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연습할 곡을 정하고, 점심 회식을 마치고 아쉽게 헤어지다
7월 28일 월요일에 이뤄진 방학 중의 "열두 번째 연습"을 진작에 썼어야 했었지만, 그날 마치고 돌아와서는 그만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그다음에라도 쓰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일상에 치여서 못했다.
연세대 음악대학교 안의 강의실에서 진행된 연습은 세곡으로 진행 예정이었으나 섭외가 가능했던 반주자님께서 한곡의 연주를 하기는 어렵다고 하셔서 2곡만을 연습했다.
적지 않은 분들이 참석해서 열정적인 분들이 반이상인 이 합창단의 적극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고, 오랫동안 잘해나갈 수 있을 거란 신뢰가 더 커지고, 이때 인사를 나누면서 본 분들과의 관계가 좀 더 돈독해지는 걸 느꼈다.
"보이즈"의 멤버 2분과는 중간에 걸어서는 20분은 족히 걸릴 지하철 역에 내려주신 고마운 단원분 덕분에 순식간에 역에는 도착했지만, 맥주집을 찾아 간단히 한잔을 마시고 헤어졌다. 그 단원분은 식품회사 직원으로, 알고 보니 연습이 있을 때마다 제공되는 과자나 커피, 차도 가져오시는 분이였다. 감사했다.
8월 26일 화요일 저녁에는 내가 다니는 회사 근처인 마포의 식당에서 "테너와 베이스" 중에 또한 열성적인 분들이 모여 회식을 했다. 이런 회식이나 수시 연습 등에 사용되는 재원은 단원이 낸 "회비"에서 충당하고, 이를 넘어가는 것은 "십시일반, N분의 1로 나눔"해서 진행한다.
식사만 하고 헤어지기 아쉬웠던 적잖은 분이 같이 십시일반 노래방을 향했고, 연령대도 적지 않은 높은 이가 노래방에 들어가서 각자의 장기를 뽐내고, 합창 때는 부르지 못했던 곡을 부르니 한 꺼풀 더 아래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고 좀 더 맘 편하게 볼 수 있게 된 것 같아. 좋았다. 시간은 길지 않았다.
이 두 가지 개강 전 이벤트를 바로바로 쓰지 않았던 것은 내가 오랜 세월 유지해 온 글쓰기 루틴의 영향이 크다. 통상 글감이 되는 영화 등을 본 뒤의 시점은 회사 일에 몰입하고 난 뒤 긴 산책 등의 일상적인 루틴을 진행하는 평일이 끝난 토요일과 일요일이다. 양 휴일 동안 글감을 기억나는 대로 쓴다.
평일 중에도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벌어진 "일"이나 통상적인 루틴과 다른 이벤트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그 루틴에서 조금 벗어나고, 생생한 기억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게 되는 경우 잘 이뤄지지 않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기억이나 맥락은 그 어떤 루틴이라도 뚫고 글을 쓰게 하지만.
오늘 9월 6일 토요일은 "마포 문화원"에서 드디어 "개강" 연습이 있고, 점심때는 전체 회식이 있었다. 새롭게 단원을 모집한 뒤에 처음으로 열리는 전체 회식이었다.
출발하는 아침, 가볍게 양말 발가락 부분이 젖어드는 많은 양의 비가 내리고 있어서, 일부 오지 못하거나 늦게 올 단원이 많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멈췄다.
지하철 역에 내려서 "마포 문화원"을 향해 올라가는 동안 맑개 게인 하늘 아래에서 유튜브를 열어 "목"을 쓰지 않고 노래 부르는 법이란 동영상을 틀어 들으며, 내용에서 나오는 대로 아래 입술과 턱만을 움직여서 발음하며 공명을 실제로 이뤄내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을 시도하면서 오르막을 걸었다.
도착해서 보니 반가운 얼굴이 여럿 보여서 인사했고,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을 알고 있는 또한 브런치 작가이시기도 한 "뮤라클"님과도 인사를 했다. 그러고 나서 시작 시간보다 조금 늦게 착착 모였다. 그 와중에 회식과 방학 중 연습 등에서 봤던 보다 익숙해진 얼굴과 인사를 나누는 것은 기쁨이 되었다.
"지휘자"님은 방학 전 상반기보다는 많이 누그러지고 전향적인 태도로 변화한 느낌을 줬다. 물론, 하반기 연습이 진행됨에 따라 다시 변화하게 될 것이긴 하겠지만. 오늘은 약간 다른 사람 같았다.
방학 동안 "파푸아뉴기니"를 재건사업 지원 등을 돕는 한국 군인 신분으로 다녀왔기 때문에 여기에 관련된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단원에게 우선은 그곳에서 겪은 이야기를 먼저 들려주기 시작했다.
설명이 용이하게 화이트보드에 중국과 한국, 일본 지도를 그리고 그 아래 호주를 그린 뒤에 그 위에 붙어 있는 "파푸아뉴기니" 섬을 그렸고, 역사적으로 마치 일본과 한국과의 관계처럼 두 섬 간의 서로 경계하고 경원시하는 내용도 살짝 언급이 되었다.
이 섬은 군부 독재나 내란 등으로 몸살을 알아오다가 이제야 환란으로부터 헤어 나와 국가 재건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많이 어려운 국가다. 마약이 군데군데에서 남용되고 있고, 공공 시스템과 국가 인프라는 매우 낙후되어 있다. 아직도 부족 간의 전쟁과 살육이 종종 일어나고, 중국에서 삼합회 소속 등의 갱단이 들어와 심각한 폭력과 범죄를 벌이고 있어 "동아시아 인종"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다.
군인 신분이다 보니 군복을 입고 바로 대응 가능한 총기를 들고 다녔지만, 그곳에서 만나서 지원하는 대상인 "어린이"는 모두가 너무 착하고 귀엽기 그지없었다는 것이 진심 어린 이야기로 들려왔다. 그 어느 나라에서도 "어린이"는 그러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그들이 공부에 찌들어 있는 게 비극이다.
문화적으로 죽은 이를 화장하거나 제대로 매장하는 풍습이 없어왔기 때문에, 죽은 이의 시체를 먹는 것은 죽은 자를 기리고 장례를 치르는 것과 같은 행위 여왔다. 그 때문에 "파푸아뉴기니"의 사람에 대한 외부 국가의 편견은 "식인종"이 사는 나라 여왔던 것이다.
그런 풍습을 사회문화적으로 변혁하기 위해 죽은 이를 화장하는 방법 등을 국가나 여러 국내외 단체가 국민에게 교육하고 있고,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마약을 남용하는 것은 국가 최고위층부터 최하층까지 만연해 있는 현상으로 오히려 국가가 국민을 통치하는 데 있어, "마약"으로 인해 인식이 흐려진 대중을 상대하는 것이 더 쉬운 바가 있다.
UN 등의 단체에서 오랜 기록과 경험을 가진 이들이 볼때 이 비극적이고 낙후된 국가의 지금 모습은 "한국 전쟁" 직후의 우리나라를 떠올리게 한다고 한다.
우리도 이만큼 끔찍하게 어려운 시대를 겪고 다른 나라의 후원을 받는 국가에서 다른 국가를 후원하는 입장으로 바뀐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으나, 실제 우리 나라에선 가난한 이나 여러 가지 이유로 어려운 이를 더 이상 도울 필요가 없다는 "제 살을 깎아 먹는 이야기"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가난"을 경험한 적이 없는 젊은이들로부터 나오고 있는 무서운 시대를 냉정하게 걸어가고 있다.
어떤 잘 나가는 국가라도 빈곤층 등의 국가 빈민으로서 사는 일정 이상, 대략 10% 이상 수준의 하층민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 계층을 방치한다고 국가 재정이 튼튼해지고 90%가 상대적으로 더 부유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외부적인 요소(세계 경제 불황, 내란 등등)로 가난에 빠진 이가 다시 자활해서 경제적인 자립을 추구할 수 있는 방안이 사라짐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점점 더 하층민의 비중이 확대될 수 있다. 하층민의 소비도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데, 그 소비마저도 사라지면 소상공인의 매출 또한 줄어든다.
또한 지원받지 못하는 하층민이 국가에 대한 위협 세력이나 범죄자화 됨으로써 사회가 더 위험해지고 낙후된다는 계산을 못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가난은 가난한 이를 단죄하는 벌이 아니다.
최근과 같은 급격한 경제사회문화정치적 격변기에 추락한 이가 순식간에 가난해질 수 있는 현실을 애써 외면하게 만들면서 사회안전망을 무너뜨리며 "파푸아뉴기니"나 "한국전쟁" 직후의 취약한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젊은 계층에서 일어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순식간에 이런 생각을 글을 쓰면서 떠올리게 되었지만, 지휘자님의 이야기는 그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글을 쓰고 있는 내게 이렇게 돌아보게 만든 것일 뿐, 그 안에는 그 같은 생각이 나와 있진 않았다. 그러나 트리거로 작용한 것이다.
그러나 지휘자님이 가진 이상은 “재능기부” 형식으로 참여한 상황에서, 연습시에 사용해야할 악보를 정식의 라이선스 루트를 통해서 구입하는 것도 자비로 충당하는데서 보인다. 여기에 음악적 지식과 기술, 재능이 맞물린 리더십이 발휘되는 바가 있는 것이다.
단원과의 직접 민주적인 논의를 통해서 지휘자님이 정해서 던진 "공연"과 연습할 곡의 목록에 대한 토론이 산발적인 단원의 의견이 나오기는 했지만, 연습 직전에 잘 이뤄져서 이미 연습을 오래 해서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 곡으로 사용하겠다고 협의한 성가곡같은 곡과 아카펠라를 제대로 들려줄 곡으로 "Twinkle, Twinkle, Twinkle"이 살아남았다.
ㅈ도 상반기 악보의 8부 합창 버전이 부르기 어려운 바가 있어서 4부 합창 버전으로 악보를 바꿨고, 그 때문에 좀 더 밀도 있게 불러야 한다는 주문이 따라왔다.
팝송ㄴㄴ는 어려움이 따를 부분이 있음을 설명했으나 그럼에도 많은 이가 알고 있는 곡이므로 부르고 싶다는 단원의 의지가 전달되며 선정되었다.
새롭게 배울 것이나 어려운 곡으로 추정되고, "아카펠라"여야만 하지만 배우기 쉽지 않은 곡을 빼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얼굴이 붉어지는 이도 없었고,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연말의 공연 진행과는 별도로 공중파 방송의 프로그램에 전원이 참석하기는 어려워, 시간이 되는 이만 참여하고, 그럼에도 사람이 많다면, 오디션을 봐서 정예만을 고르겠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부르고 나서 아직 다듬을 구석이 많고, 음을 제대로 내지 못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연습된 곡이란 느낌을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때는 모두가 자신 있는 목소리로 악보와 지휘자님의 지휘에 맞춰 불렀다. 단, 한 가지의 권고인 "다른 이가 부르는 노래를 같이 듣고 여기에 맞춰야 한다"라는 내용만을 덧붙이고, 과정에서 "잘 불렀다"는 잘 나오지 않는 평가를 받아서 몇 분이 매우 뿌듯해했다.
그러고 나서 "개강 첫날의 특권"으로 연습을 조기 종료하고 점심 회식 장소로 이동하여, 서로 담소하면서 음식을 같이 먹고, 단체 사진을 같이 찍은 뒤에 좀 더 남아 이야기를 더 하고 싶은 이들도 일부 있어 서성였지만, 말끔하게 대부분의 단원이 저마다의 일상을 향해 바쁘게 걸어갔다.
하반기에 연습을 완료해야 하는 곡은 이미 연습을 끝낸 4곡을 포함해서 11곡이다. 이중에 한국곡은 보다 짧은 시간 안에 마스터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나머지 외국곡 3개 정도는 몇 번 연습을 모여서 하고 자습을 한다면 일정 수준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게 되었다.
곡을 묶어서 1부는 빛으로 2부는 삶, 3부는 평화, 마지막 앙코르곡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구성 안에 끼워넣기를 희망하는 곡이 있는지를 지휘자님이 물어봤지만 제안은 나오지 않았다.
나 역시 그다지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단톡방에서 제안했던 곡은 "This Masquerade"와 "Copacabana"였다.
"This Masquerade"는 노래 가사의 의미와는 다르게 현대인이 남을 도움으로써 얻는 인간으로서의 본연적인 기쁨을 사회적으로 요청받는 "현실적이고 냉철하며,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절대로 손해보지 않는 포커페이스와도 같은 현대인의 가면"을 쓰고 외면하고 있다는 의미로 전달하면 좋겠다가 내가 가진 생각이지만, 굳이 이걸 구구절절이 설명하기도 어렵고, 제대로 들을 사람도 많지 않을 듯해서 그만두었다.
"Copacabana"는 마치 세상의 모든 어려움과 불합리함이 다 사라진 뒤에 여유로워진 세상이 아름다운 해변의 마을에서 벌어지는 연애놀음처럼 가볍게 흘러갔으면 좋겠다는 유머러스함과 일상적인 여유를 가진 판타지를 풀어내보자는 뜻이었으나 이 또한 경건한 합창단의 취지와는 거리가 멀 수 있으므로 입을 다물었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과 제안은 일단 말하지 않고, 돌아와서 쓰고 잊어버리는 것이 모두에게 안전하다. 그런 말은 종종 재앙을 몰고 오니까. 나만의 판도라 상자에 넣고, 볼 사람만 보게 한다.
다음 연습을 기대하며, 오늘 저녁에 벌어질 후배 직원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결혼식장 근처의 카페에 들어와 벽돌책인 "내면소통"의 잘 넘어가지지 않는 책장을 넘기며, "아메리카노"와 물을 마시면서 결혼식 시간을 기다린다.
내게 이런 삶의 여유가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다. 하루하루의 일상은 누구에게나 끔찍하고도 참혹한 전쟁과도 같은 경우가 많고, 나 또한, 그 가혹한 전쟁의 참호에서 벗어나 거리를 누비고 있다. 오늘은 새로 결혼할 새신랑에게 친절한 하루로 잘 보내고 싶다. 물론, 나자신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