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워했던 수준의 오디션은 아니었지만 동기부여된 인원의 실력이 향상되다
다른 파트에 비해서 내가 속해 있는 Bass 2는 상대적으로 음정과 박자가 덜 복잡한 편이다. 화음을 부여하고 무게를 잡아주며, 배경음으로 깔리면서 곡의 분위기를 잡아주는 역할에 맞게끔 한 음을 길게 여러 번 반복하면서 상대적으로 높낮이가 일정한 구간에서 예측이 용이한 음역대에서 움직인다.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가브리엘 중창단"에 가입하고 연습을 할 때부터, 원래 어렸을 때부터 낮고도 굵은 목소리를 가진 특성상 아주 높은 음역대보다는 중간과 그 아래 영역을 커버하는 것이 내 음역대란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었던 나는 Baritone과 Bass를 스스로 선택했었다.
아직 변성기가 오기 전의 목소리를 가지고 교회 성가대에 참여할 때는 Soprano와 Alto를 오가기도 했었지만, 고음역대가 내 영역이 아니라는 신념이 어느 순간부터 생기기 시작했다.
통상 Tenor를 하는 인원은 보다 미성에 풍부한 음역의 변화를 소화하면서 영화로 따지자면 주연 배우 역할을 하는 보다 훌륭한 외모에 카리스마 있는 이가 주로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왠지 그런 역할은 나와 맞지 않은 것 같았다.
주연 배우가 되기보단 주인공 옆에서 내레이션을 제공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더 마음이 편하고 안전하게 느껴졌다. Baritone도 왠지 주연배우와 존재감을 경쟁하는 서브 주연의 역할을 하는 느낌이 있는바, Bass가 더 좋았고, Bass 2나 3가 있다면 가장 낮은 음역에 위치하는 것이 좋다.
그러다 보니 의도적으로 더 낮은음을 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게 되었고, 일상에서의 목소리도 원래 굵고 큰 편인데 점점 더 낮아져 왔다. 따라서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저음부에 대해서는 자신감이 생겼다. 다들 젊었을 땐 보통 잘 선택하지 않는 영역을 노려서 내가 있을 자리를 확보해 온 것이다.
노래방 같은 곳에서 이 영역에서 상대방 노래의 보조를 맞춰주면 우의를 북돋우면서 화음까지 만들어내는 괜찮은 조화를 만들 수가 있다. 뭐, 이 시대가 이젠 노래방 같은 곳에 나이들은 아저씨를 끼워서 같이 회식 같은 것을 하는 시대가 더 이상 아니긴 하지만. 몇몇 마음 맞는 사람과의 우정에 도움 된다.
그 선택이 바로 된 것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오늘 약식으로 치러진, 대폭 선발 기준선이 내려가고, 8부 합창이 아닌 각 파트별 합창으로 음정과 박자를 점검하는 수준으로 가창 난이도 역시 줄어든 오디션을 Bass 2는 거의 단 하나의 지적도 받지 않고 통과했다.
가슴 줄이며 연습을 해왔었고, 어떻게든 8부 합창 중에 내가 부를 반주음이 들리는 동시에 그 음을 정확히 불러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의식적으로 연습을 했던 통에 결국 박자는 약간 뒤틀렸어도 음정은 그럭저럭 부를 수 있었다. 두개의 성가곡 다를 파트원 모두가 다 괜찮게 불렀다.
상대적으로 내가 속한 파트보다 최소한 부분적으로 더 복잡하고 더 변동폭이 큰 음정의 변화와 더불은 Soprano 1, 2와 Alto 1, 2, Tenor 1, 2, Bass 1도 지지난 주나 지난주에 비해서 큰 폭으로 실력이 향상되었음을 느끼도록 잘 불렀고, 복잡한 만큼 지적과 반복이 있었지만 다들 훨씬 나아졌다.
지휘자님은 그럼에도 예고했던 것에 비해서 훨씬 간소하게 치러지기는 했지만, 이 중에 한 파트의 한곡만 다음주 재시험을 요청했다. 이 상황에서 이 파트에 속한 분들의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할지는 묻지 않고도 느낌이 왔다. 이번에 오지 않거나 못 온 단원들과 2차의 약식 오디션을 치르게 된 것이다.
다들 오디션에서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것인가를 고심하는 분들이었다. 이 합창단에 속해서 계속 배우고 합창을 해 나가고 싶다는 동기 등이 충분했었기 때문에 그만큼 더 안타까움이 컸을 것이다. 연습도 게을리하지 않았고, 허투르게 살아온 분들도 아니었다. 향상 및 개선할 방법이 분명히 있으리라.
사실 Bass 파트 전체의 몇 분이 모여서, '이 오디션을 끝으로 어쩌면 다시 연습을 같이 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가정 하'에 같이 점심을 하자는 모임이 이미 예정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같이 마포 근처의 "봉평 옹심이 메밀 칼국수"에 모여서 식사를 같이 한 Bass 파트 인원은 약간의 위로와 더불어 열심히 다시 해보자 하는 자리에 모인 이들이 절로 되어 있었다.
단순하게도 내겐 당연히라도 좋을 안도감이 몰려왔지만, 동시에 잘 평가를 받지 못한 파트가 단 하나라도 있다는 것은 전체 합창단에게 꼭 좋을만한 일이 아니다란 생각이 들었다.
대다수 구성원이 통과를 했다는 안도를 느끼더라도, 다시 한번 제대로 연습을 해서 평가를 잘 받아야 할 인원에게도 용기를 불어넣어 줘야 심기일전한 이들이 제대로 포기하지 않고 연습해서 돌아옴으로써 결과적으로 온전한 합창을 만들어낼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그리고 이번에야 이런 평가를 받았지만 다른 곡을 받게 될 경우 또 다른 양상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미리 알 수가 없다. 언제나 변화하는 상황에 따라 처한 처지는 바뀔 수 있는 법이다. "새옹지마"다.
나를 포함한 4인의 "보이즈" 결성 인원 중에 3분이 Bass 1에 나 홀로 Bass 2에 있는 상황인데, 이 세분과 또한 Bass 1에 속해 있는 Bass 파트장님과 다른 분에게도 힘을 실어드리고자 점심 식사 때도 농담 섞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같이 나누다가 커피 자리도 함께했다.
다음 주에 연습장을 한 곳 예약해서 같이 연습할 자리가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Bass 파트 전체를 위해서 이 자리에도 참여하기로 했다.
어떤 양상으로든 연습은 계속될 것이고, 이런저런 해프닝과 부침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이번에는 이런 식으로 가볍게 "오디션"을 통한 필터링이 마일드하게 지연되었지만, 결국 하반기의 연습이 시작되면 경연 또는 공연에 참석할 인원을 제대로 구성하기 위한 오디션이 불가피할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도 이런 의미 있는 활동을 위해서 단순한 이해타산보다도 순수한 "후원"과 더불은 일상 차원보다 한 단계 높은 상향된 의미를 쫓기 위해 만난 우리는 이렇게 만들어진 네트워크를 통해 언제든지 또 다른 사회적인 활동을 기획하거나 만들고 서로를 지원할 수 있는 단초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단순히 더 잘 부르기 위한 합창단을 만들어 가는 것 외에도 다른 것이 더 고려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를테면 연습은 모두가 계속 참여하면서도 1군과 2군 또는 주전과 후보 제도 등을 통해 공연과 경연에 참석할 인원을 구분한다던가 하는 것이 괜찮은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살벌한 "오디션 공지"의 효과로 인해서 분명히 짧은 시간 안에 대부분의 인원의 이 "그레고리안 성가"에 대한 도전 의식이 고취되었고, 엄청난 수준의 향상이 있었다. 물론, 일정 수준 이상에 도달하기 위한 거리는 아직도 멀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결국 갈 수 있으리라.
이 합창단 내에는 서로의 순수한 취지를 응원하는 동시에 인정받는 주전 선수를 키워내는 서로 간의 암묵적인 지원이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 그래야 그 긴 거리를 때론 뛰고 때론 걸어서 이동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사족 : 오디션 전후해서 들었던 오만 잡생각 중에 일부
1. 정말로 8부 각 1명씩으로 구성해서 오디션을 보면서 평가했다면 그중에 가장 잘하는 팀이 한두 개쯤 나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중에 특출 난 팀이 혹시라도 있다면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성악 아카펠라 팀인 "VOCES 8"을 벤치마킹하여 "UNICES 8"으로 공연한다면 좋을 것 같았다.
2. https://www.youtube.com/watch?v=SuBQZFOnk7s&ab_channel=Voces8-Topic 특별히 이 동영상이 가장 Bass 2의 저음 영역이 강조된 버전의 VOCES 8의 아카펠라인데, 마음만 같아서는 이런 수준을 불러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길 정도였다. 이걸 반복해서 듣고 따라 부르려고 하면서 시도를 할 때마다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3. 하지만 진정한 전문 그레고리안 성가 전문팀을 이 비전공자가 대부분인 합창단이 비슷하게라도 따라잡을 수 있을까란 회의감도 동시에 들긴 들었다. 그러나 이렇게 흉내라도 내서 불러보겠다는 욕심이 내게 불러일으킨 동기는 나로 하여금 계속 시간을 내서 연습을 하도록 만들었다.
4. 확실한 동기가 있다면 원하는 결과에 가까운 수준을 어느 정도 성취할 수 있다. 그것이 어려서부터의 믿음이다. 목이 마른 자가 우물을 팔 수 있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자신이 "목이 마름을 정확하게 알고", 그 마른 목을 축이려면 "우물을 파는 것이 확실한 방법이다"라고 "황무지 한가운데에 있는 가뭄에 처한 이"가 자신의 현실을 깨닫는다면 "우물을 파고 물을 마실 수 있다".
5. 하지만 디지털로 만들어진 수많은 가상의 현실과 그래픽, AI가 만들어 내는 허상을 수없이 경험하고 있는 현대인은 자신에게 실제 하는 욕구가 무엇인지, 이것을 해갈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찾아 헤매게 되기도 한다. 나이가 아무리 많이 먹어도 현대인 중의 하나인 나는 언제나 헤매고 있다. 그 헤맴 속에서 지혜를 얻고 있는 50대 초반이란 나이는 이 시대의 한국에선 많은 것이 전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