 초콜릿은 누가 다 먹을까

마트에서 장을 보고 결제를 할 때면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에 다른 사람들이 쇼핑카트에서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 놓을 때마다 고개를 좌우로 두리번거리며 나와 다르게 생긴 사람들은 무슨 물건을 가져가는 지를 훔쳐보느라 분주했다. 동양 여성에게 흔치 않은 모습이 재미나기만 하다. 쇼핑 카트에 쌓인 유기농 제품들을 계산대에 나열하는 한 아저씨는 고개를 아무리 떨구어도 발끝이 보이지 않게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배를 앞으로 내밀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자그마하고 알록달록한 초콜릿들을 끝이 보이지 않게 꺼내기 시작한다. 엄마와 함께 온 아이는 엄마가 끄는 쇼핑 카트에 초콜릿을 여러 개 담았다가 혼이 난다. 아이들을 혼낼 때의 독일 엄마들의 엄한 표정은 확실히 어른인 내가 봐도 무섭다.






초콜릿으로 만든 드레스를 입고 있는 마네킹

그 중에서도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보행기나 지팡이를 이용해서 한걸음 한걸음이 버거워 보이는 걸음걸이로 장을 보러 마트에 들르시는 노인 분들의 모습은 처음 내가 이 곳에 왔을 때 상당히 낯선 풍경이었다. 고령화 사회에 혼자 살면서 연금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은 독일이라 본인이 먹을 것을 본인이 직접 구입을 하는 것이 이 곳에서는 당연한 풍경이다. 그런 분들이 마트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청과 코너까지 움직이시는 데만 하더라도 오분 남짓 걸릴 정도로 느린 속도로 몸을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존경심이 생기기도하고 또 짠한 느낌도 든다. 한편으로는 언젠가 내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그런 어르신들이 힘겹고 또 오랜 시간을 들여 장을 보면서 초콜릿 코너에는 꼭 들르신다. 꽤나 심각한 표정으로 이것을 고를지 저것을 고를지 양손에 초콜릿을 든 채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모습은 죄송스럽지만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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