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7-5, Paris, France
#불쑥 찾아와 겨를도 없이 찾아와
고운 얘기로 찾아와 내 속을 뒤집고
그게 나쁘다 나쁜 상상에 아프다
아픈 나여서 고프다 보고 싶어서
이승환 - 참 쓰다 中
이른 시간에 도착한 몽마르뜨 언덕. 이르다기보다는 애매한 시간이다. 주변을 좀 걸어볼까 고민하다 점심을 건너뛰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해보니 오늘 먹은 것이라곤 밖으로 나오기 전 숙소에서 마신 물 한 컵과 베르사유 궁전에서 먹은 마카롱 3개가 끝이다. 이렇게, 좋아하는 것에 대한 몰입은 기본적인 욕구마저 잠재운다. 점심시간만을 기다리던 회사에서의 모습과 전혀 다른 나를 발견한다.
어중간한 시간대에 도착한 탓에 원래 가려했던 식당은 문을 닫았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위한 브레이크 타임에 딱 걸린 것이다. 그렇게 준비를 하고, 완벽하다고 확신을 했음에도 항상 존재하는 변수. 확신은 바람일 뿐 100% 란 없다. 확신이란 것은 99%의 바람일 뿐이다. 이는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쨌든 오늘 첫 식사에 대한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고, 하는 수 없이 갈증이라도 해소하고자 근처의 한 바에 들어갔다.
사람이 북적이는 횡단보도 앞,
길가 모퉁이에 자리한 볕이 잘 드는 바깥 테라스에 앉았다. 내부의 어두컴컴한 분위기가 좋았으나, 오늘만큼은 일상을 구경하고 싶다. 이름 모를 거리, 그곳을 지나다니는 평범한 사람들을 보고 싶다. 어쩌면 진정한 프랑스 파리의 민낯일 수 있는.
알아보지 못할 메뉴판을 치우고 우선 맥주 한 잔을 시켰다. 프랑스 대표 맥주인 블랑을 시키려 했으나, 하이네켄 밖에 없다. 프랑스에서 하이네켄이라니. 일본에서 호가든을 찾는 격이다. 아쉽긴 하지만, 지금은 위스키나 와인이 어울리는 시간대가 아니다. 갈증과 허기를 생각해본다면 맥주가 최적이다.
곧이어 나온 맥주. “메르씨.” 어색하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커다란 잔에 담긴 황금빛 액체. 코부터 갖다 댄다. 살갗에 느껴지는 서늘한 냉기와 비릿한 보리 내음. 그리고 기포가 터지며 피부에 닿는 작은 물방울들. 벌컥벌컥 들이켜자 저절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된다. 마침 파라솔의 그늘 사이로 가늘게 몸에 닿는 햇빛이 꽤나 반갑다. 이내 뜨거워 곧 자리를 피하겠지만 직사광선의 첫 따스함의 기운은 차가운 맥주와 잘 어울린다.
금세 비워진 한 잔. 모히또 한 잔을 더 주문했다. 알코올은 최대한 진하게.
켜켜이 묻어둔 민트 잎의 사이사이에 우러나오는 갓 수확된 녹색의 향이 입안의 텁텁함을 개운하게 세척한다. 그제야 알았다. 오늘,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 몸속으론 차디찬 액체가 들어가는데, 몸과 마음은 점점 뜨거워진다. 이것은 무슨 기분일까. 혼자 있다는 것이 좋으면서도 애석한, 그런 미묘한 마음이다. 알코올이 또 이성적인 판단을 흐리게 한다. 혼자 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자유롭게 누릴 수 있게 하지만, 그 크기만큼의 외로움을 감당해야 하기도 하다.
늘 괴리는 여기서 시작된다. 둘을 이루고 있는 부피의 크기가 달라질 때.
하필 이 시기는 늘 그렇듯, 불현듯 찾아온다. 중심축을 사이로 한쪽에 투하된 공허함의 무게는 점차 소멸하는 반발력을 갖고 있다. 아래로, 위로 수 번의 흔들림을 반복하고서야 멈춰 서는 진동이다. 오늘도 역시, 아무 준비 없이 들이닥친 불균형에 비틀비틀거린다. 미동 없는 시선 뒤에는 마음만이 분주했다.
외롭다는 푸념은 아무 걱정과 고민 없이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의 반증이었다. 나는 항상 무엇을 하는 사람이었다. 여행 계획을 짜거나, 글을 쓰거나, 술자리를 기웃거리거나. 부지런한 사람은 아니었어도 자못 부산스러웠다.
그렇게 혹독하리만큼 스스로를 몰아세우다 보면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느낄 여력 자체가 없었다. 그리고 이런 행동들은 시시각각 몰아치는 누군가의 참견을 나름 합리적으로 받아칠 수 있는 좋은 구실이자 어설픈 변명이었다.
그래서 아무 근심과 걱정이 없는 날, 이런 날은 유독 끙끙거림이 심해진다. 독한 술이라도 마시고 한숨 자고 일어난다면 다시 정신없는 내일을 맞이할 테지만, 오늘은 그럴 수가 없는 날이다. 귀국을 하루 앞둔 파리이니까. 그동안 나는 외로움을 회피하는 방법은 알았지만 극복하는 방법은 깨우치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그저 지나가는 사람 하나하나를 면밀히 관찰하고, 먹던 땅콩을 비둘기에게 나눠주는 정도밖에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답답한 상황은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맥주 한 잔을 더 시켰다.
어그러진 균형을 맞추기 위해, 다른 한쪽을 채우는 대신 나의 것을 조금씩 흘려보내기로 했다. 고르고 고르다 남은 그 방법이 지금으로선 가장 간단한 해결책이었다.
반대쪽으로의 기울임.
이로써 다시 이전의 평정을 되찾을 테지만 다시 한번의 흔들림을 겪어야 했다.
좁은 출구로는 도저히 내보낼 수 없는 크나큰 부피의 기억들은 유연하지 않아 힘을 줄수록 바스러질 듯 위태했다. 그럼에도 윽박 댔던 이유는 어차피 일시적으로 흩어져나갈 기억이자 어느새 다시 되돌아올 기억이기에 가능했다. 더욱 처참하게 짓이겨지고 왜곡될 테지만 그 덩어리의 무게는 똑같기에 형태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이런 기억들은 흡사 몸에 남겨진
거무튀튀한 멍 자국과 같다.
‘아, 그랬었지.’
생채기가 난 줄은 알고 있었지만, 평소에는 잊고 지냈던 멍 자국. 소매를 걷어야만 보이는 이 아픔의 흔적은 지각한 시점부터 괜히 욱신거리기 시작한다.
멍이 불러오는 기억들. 푸르스름한 멍의 음영만큼이나 또렷하지 않은 기억들. 나는 그 멍을 괜스레 눌러보며 그 고통을 가늠하고 있다. 얼마나 아픈지, 건드리면 아플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계속해서 조물조물거린다. 이런 기이한 행동으로 인해 내가 얻을 것은 고통의 교훈과 내성뿐이었다. 결국 궁극적으로 향하는 방향은 무뎌짐이었다.
금세 사라질 것이라고 믿고 있었지만, 멍이 사라질 즈음에는 새로운 멍이 생겼다. 한동안 다시 또 소매를 내렸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건만 아직 욱신거리는 이 멍들. 그랬다. 크기는 작았어도, 안쪽으로는 깊었다. 다소 무감각해졌어도 아픈 것은 매한가지였다.
다행스럽게도 멍과 상처는 차이점이 있다. 멍은 한동안의 욱신거림을 남기지만 상처처럼 흉터를 남기지는 않는다. 이 소멸의 성질은 기회였다. 일정 시간 동안 굳이 건드리지 않고 외면하고 산다면, 지금처럼만 산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신호였다.
언제쯤 나는 다시 자신 있게 소매를 걷고, 상흔 없는 맨살의 팔로 누군가를 안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런 날, 궁상떨지 않으며 혼자 있지 않을 수 있을까.
나이가 들어차면 끝날 줄 알았던 성장통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지금 이 외로움은 기다리는 시간이라는 자기 최면에 빠져든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과 쿵쾅거리는 심장은 방금 막 끝이 난 흔들림의 여진이다. 그리고 마지막 잔을 비우는 한 모금에 다 삼켜버린다.
그 아득했던 몇 시간은
너무 좋아 외로웠다.
역설적이었던 오후의 시간.
이 여유가 가져다준 것은 희망이었을까 고통이었을까. 그리고 로맨틱함이 전혀 없는 사람이 세계에서 가장 로맨틱한 도시를 바라본다는 것. 과연 이것은 기회일까 후회일까.
그 기분은 느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Season.1 - 안녕. 그리고 안녕
[Spain, France] by.mindm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