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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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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Jun 21. 2017

안녕, 나의 프랑크푸르트

: 나의 마지막 독일이야기




길었던 여행을 마치며

일상으로 돌아왔다.

나의 의지로 '나'라는 존재를 발견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자 소망을 품고 독일로 떠났고 십 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셀 수 없이 많은 행복을 찾았고 예상치 못했던 낙담의 순간들을 경험했다. 책으로, 또 인터넷으로 찾아볼 수 없었던 것들을 현지에서 생활하고 돌아다니며 그 속에 스며들었을 때 비로소 만나볼 수 있는 것이었기에 소중하다. 그들의 문화와 생각, 국민성들은 어떤 때는 나를 한 없이 작아지게도, 또 어떤 때는 나의 애국심을 발휘해 한껏 자랑스러움을 느끼게 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미처 알지 못했던 세계에 대한 눈이 띄어지는 순간을 경험했다. 그러면서 내가 한없이 작은 존재임을, 그러나 그 속에서 분명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모든 게 나의 머리가 아닌 행동이 빚어낸 결과이다. 경험의 구슬을 꿰다 보니 나는 다시 한국에 서 있었다.



나의 많은 것들이 변해있었다.


함께하는 것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

혼자서는 나서서 둘러보기 힘든 곳을 누군가와 함께이기에 쉽게 경험할 수 있었다. 독일에 와서 혼자 생활하는 것에 익숙해졌다고 한들 레스토랑에서 혼자 테이블에 앉아 여유를 가지고 메뉴를 주문한다든지 느긋하게 맥주 한 잔을 할 배짱은 아직 내게 없다. 혼자이기 싫은 날에 쉽게 사람들에게 연락을 해서 만나는 일조차 ‘쉽지 않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누군가와 함께하는 일에 무형의 스트레스가 생기기 시작했고 독일에서의 생활은 어쩌면 사람들과의 관계에 지쳐있던 내게 피난처와도 같았다. 그 속에서 나는 다시 누군가를 찾게 되었다.혼자서 할 수 없는 것들이 나는 꽤 많았다는 걸 예전엔 미처 몰랐다. 즐거울 때 슬플 때 속상할 때 행복할 때 나의 감정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곁에 있음이 소중하다는 걸 깨달았다. 퇴근만 하면, 회식만 끝나면, 주말만 되면 혼자이고 싶다고 울부짖던 내가, 보지 못했던 사람들과의 시간들을 하나씩 짚어볼 수 있는 시간을 갖고 난 뒤에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가치였다.


환경을 고려하는 생활 습관의 변화였다.

식료품을 사러 마트에 갈 때면 나는 얇은 천으로 된 가방들을 챙겼다. 외출을 할 때에도 적어도 하나의 여벌 가방을 챙긴다. 집에 있는 비닐 봉투를 가져가 야채나 과일을 담기도 한다. 재활용은 철저히 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병을 마개로 막은 채 버리던 것들도 병과 뚜껑을 소재에 따라 분리하여 쓰레기를 배출한다. 이면지 사용이 이제는 되레 익숙하다. 쇼핑을 하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옷장에 옷을 정리하면서 몇 년 째 입지 않고 옷장에 묻어 두었던 옷들을 꺼내 입기 시작했다. 물과 전기는 사용하지 않을 때 전원을 내려두는 것 정도로 절약이란 걸 하고 있다. 독일에서의 삶을 통해 나는 환경을 인간이 보호한다는 생각보다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진 일상의 당연함에 대해 인지하기 시작했다. 나의 소소한 생활 습관들이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다의 모래알 보다 작고 또 미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행동들로 하여금 나 스스로에게 개운함을 느끼고 자신에게 만족하는 시간이 만들어지기에 나는 이런 행동을 계속 이어갈 것이다.


가난한 삶이 시작되었다.

넉넉하지 않은 시작이었대도 독일에 다녀와서 나는 빚이 생겼다. 여유로 만들어 둔 마이너스 통장을 꽉 채워 사용했다. 독일에서의 생활비는 한 달에 백오십 만원 정도씩 들었고 시간을 쪼개 꾸준히 다닌 여행은 값진 가치만큼의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소매치기를 당했고 독일에 살고 있는 한인에게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아둔한 행동으로 과태료를 지불했고 잠깐 한국에 갑작스레 돌아오게 됐던 것도 예상치 못했던 비용이었다. 인터넷으로 연 쇼핑몰에 샘플 구매 비용과 수입 제품들의 판매 부진도 고스란히 나의 부채가 되었다. 케이블 방송의 장수 프로그램인 막돼먹은 영애씨의 주인공은 자기 사업을 시작하고 빚을 갚기 위해 낮에는 자기 일을 하고 밤에는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내가 원하는 일을 위해 나 역시도 다시 또 다른 회사에 입사했다. 다시 회사원이 되는 삶을 살게 되었어도 분명한 건 내가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꿈이 또렷하게 눈 앞에 보인다는 것이다. 십 개월이라는 여정에서 꾸준히 나와의 대화를 이어간 결과일 것이다.


넓게 보기 시작했다.

수없이 탈락의 쓴 잔을 들이켰던 취업 전선에서 보이지 않는 나의 무언가가 크게 줄어들어 있었다. 그 보이지 않는 것을 나는 단지 과장된 말투와 행동으로 감추려 했었다. 자신감이었다. 작아진 자신감을 회복시키려는 생각보다 타인의 앞에서 자신감에 가득 찬 사람으로 비춰지려고 노력하는 데에 시간을 소비했었다. 한 없이 작아진 자신감은 그러면서 정작 나의 존재가 한 없이 작고 초라하다고 나를 생각하고 좁은 구석으로 몰아두기만 했다.나는 이번 여정에서 근 몇 년간 내가 깨닫지 못했던, 그래서 행복하지 않았던 사실을 마주했다. 


독일에서 생활하며 또 여행하며 만난 수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눈에 비친 나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내가 그 동안 잊고 있었던 나의 반짝이는 모습들을 끄집어 내어 좋게 얘기 해주다니. 여러가지 언어를 쉽게 구사한다는 것, 잘 웃는다는 것, 대안 제시를 잘 한다는 것, 타인의 생각을 빨리 읽어낸다는 것, 부지런하다는 것, 조직적이라는 것, 오피스 프로그램을 잘 다룬다는 것, 하다 못해 밥을 많이 먹는다는 것도 나는 칭찬을 받았다. 부정의 늪에 빠져 나의 모든걸 부정하고 있었기에 내가 행복하지 않았던 걸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늪을 만든 건 어느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행복해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았다. 누군가의 보폭에 맞추어 걷지 않고 내 속도에 맞추어 걸어가는 일.비록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기에 쉽지 않음이 분명하다. 행복은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어렵게 찾은 만큼 그 존재는 분명 내 인생에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일찍 결혼한 친구는 큰 딸 아이가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들이 이제는 소수가 되었다.

친구들 대부분은 혼수 자금을 이미 적금으로 모아놨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엄마는 내가 남들보다 몇 년 뒤쳐진 거라고 하신다.

시간 낭비를 너무 오래했다고.

그 동안의 내가 해서는 안될 것들만 해온 것이라고.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어선 안되었고

독일에 가서는 안되었고

혼자 타지에서 사서 고생을 하면 안되었고

새로운 일을 하겠다고 모르는 분야에 손을 대는 일을 하면 안되었다고.

적당히 회사 생활을 하다가 적당한 사람을 만나

결혼해서 조용히 살면 좋았을 거라고 말이다.


무거운 마음보다는 바쁜 일상이 기다리고 있음에 설렌다.

전세계 인구가 몇 명인데 모두의 삶이 같을 수가 어디 있나. 

독일 생활의 막바지에 놓여졌던 스페인 여행은 내 인생에 또 다른 전환점이 되었다.

매듭 없는 인생은 없고 도돌이표 없는 삶 또한 없을 것이다.

독일에서도 역시 나의 인생에 여러 군데 매듭이 생겼다.

그만큼 단단해졌다. 지금의 나는.


안녕, 나의 프랑크푸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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