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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키바 문정엽 Aug 26. 2022

하루를 보내는 방법

무엇을 하지 않을 텐가?

하루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우리는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가? 혹은 내가 보낸 하루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일기를 쓰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하루를 어떻게 종합하는가를 알아챌 수 있다. 

내 경우에는 특별하게 일어났던 사건, 그리고 특별한 경험, 경험 속에서 드러난 감정들이다.

하루는 사건, 경험, 감정으로 구성된다고 말할 수 있겠다. 

나는 어떤 사건을 경험했고 이 속에서 무엇을 느꼈으며, 결국 내 기억 속에 무엇을 남겼는가?

경험의 총체를 몇 가지 요소로 또는 몇 줄의 문장으로 정리하는 작업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우리는 하루를 정리한다. 

누구나 하루를 보내고 경험한다. 이를 기억하고 기록한다면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곧 개인의 역사다. 민족의 역사, 집단의 역사 또한 사건과 경험의 기록이지 않은가? 

그런데 꼭 벌어진 사건, 실제로 했던 경험만 하루를 구성하는 것일까?  

사건은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일어난 사건 속에서 나는 경험하고 감정을 느꼈다. 

그런데, 만일 다른 날도 아닌 오늘, 이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나는 다른 경험과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즉, 벌어지지 않은 사건은 그 사건을 통해 얻었을 경험을 오늘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나의 하루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래서 일어나지 않은 사건도 이 하루를 만든 요소가 된다. 

결국, 내가 오늘 보낸 하루는 일어난 사건과 일어나지 않은 사건의 종합이고, 경험 한 일과 경험하지 않은 일을 합한 것이다. 


사건과 선택


사건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대개는 우리가 선택한 행동이 사건을 만든다. 그렇지만 자의적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닌 사건도 있다. 때때로 우리는 선택하지 않는 사건을 경험한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의 전화, 고객의 급작스러운 방문, 갑작스러운 사고 등... 

벌어지지 않은 사건은 어떨까? 

사건이 벌어지지 않은 것은 선택에 따른 행동의 귀결이다. 무엇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은 거의 선택에 따른 행동이기 때문이다. 

저녁에 친구와 만나기로 했다가 사정이 생겨 취소한다. 오디션을 볼 결심을 했다가 포기한다, 영화를 보려고 했는데 다음 주로 연기한다...

하지 않기로 한 일에 대해서 우리는 큰 관심을 두지 않지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나지 않은 일이란 그저 사라진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 일들 중에서 많은 일들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 바람대로 삶을 살기 위해 포기한 것이기에 바람직한 것이기도 하고, 당시에는 의의가 있었지만 훗날 생각해 보니 했어야 한다는 후회를 남기기도 한다.

첫 책을 집필할 때 막바지 몇 개월 동안 모임을 멀리하고, 집과 도서관, 카페로 공간을 한정했다. 되도록 약속을 잡지 않았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다른 일로 외출하지 않았다. 만나고 싶었던 사람도 많았고, 집필에 지쳐 리프레쉬를 하고 싶은 경우도 많았지만 꾹 참고 몰입했다. 나는 이때의 선택에 의미가 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오래전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결심했다가 포기했다. 먼 나라로 가서 공부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지만 만만치 않은 타국에서의 생활에 두려움을 느꼈고, 당시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오랜 기간  이 선택을 하지 않은 사실을 후회했다.

이렇게 하루를 벌어진 사건과 벌어지지 않은 사건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 보니, 내가 하루를 어떻게 보내왔는가를, 그리고 지금 보내고 있는가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를 좀 더 풍부하게 생각하게 된다.

벌어진 사건에서 내가 경험하고 느낀 것과 함께, 내가 하지 않기로 선택해서 벌어지지 않은 사건이 나의 삶을 어떻게 만들어 왔는가를 생각하고, 앞으로 하루를 제대로 보내기 위해 경험하고 싶은 사건과 경험하지 않을 사건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하루를 보내는 방법


나는 하루를 충만하게 그리고 가능한 행복하게 경험하고 싶다. 

충만함이 부족한 하루 혹은 의미 없는 하루는 나의 바람을 채우지 못하고, 혹은 나를 낭비하는 하루이다. 그래서 나답지 않은 하루이기도 하다.   

나는 이런 하루를 보내고 싶지 않다. 

충만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서는 항상 한 번만 주어지는 하루에 무엇을 경험할까, 무엇을 경험하지 않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이것은 학창 시절 종종 했던 시간표 짜기, 일정 짜기와는 다르다. 일정표는 할 일과 약속과 장소로 채워져 있다. 할 일과 함께 또 하나 생각하고 삶에 반영해야 하는 요소는 '하지 않을 일'이다. 

삶을 낭비하는 것, 삶에 보탬이 되지 않는 것, 나의 바람에 부합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의도적 선택 말이다. 

어둠이 있어야 빛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듯이, 하지 않을 일에 대한 자각은 결국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일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것이다. 


지금 당장 생각해 본다. 내가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대화를 좋아하는 성격 탓에 종종 늦은 밤까지 사람들을 만나는 것, 즐겁고 유쾌하지만 지나치면 많은 감정을 소모한다.  

넷플릭스 영화를 보면서 시리즈 전편을 하루에 시청하는 것. 즐기는 동안에는 즐겁지만 다음 일을 위해 정신을 회복하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잘 풀리지 않는 일로 압박감과 실망감에 빠져, 내가 걷고 있는 길 옆에서 자연이 가을을 준비하고 있는 늦여름의 상쾌함을 놓치는 것. 압박감에 머무르는 일은 피하고 싶다.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과 함께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한 생각은, 마냥 계속 올 것 같은 하루를 조금은 무겁지만 새롭게 생각하게 만든다. 내일 올 하루를 신선한 기대로 가득 찬 마음으로 기다리게 된다.   

아마도 인생은 선물이라는 말에는 이런 뜻이 담겨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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