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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연습>-박자만을 연습하다

반주가 전혀 없었어도 박자 맞추기 연습이 충실히 이뤄졌던 오전

by Roman

(표지 그림 출처: ChatGPT로 그림)


지난주에 지휘자님은 "위기의식"이란 것을 갖고 있었다. 원래는 연휴가 있는 경우 통상 적지 않은 분들이 해외여행 등을 가는 것이 요즘 추세여서 연습을 쉬고자 하는 관행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제 현충일에 이어 연휴인 오늘 6월 7일의 연습을 강행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서 참석 의사를 묻는 단톡방 투표가 각 파트별로 있었을 때, 나의 경우 휴일과 평일을 가리지 않고 연습이나 시합이 있는 농구 선수인 아들 때문에 가급적 원거리 여행을 잡지 않고 있으므로, 참석 의사를 밝힐 수 있었다.


그리고 나란 인간은 어렸을 때부터 어렵고 힘든 일이면 그걸 어떻게든 잘 해내려고 하는 기질을 갖고 있는 타입이다 보니 오히려 "Agnus Dei"와 "Lux Aeterna"를 배워서 어떻게든 내 파트를 점령하겠다는 의지가 더 불타올랐다고 쓰려다가 도대체 요즘은 왜 이렇게 잘난 체를 많이 할까 싶어졌다.


아마도 심적으로 충만하지 못한 상태여서 그렇다는 생각이 몰려들었다. 주변의 누군가가 심각하게 주변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깎아내리지 않으면 못 견디거나 반대로 자신을 심각하게 뛰어난 존재로 광고하기 시작하면 한 번쯤 의심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학교에서든 격투기 무대에서든 회사에서든 진정한 일진이나 챔피언, 유능한 인재는 주변의 평범한 이를 제압함으로써 자신이 강하다는 것을 납득시키거나 스스로 납득하려는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는다. 통상 자신과 같은 급과 도장 깨기를 청해서 승부를 본다거나 누구라도 납득할만한 결과물을 내놓는 것에 더 집중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최고의 자리를 지키는 거고 에너지 낭비를 최소화하는 거다.


그럼 내가 갑자기 나 오늘 무엇 무엇을 잘했어요라고 여기저기 살포하고 있다면 아무래도 내부적으로 어떤 결핍감이 있다는 신호다. 그리고 솔직히 그렇게 최고급으로 인정받을만한 힘이나 실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자기 자랑은 이제 영원히 안녕할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잘난 체나 자기 자랑이 없으면 그만큼 에너지가 생기지 않는 법이다. 침묵은 금이고 웅변은 은이지만 침묵만으로 큰 재물을 모을 수 없다면 웅변으로 재물을 모으는 방법이라도 시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하는 잘난 체는 이런 짓이라도 해서 내게 용기를 주고 아직 미약한 자신을 북돋아 하기 힘든 일을 성취해보고자 하는 무의식적이고도 의식적인 몸부림이다.



이 두곡이 어렵다 어렵다 하는 반응을 모두가 하고 있을 때, 어찌 되었든 이런저런 시도를 하다가 두곡을 파트별로 연습할 수 있는 악보와 파트별 음이 나온 유튜브 영상을 나와 다른 분이 발견해서 뿌렸다는 이야기를 열심히 했었다.


아침마다 듣고 출근해서도 점심시간에 산책을 하며 듣고, 퇴근할 때도 듣고, 집에 와서 심야산책을 할 때도 들었으며, 입으로 흥얼거리듯 부르거나 어딘가에 멈춰 서서 미친놈인양 흥얼거리며 불러봤다.


그랬더니 조금씩 내 파트가 전체 파트가 합창으로 나오던 반주음으로 나오든 간에 저 밑바닥에서 울리는 소리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저 내가 속한 Bass 2음만을 연습해서는 합창을 할 경우 음을 잃어버리지 않고 중간중간 놓치게 될 경우에 다시 시작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이것은 다행이었다.


그러다 하나 알게 된 것이 집에 있는 IPTV와 내 모바일폰을 연결해서 들을 경우 화면에 크게 악보가 뜨면서 합창이 나오는 동안 방에서 다른 아파트 주민이 신고하지 않을 정도의 음량으로 노랠 부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집에서야 아들이 좋아하는 곡을 연습하기 위해서 사정없이 노랠 불렀던 적이 지난 수년간 있었으므로 뒤이어 내가 목소릴 높여서 노랠 부른다고 뭐라 할 사람이 없다.


그래서 오늘 연습을 하기 전에 두 번 이 같은 시도를 했다. AI와 첨단 기기, 유튜브에 뿌려진 각종 동영상이 있는 시대에 기존의 학습 방법만을 시도하는 것은 왠지 시대에 뒤처진다는 불안감을 남길뿐이다. 아직도 직장 생활을 현업 실무자로서 하고 있는 입장에서 일도 이 같은 수단을 충분할 정도를 넘어서 활용하고 있는데 굳이 취미생활에서는 쓰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이 글을 쓰고 있는 노트북에 해당 링크를 붙여서 열어보니 굳이 집의 티브이와 연결하지 않아도 제법 큰 악보가 열리고 박자를 맞춰주면서 노래가 들리게끔 세로줄이 움직이는 것도 확인했다.


물론, 직접 훌륭한 스승으로부터 배우는 것을 이러한 수단이 완벽하게 구현해 줄 수는 없다. 하지만, 혼자 연습을 해야만 한다면 충분히 자신의 실력을 이것을 통해 스스로 조금이나마 향상할 수 있다.



그래서 나름 의기양양하게 연습을 하는 강당에 자신 있게 들어섰는데, 오늘따라 반주자님이 늦게 도착하는 정도를 넘어서 오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마치 종교의 기도문이나 법경 등을 외우는 것처럼 악보에 있는 박자에 맞춰서 가사를 읽는 훈련을 2시간 내내 했다.


직접 노래를 부르지 않고 박자에 맞춰 가사만 읽는 것이 무슨 효과가 있을 것인지 8부 합창으로 이뤄진 어려운 곡을 합창으로 연습해 보기 전까진 잘 알 수 없을 것이다. 반주를 따라 부르는 중에 박자를 같이 익히고 여러 번 같이 부름으로써 합창을 익혀가는 방식만을 경험해왔기에 나도 낯설었다.


그러나 반주 없이 악보를 읽으며 박자를 맞추는 것만 하는 데에도 이를 따라 하는 것에 곤란을 겪는 이들이 많이 나왔다. 그래서 1분~16분 음표와 쉼표에 대한 기초적인 강의가 다시 제대로 이뤄져야만 했다.


이 같은 기초부터 알고 연습하는 것이 전문가의 눈에는 혹 답답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휘자님은 말했다. 20대부터 70대까지 경력자에서 초심자까지 연습 앞에서 기초와 기본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거나 잊어버려서 혼란과 혼동을 겪고 주저 않거나 낙오하는 것을 많이 겪었기 때문에, 모르거나 하기 힘든 것을 제대로 짚고 배우는 것이 그냥 넘어가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말씀이었다.


물론, 내 기억은 이것을 잘못 추려내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메시지는 내게 그와 같이 읽혔다. 상대적으로 박자의 복잡함과 음정의 움직임이 덜한 Bass 1과 2 파트여서 그 박자를 계산해서 따라 읊는 것은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머리와 입으로 익혀진 음성이 제대로 박자를 타고 있는 느낌이 왔다. 수 번 되풀이 하면서 시행착오를 여럿이 겪었지만 끝마치고 자신을 얻었다.


반주자님이 부재하신 덕에 기초이자 반석이 되는 부분을 더 제대로 연습하고 강화한 것이 소득이다.




지난주에 비해서 확실히 더 적은 인원이 왔지만 동기 부여가 상대적으로 잘된 사람이 더 온 것이므로 돌아가는 중에 지난주에 비해서 조금은 더 자신감이 생긴 듯한 익숙한 얼굴과 대화를 했다.


여전히 어렵다는 말을 하고 있지만,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듯이, 그 목마름은 자신의 모자란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목마름이고 목을 축이고자 하면 내가 뭔가를 발견하듯이 그들도 발견할 것이다.


그중에 특히 더 어려움에 대한 우려를 이야기하시는 인생 선배분에게 되바라지게도 "찾았던 유튜브 영상의 Bass 2 파트에 남겨 놓은 글을 읽었는데요. ‘배우는 과정이 어렵기는 했지만 익힌 뒤에 얻게 된 것이 많았다'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고, 더 연습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라는 이야길 전달하고 용기를 북돋워드렸다.



오늘은 연습장으로 가는 길에 Bass 파트장님을 만나서 지난주에 조금 일찍 나서서 가족과 다녀온 "나고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기회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젊은 직장인과 사적인 내용을 가지고 심지어 휴일에 대화할 일이 있었을까란 생각을 하며, 오늘 하루 모든 것에 다시금 감사해본다.


자기개발서에서 추천한대로 매일 감사일기를 적지는 못하더라도 언제나 지금 이순간에 감사한다.

일본이나 중국풍으로 나오는게 탈이지만 Grok이 의도대로 좀 더 잘 그려주는 편이다. 사람 숫자는 달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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