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준 높은 곡을 연습하게 된 만큼 음정과 박자는 미리 익혀서 나와야 함
연습을 하면서 지휘자와 각 합창단원 간의 오해와 갈등이 당연히 벌어질 것임을 충분히 예상했었다. 신입단원은 이제야 1개월여 지휘자의 스타일을 경험하는 것이니, 겪을 충격도는 더 높다.
5월 초부터 시작된 연습은 초기에는 크게 어렵지 않은 것이 아닐까란 착시를 살짝 낳기도 했다. 그러나 두 번째의 연습이 시작됨과 동시에 밀월기는 끝나고 경험해 본 적이 없었던, 8부 파트가 균일하게 연습해야만 하는 악보 2개가 주어지니 이것을 어떻게 연습해서 제대로 부를 것인가란 물음은 둔중하게 단원 각자에게 전달되었다.
이른바 살 길을 찾기 위해 디지털의 힘을 빌려보고자 하기도 하고, 공식적으로 확인된 또 다른 모임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나를 포함한 4인의 "보이즈"라는 연습 보충 목적의 별도 모임이 생기기도 했다.
성가곡 중 하나를 연습하기 위해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박자 연습만 먼저 시작해 본바, 지휘자님의 생각만큼 미리 연습이 되지 않은 것에 당황하는 느낌을 받았다. 수차례, 미리 음정과 박자, 우선 곡 자체를 마스터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었지만, 그것이 와닿지 않은 단원분들이 적지 않았다.
이후에 이번 주에는 다행히 반주자님이 와서 Sprano 1과 2, Alto 1과 2, Tenor 1과 2, Base 1과 2의 음정과 박자를 연결하는 연습을 했다. 파트별 악보와 음원이 배포되어 있었음에도, 음정 박자를 제대로 맞추도록 하는데 예상외의 시간이 더 들어가는 것에 대한 당혹감을 느꼈다.
나역시 적지 않은 시간을 내 나름대로는 들이며 별도 연습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타 파트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음정과 박자의 변동폭이 적은 파트임에도 불구하고 헤맴이 있었다.
구구절절이 따라올 변명은 각자에게 있겠지만, 누누이 요청된 대로 이 음정과 박자에 대한 기본적인 연습은 각각의 단원이 일상생활 속에서 해왔어야 했을 부분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나가지 않고 한 달 이상 연습에 참여한 대부분의 단원에겐 곡이 어려워서 따라갈만한 수준이 아니라고 이야기할 타이밍은 이미 지나갔다.
지금까지 연습에 참여하고 있다면, 이미 이전의 자신감이 충만하게 차서 연습한 "가장 아름다운 노래"와 "Twinkle, Twinkle, Little Star"와 더불어 그레고리안 성가 2개를 합창하기로 이미 의사를 표시한 것이나 다름없다.
후원자 중에서 지원하여 뽑힌 것이다 보니, 매번 연습 때 농담만을 하고 좋은 이야기로 알아서 연습하라고만 해서는 스스로 위기의식 같은 동기부여를 하기가 어려운 분들이 많았으리라 생각한다.
설사 제대로 동기 부여를 했다고 하더라도 저마다의 직장과 가정, 이미 있는 여러 일들과 비교해서 이 금전적인 보수나 보상이 주어지지도 않을뿐더러, 기부의 연장선에서 참여하는 재능기부인만큼 물리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마음으로 여기에 집중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나 역시 이 같은 변명이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지휘자님이 다소 강경하고 강력한 언어로 목소리를 높여서 연습 중에 이야기 한 뒤에 다시 단원들을 달래고 동기부여 하는 입장에서 공식적으로 설명한 것은, 작년에 한차례 "유니세프"가 "후원자 합창단 활동"을 중단코자 했던 시도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는 내용이었다.
이 합창단의 존속은 그 같은 상황에서도 새롭게 영입된 이 지휘자님의 리더십 하에 국무총리 주최의 경연대회에 참여해서 최초 본선 진출함으로써, 단체의 명맥을 이어갈 명분을 획득하고, 참여 중인 합창단원 중에 여러 가지로 이에 영향을 끼칠 내공을 가진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참여한 분들뿐만 아니라 이미 있었던 분들에게도 연습하기 어렵고 힘든 곡들임이 분명하지만 기존 합창단의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서 한 단계 더 진보하지 않는다면, 이미 추석 이후의 경연을 하나 포기하고, 연말 공연 하나만을 계획으로 잡고 있지만 "유니세프"가 이 조직을 운영하는 취지에 부합하는 명분을 가진 단체가 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 나를 포함한 여러분들에게 위기의식을 주었다.
그리고 은근히 걱정만 하면서 설마 하게 될까 싶었던 하반기 연습에 참석할 합창단원을 별도로 뽑는 "오디션"에 대한 공지가 전체 단톡방에 더 구체적인 내용으로 왔다. 이제 긴장도가 확실히 높아졌다.
'25년 상반기 연습 결산 및 단원 조별 평정 공지
- 곡 목은 지금까지 연습한 4곡
- 1차 오디션 6/28 10-13:00
*앙상블 편성 오디션(8명/ S1.2, A1.2, T1.2, B1.2.)
*조별 인원 부족 시 타 파트 인원 중복 배치
- 2차 오디션 7/05 09-10:30
*개인 오디션(1차 오디션 미 참가자 및 탈락자)
- 진행 방식은 전년도와 동일(어떻게 했는지 물어봐야겠다)
*특별 사유자(질병치료, 본인경조사)는 총 4곡 본인 파트
개인 영상 촬영 후 지휘자에게 직접 제출
*심사결과 반영(제출기한 : 6/28~7/04)
- 평정 결과 통보(하반기 연습 및 연주 오디션 자격 미부여)
* 지각 및 결석률 반영 운영위 심의대상자
* 최종 오디션 탈락자
누가 더 재능이 뛰어나고 잘하나란 게임보다는 각 개인이 가진 성실함과 반복적인 연습과 숙련이 이 오디션의 당락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일 것 같다. 그렇다면 그렇게 열심히 하면 되겠지 싶지만, 이 난관을 그저 각자 개인적으로 겪어내기 위해 고전분투하는 것은 내가 이 합창단에 참여하게 된 개인적인 취지와는 다소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어제 연습일에 합창단 내의 사적 모임인 "보이즈"의 4인 중 한 분은 이번에 참석 못해서 뵙지 못했지만 2분을 모시고 커피를 각자 1/N로 "투썸 플레이스"에서 마시며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남겼다.
1. 합창단 연습 이후, 별도의 시공간 확보하고 연습하면 난맥상 극복에 도움이 될 것
2. 보이즈 4명의 교차 위치나 연습 장소 근처의 장소를 잡고서 음원을 틀고 1~2시간이라도 다시 반복적으로 음정과 박자, 화음을 맞춰 보는 연습 하는 것을 평일중 1일이나 토요일 연습 후 약속키로 함
3. 들어가는 비용은 모두 각 개인이 1/N 함으로써 특정인에게 부담가지 않도록 함
4. 보이즈(B1과 B2로 구성) 외에도 Alto1. 2처럼 여성 저음부 합창단원 중에 이 같은 연습에 동참 가능한 분을 찾아보거나, 기타 다른 파트에서도 이 같은 취지에 공감하면 참여 검토
5. Bass 파트장님에게도 이 같은 취지를 전달하여 피드백 확인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나이와 생업을 벗어나서 올라오는 열정을 서로 체감할 수 있는 자리였다. 그저 생면 부지의 사람이 모여서 냉정하게 능력을 평가받고 기능에 맞게만 활동하는 그런 드라이한 분위기와는 다른 분위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 이 4명의 중년 아재들이 가진 생각이다.
이런 생각에 동의하고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지 다음 주에 별도로 알아볼 것이다. 이중 2분은 다음 주에는 각각 스케줄이 있어 그 추가 연습 시공의 편성은 그다음주가 될 것 같다. 이렇게 되면, 오디션을 어떻게 잘 통과해서 계속 하반기 연습에 참여할 수 있을지 사활을 건 논의도 될 것 같다.
다음 주에는 지휘자님이 참여하지 않고, 파트장님들과 단원분들만의 연습이 있을 예정이고 다소 시간이 길어질 것이며, 파트별 심화 연습이 있을 것이란 예고가 떴다.
이런 긴장감이 일 외의 활동을 하면서도 발생하는 것이 일면 기분이 좋기도 하다. 언제나 일과 관련된 대기 상태에 집에 와서도 일에 대한 생각을 영화 보거나 책을 보거나 글 쓸 때 외엔 끊지 못했던 내게도 이런 식의 활동을 더 잘해보겠다는 의욕이 샘솟는 것은 내가 하는 후원의 의미가 가진 위상이 적어도 내겐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이전까지의 취미활동은 모두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이거나 좀 더 나아가봐야 나와 연관된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 이 활동은 그런 의미를 넘어 우리가 얼굴도 제대로 모르고 생각도 제대로 모르며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그저 상상만으로 감잡고 있는 세계의 모든 어린이를 위한 것이다.
독선적인 세계 최정상급의 지도자가 뒤집어 놓고 있는 세계 경제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은 마치 그 지도자의 권리이고 이른바 자신이 속한 국가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한 당위를 가진 듯한 그에 의해서 아무 준비가 되지 않은 그 국가의 어린이를 포함한 사회적 약자에게 커다란 고통을 선사하며, 이것은 또한 다른 국가에 있는 사회적 약자에게도 거의 즉각적인 풍파를 불러일으킨다.
지금 이 순간 어른인 나와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과 힘듦이 튼튼한 사회적, 경제적 방패를 지니지 못한 어린이게는 상상마저도 하지 못할 고통으로 전달될 것임을 나는 감잡을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 또한 위기에 봉착해 있는 어른 중에 하나이지만서도, 이 멀리에서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가련하게 여기고 애달프게 느끼는 이가 잘 다듬고 훈련된 합창을 기부 외에도 준비하고 있다는 게 보람이다.
나는 내게 여유가 있어서 이곳에서 연습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유라는 것 전혀 가질 처지조차 되지 않을 어린이를 위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없는 시간과 모자란 경제적 여유를 쪼개서 할애할 동기가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