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나를 한 방향으로 몰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컨설팅 업무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사고방식이 변한 듯한 느낌이 든다. 무의식적으로 이야기의 논리를 따지게 되고, 누군가가 장황하게 말하면 '그래서 결론이 뭔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일을 할 때는 효율성을 높일 수도 있고, 듣는 사람에게 전하고자 하는 말을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큰 장점이 있다. 실제로 그러지 않은 경우에는 나 역시도 많은 답답함을 느끼고, 최대한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기도 한다.
이렇게 변화된 일하는 방식이 일종의 직업병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직업병은 그 사람이 하고 있는 직업의 특징에 의해 생긴 버릇이나 습관 같은 거라고 이해하면 된다. TV 프로그램에서도 유재석이나 강호동 같은 MC들이 게스트로 나왔을 때도 진행하려고 하는 진행병 역시도 대표적인 직업병 중 하나이고, 매장 직원들이 습관적으로 친절한 톤으로 대화하는 것도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직업병이다. 주변에 다른 직종의 사람들과 만나봐도 흔히 들을 수 있으며, 재미난 직업병 이야기를 들으면 '아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구나'라는 생각도 든다.
최근 오랜만에 대학 동기를 만났다. 1년 만에 만나서 그런지 그동안 할 얘기도 많고, 서로에 변화된 삶에 캐치 업할 부분도 많이 있었다. 진심으로 친구가 그동안 어떻게 지내왔는지 궁금하고, 또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 듣고 싶었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친구의 말에서 '결론'이 없다고 느껴진 순간, 그 이후에 나오는 말에 대해서는 뭔가 마냥 흥미롭게 들을 수는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이 정도면 하고자 하는 말이 나오겠지'라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장황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처럼 느껴져서, "아 그래서 어떻게 된 건데?"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제야 대화가 '진전'되는 느낌을 받았다. 대화가 진전된다는 느낌을 받기는 했지만, 문득 이 모든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문제를 찾고, 결론을 만들고, 모든 것에 진전을 낸다는 것이 중요한 것인가?
아니면 애초에 필요한 것인가?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 아마 한 개인이 본인의 직업병을 '인지'하는 순간일 것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고, 다양한 유형의 관계가 있다. 관계에 있어서 서로 대화를 나누고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은 그 행위만으로도 가치가 충분한 것이다. 어떤 대화에는 정답이 없을 수도 있고, 대화하는 순간에 오고 가는 감정의 섞임이라던지, 공감대라던지 모든 것들이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효율성을 쫓다가 많은 소중한 것들을 놓칠 수 있다.
무의식적으로 특정 스킬을 연마한다는 것이 결국엔 직업병이라는 모습으로 표현될 가능성이 높다. 그 스킬을 연마한다는 것이 곧 그 직무에서 전문성과 숙련도를 높인다는 뜻이다. 하지만 동시에 세상의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느낄 때 그 연마한 스킬을 활용해서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해당 분야의 전문성은 계속해서 발전해 가겠지만, 특히나 다양성과 창의성이 요구되는 시대에서는 여러 가지 내용들을 혼합하는 역량이 더욱 중요해질 수 있다.
직업병은 양날의 검이다. 우리가 눈 감고도 가죽 구두를 만드는 장인이라고 했을 때, 그게 결국 직업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느 분야의 경지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미친 듯이 연마해야 하는 것이 사실일 수 있다. 하지만 결국 내가 연마하고 있는 한 분야의 스킬과, 아직 내가 경험하지 못한 수백 가지의 분야의 밸런스를 어떻게 조절할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