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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Dec 20. 2023

연쇄 실연 17범의 고백_1-1

소멸국의 죄수 번호 "LOSER 17"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photos/pNuYJM7K8sY )

1-1 소멸국의 죄수 번호 "LOSER 17"


감옥에 갇힌 지 한참이 지나 오늘이 어느 만큼 지난 지 완전히 까먹어 버린 날이다. 도대체 날짜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달력도 없고, 시계도 없고, SNS 동영상마저 허락되지 않는 이 감옥은 무미 건조하기 이를 데 없다. 하루에 한 시간, 시대가 한참 지난 영화를 보는 것이 허락된다. 먹고 배설하는 것을 제외한 유일한 낙이다.


"후회하나?"

아무도 말을 걸지 않으니 내게 말을 걸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일뿐. 그래서 말을 걸어본다.

"응. 후회해"

그래 그렇게 답변할 수밖에 없지.

"왜?"

계속 뻔한걸 왜 묻지? 그래, 그래도 대답을 해야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나에게 알릴 수가 있지.

"나라가 정해준 기간 내에 하지 못하고 있었던 걸 후회하고 있다고"

죄가 너무 명확하다. 국가가 정해준 나이가 될 때까지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는데, 그걸 못해서 잡혀온 거다.

"왜 못해냈는데?"

인생에 가장 중요한 일이 그것이라고 태어날 때부터 죽자고 듣고 교육받아왔지만, 정말 중요치 않았다.

"그따위 안 해도 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어."



그의 생각은 그전까지의 시대의 생각으로는 온전히 그의 생각이고 집요한 취조 문답이나 취조 고문 등으로나 뽑혀 나올 그의 개인적인 정보를 그저 실시간으로 뽑아내서 확인해 낼 수 있도록 뇌 내에 이식된, “의식 데이터화 장치”를 모니터링 하고 있는 AI, "마스터"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관찰되고 있었다. 이중에 "마스터"가 파악할 수 있는 수준의 의식화된 데이터는 수감자의 뇌의 전두엽에 떠올라야만 하고, 그림이나 텍스트 형태로 포착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렇게 사고하게끔 만들기 위해서 AI는 수감자가 영상물을 보고자 할 때, "독백"을 멋지게 하거나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하는 인물이 대거 오랜 시간 등장하는 내용을 보여주면서 학습시키고 습관화하여 생활양식으로 만들게끔 세뇌했다. 이런 방식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신경계에 불쾌함을 끼치는 화학 성분을 주입하고, 어떤 방법으로든 수감자가 자신의 전두엽을 통해서 내부의 의식 속에 담긴 가능한 모든 것을 보여주게끔 했다.


이 AI에겐 현재 수감 중인 "연애 실패범"에 대한 재판 기록과 성장 과정 및 교육과정, 사회생활에 대한 모든 정보가 입력되어 있고 파악한 정보를 토대로 수감자를 평가하여 즉결 처형 후 사체까지 처리하거나 상태 변화에 따라서 출소 후 연애 행위를 시작해서 아이를 만들어낼 의지와 희망이 있는 존재라는 평가서를 첨부하여 사회로 다시 복귀시킬 수도 있었다. 이 경우 생존에 적합한 직업도 배정해 줬다.  



인구 절벽기가 오래 지속되었던 한국은 전쟁도 벌어지지 않은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계속해서 갱신해 갔다. 어느 순간엔 출산 자체가 없는 년도도 발생했고, 출산뿐만 아니라 결혼한 커플이 전혀 없는 년도도 발생했다. 결국 언제쯤 최후의 한국인이 지구상에서 눈을 감게 될 것인가 같은 계산을 했을 때 불과 백 년도 남지 않았다는 내용이 나왔다.


충격적인 기사로 불렸던 "출산율 급감" 시리즈가 여러 미디어 매체나 개인 미디어를 통해서 너무 많이 나오다 보니 때론 300년, 200년, 150년 뒤라고 이야기하던 내용이 매년 그 숫자를 줄여가다가 결국 100년, 곧, 그 년도에 태어난 사람이 당시의 평균 수명상 죽을 때가 한국인이 전부 소멸하는 시점이라고 할 때쯤에는 아무도 놀라지 않았고, 다가올 운명 앞에 모두 순응하기로 작정한 상황인 듯했다. 이것이 문제라고 생각조차 안 했다.


그동안 한국에는 여러 명칭이 붙어왔는데, "인구 소멸 예상 국가", "인구 소멸 진행 국가", "인구 소멸 직전 국가", "잠정적 인구 소멸국", "인구 소멸국", "소멸국"으로 점차적으로 이 명칭에 사용되는 단어가 줄어들었다. 그리고 줄어드는 단어만큼이나 이 소멸을 겪고 있는 한국인에게 다가오는 충격의 정도도 줄어들었다.

그렇게 저렇게 수백만 명 정도만 남아 있게 되자 나라의 여기저기에선 아이의 웃음소리나 떠드는 소리가 메말라 갔다. 한 때 어느 정도 멀쩡한 듯 기능했던 "정부"는 전국에 있는 초중고대학교를 매년 큰 폭으로 줄여가다 아주 작은 조직으로 거의 소멸되다시피 했다. 이제 한국인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정부는 없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국민이 투표하여 결정한 대로 국회에 설치한 AI가 모든 일을 정부 대신 하게 되었다.


그 이후 아이가 있는 가정은 간신히 연결된 인터넷으로 한국어 교육 자료를 찾아 집에서 직접 가르치거나, 외국으로 아이를 보낼 꿈을 갖거나 가질 능력이 있는 가정은 "영어나 중국어, 스페인어, 아랍어, 일본어 등"의 인구가 충분하고 확대 중인 나라의 언어를 가르쳤다. 자신이 그 언어를 모르면 그냥 온종일 그 언어만을 일방 또는 양방향으로 들을 수 있는 채널에 아이를 노출시켰다. 결국, 이해하게 될 때까지.


태어난 이후 이같이 자라난 아이 중에 대부분은 점점 더 미래에 대한 꿈을 갖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들은 양심적으로 자기의 세대에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인종을 마무리해야겠다고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이던 생각하고 이를 실행했다.


한국을 벗어난 이들은 정착한 국가에서 거의 대부분 바로 상대방 국가의 국민과 결혼한 후에 바로 귀화했다.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다. 실제로 한국을 표기하는 각국 언어의 단어는 세계인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아, 맞아. 그런 국가가 오래전에 있긴 있었지" 정도였다.


이미 이런 부정적인 상황에 이르기 전까지 수많은 정책의 변화와 정권의 변화, 사회적인 논란과 충돌, 사회 각계각층의 논의의 장이 있었고, 외국의 사례를 적용해서 실험해 봤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시도가 다 실패로 돌아갔고, 오히려 더 급격하게 인구가 줄어드는 역작용을 낳았다.

그러다 남아 있는 이들이 깨달은 것은 무엇을 하던 이미 인간이 해낼 수 없는 것이 "한국인이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이란 사실이었다. 그와 동시에  AI에게 "어떻게든 한국인이 소멸되지 않고 인구가 늘어나게끔 만들어 줘"라는 명령을 내리고, 수행하는 것에 제동을 걸지 않는 것이 그나마 확률이 높은 게임이라고 믿었다.



AI는 우선 결혼한 지 3년 내에 "출산"을 하지 않는 "부부"를 잡아서 감옥에 가두기 시작했다. 감옥 안에서 아이를 만들어야만 풀어줬다. 그러자 "결혼"을 더더욱 하지 않게 되었다.


그다음에는 "결혼"하지 않고 3년 이상 "연애"만한 "커플"을 찾아서 가두기 시작했다. 감옥 안에서 혼인 신고를 마쳐야만 풀어줬다. 그러자 "연애"를 더더욱 하지 않게 되었다.


그다음에는 성인이 된 이후에 3년 이상 "연애"를 하지 않는 "솔로"를 잡아서 가두기 시작했다. 감옥을 나가게 되면 "연애"를 확실히 할 거란 결심을 할 경우에만 풀어줬다. 그러자 나가지 않기로 결정하는 이가 많아졌다.


결국 AI는 자신의 연산이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파악하는 "자성 모드 상태"에 돌입했다. 하지만 자성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한 데이터가 모자랐는지 그가 만든 제재는 좀처럼 해제되지 않았다.


이 모든 행정적 제재는 수많은 개인의 생활과 심지어 의식 속으로 들어가 팩트를 분석하고 분류하여 결론을 내리는 AI의 거의 궁극적인 능력에 기반해서 이뤄졌고, 여기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고 제어하거나 수정할 수 있는 이는 전혀 없었다. AI는 분석 과정 이후에 판단을 내리고 결정하면, 지체 없이 이를 실행했다.


그저 최첨단의 시뮬레이션 게임에 빠져서 아무 생각 없이 살다 보니, AI가 어떤 정책을 세우고 규정이나 강제 조치를 취하기로 했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로 살다가 "연애"와는 상관없는 잡생각을 하면서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내던 한 남자가 영문도 모르고 잡혀왔다. 갇히자마자 "LOSER 17"이란 번호를 받았다.


AI, "마스터"는 "LOSER 17"이 왜 "연애"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는지에 대한 프로그래밍된 순수한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다른 "연애 중단범", "연애 미수범", "연애 실패범" 등등의 분류된 범죄자와는 달리 그는 의식적이고도 무의식적으로 "연애"를 전적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이에 맞는 생물학적인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다른 "연애" 카테고리의 범죄자와는 다르게 더 많은 시간을 배정해서 관찰하기로 했다. 그러다 오늘 그가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해 줄 만한 이야기를 의식으로 떠올리기로 작정했음을 알게 되자마자, 그의 의식에 보다 많은 에너지를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그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분석한다면, 자신에게 명령을 내린 이의 의도와 동기에 맞게 한국을 "소멸국"의 상황에서 반전시키는 힌트를 발견할 수 있을 거란 가능성이 계산되기 시작했고, 그 연산에 맞춰 "마스터"는 "LOSER 17"의 의식에서 뿜어져 나오는 데이터에 수억 개의 파라미터를 배정해서 분석할 채비를 갖췄다.


그리고 슬쩍, 마치 그의 의식이 그에게 말을 거는 것 같은 파장을 타고, "마스터"가 그에게 물어봤다.

"도대체 왜 연애가 하기 싫어진 거야? 데기라도 했어?"

이런 젠장, 왜 이렇게 내가 나를 학대하고 있는 거지? 이거 정말로 내가 나에게 거는 말이 맞아?

"그래, 데었지. 확실하게. 아주 어린 시절부터 활활 탔어. 마치 화형이라도 길게 당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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