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주어진 과제만을 수행하게 하는 것만이 아니다.
목표를 직접 써서 명확하게 하면 몰입이 이뤄지고 행동이 따른다.
어느덧 하반기의 두 번째 연습일이 되었다. 평일에도 항상 그렇지만은 않지만 적잖은 경우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눈을 열고 원래 일어나기 전의 시간 동안 하루 무슨 일을 할지를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듯이 그려보려 노력한다. 오늘도 일어나야 할 시간보다 먼저 눈을 뜨고, 스마트폰을 들어서 의미 없이 보내는 시간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연습하게 될 곡의 Bass 파트를 유튜브에서 찾았다.
잘 안 그려지는 경우가 더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려보려 노력하면 그 그림 비슷하게라도 하루가 만들어지곤 하니까. 시도한다. 2007년부터 거의 대부분의 평일에 작성하고 사용해 온 플랭클린 플래너에도 일단, 관성이나 습관 같긴 하지만 사명선언문이 쓰여 있고, 년 계획과 월 계획, 주 계획, 일 계획이 빼곡하게 쓰여 있다. 여기에 합창단 이야기도 상반기부터 쓰기 시작했다. 그것이 작동한다.
쓰면 대략 60%는 쓴 대로 성취할 수 있었다는 게 내 감이긴 해도 통계치와도 어느 정도 근접하는 수치다. 바로 이뤄지진 않아도 언젠가는 비슷하게 이뤄진다. 몰입이 일어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어디에 명중할지를 알고 그 방향을 향해 자신의 의식을 날리는 것이고, 그 몰입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충분한 잠과 더불어 일정 이상의 체력과 에너지를 비축하고 영 아닌 목표를 쓰진 않아야 한다.
그래도 연말에 있을 공연에, 자칫 벌어지게 될 오디션에서 최소한 떨어지지는 않고, 참여하고 싶은 것이 최소한의 나의 목표니까, 가능한 한 연습에 참여할 날짜를 놓치지 않고 참여하는 동시에, 새로운 곡을 연습하기 직전의 아침에라도 연습할 곡의 내 파트를 찾아 듣는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시간 동안 새롭게 배울 3곡의 Bass 파트를 찾아 듣고, 그 전의 어려운 두곡의 8부 합창도 들었다.
이러고 나서 도착하니 연습 시작 시간보다 40분이나 일찍 도착해 있었고, 아무도 없는 강당에서 잠시 후에 등장하는 몇 분과 더불어 지휘자님과도 인사를 나눴다. 책상을 옮겨서 합창단 연습 대열을 만들고 "유니세프의 팀장님"이 가져온 3곡의 악보를 배분해서 뒷자리에 옮겨놓고, 단원들을 위해서 온 커피 원액을 받고, 간식용 도넛을 받아 옮기고, 커피를 마시고, 시시각각 도착하는 분들과 인사했다.
그리고 연습에 앞서서 내 파트의 음을 다시 들을 수 있었다. 마음과 몸의 준비가 어느 정도 갖춰진 상태로 연습에 임하는 것은 절로 자신감과 더불은 여유를 불러왔다. '그래, 이거야, 이렇게 해야 그나마 좀 제대로 되는 거야'. 이런 자기 충족감이 일이든 취미든 수준을 높여주고 결과에 잘 다가서게 해주는 법이다. 그 믿음을 실천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던 하루였고, 노래를 부르며, 이제 누가 그렇게 하고 있는가가 "들리기 시작했다".
A. 오늘의 연습곡들
1. 가곡
한국의 아름다운 선율을 담은 이 곡은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 62마디부터의 몰아치는 부분: 복잡한 중첩과 화음 냐오면서 박자감도 중요해진다
- 딕션 포인트: "결국 온산이"에서 각 단어를 또렷하게 분리해야 한다
- "나 하나 꽃이" vs "할미꽃": 발음에 따라 곡의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지휘자님의 지적.
“나 하나꽃”이란 가사가 발랄하게 발음 되어야 하며
자칫 힘을 잃은 “할미꽃”처럼 들려선 안된다였다.
"할미꽃은 필요 없어. 나 하나꽃이에요!"* - 지휘자님의 열정적인 지도가 인상적이었다.
다만, 이 합창단에는 "할미"로 불릴 분이 있다.
그래서였는지 " "할미꽃"을 실제로 보면
매우 이쁘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삐진 "할미"분이
있을 수 있었다. 나중에라도 위로해 주시길.
2. 영어 곡
우리의 스타일로 소화해야 하는 곡이다.
- 발음 포인트:
"With me" ("위드 미"가 아닌 "윗미"로)
"perfect harmony" (각 음절을 명확하게)
"all we" ("올 위"로 발음)
- 141마디: 4분의 2박자로 변하는 지점에서 지휘자를 주시해야 한다
- 리탈단도: 점점 느려지는 부분에서 호흡을 맞추는 것이 관건
3. 파트별 하이라이트
"소프라노": 1st와 2nd의 분할이 있는 부분에서
서로 눈치를 보며 불러야 한다
"알토": 소프라노와 한 팀이라는 마음가짐으로
화성을 받쳐주는 역할
"테너": 수준 높은 연주로 지휘자님께 칭찬받았다.
신규 테너 파트장님은 항상 이어폰을 끼고 등장한다.
강박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자극받는다.
"베이스": 기초가 탄탄한 파트답게 안정적인 연주.
노익장을 과시하는 원년도 멤버 한분이 있었다.
B. 특별한 순간들
개근상 시상식
상반기 개근하신 분들에 대한 시상이 있었다. 이것이 대단한 이유는 전체 인원중 10% 미만인 점.
- 소프라노: 두 분
- 알토: 세 분
- 테너: 세 분
저마다 할 일이 있는 직장인과 가사/육아로 바쁜 분도 많이 있는 단원 구성상 개근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루를 놓쳐서 받지 못한 아쉬움에 더 큰 박수를 보낸다. 아이의 경기가 있을 땐 어쩔 수 없이 연습을 놓칠 수 밖엔 없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희생이 따르는 법이다.
C. 지휘자님의 철학
"첫 공연은 조금 메시지를 맞췄으면 좋겠다"
명동성당, 남양주 성모성지 등 평화를 상징하는 장소에서의 공연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자 하는 지휘자님의 뜻이 인상 깊었다. 종교를 떠나 평화라는 가치를 전달하고 싶다는 메시지가 마음에 와닿았다.
상징성과 의미를 가진 장소에서 공연을 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는 것은 구성원에게 이전까지의 삶에선 추구하지 못했던 도전의식을 고취하고 더 큰 에너지를 끌어낼 수 있지만, 또한 그런 것이 크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 구성원도 적잖이 있는 법이다. 하지만, 이런 방향의 목표설정은 내 기질과 맞는다.
D. 다음 시간 예고
다음 시간에는 세상을 치유하는 내용을 담은 팝송도 연습할 예정이다. 16분 음표와 8분 음표가 섞여있는 복잡한 리듬이 특징인데, 이걸 소화해 내겠다는 의지가 남녀노소 단원 상관없이 높아 보였다. 좀 더 이 시대에 가까운 곡을 도전한다는 것에는 보다 많은 이가 호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동시에 "마이클 잭슨"의 위대함도 떠올랐다.
- 공지된 연습 에티켓 reminder
V 10시 정시 시작을 위해 9시 45분까지는 도착하기
V 발성연습 후 본격적인 곡 연습 진행
V 쉬는 시간 활용해서 개인 연습도 병행하기
"첫째 시간인데 지금 기죽으면 평생 기죽어요. 지금은 막 틀려도 소리를 내봐야죠."
지휘자님의 이 말씀이 계속 귓가에 맴돈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당당하게, 그리고 즐겁게 노래하자는 메시지는 처음부터 꾸준히 같았다. 그런데, 이미 어느 정도 경험이 생겨서인지, 처음임에도 크게 틀리지 않게 맞추고 있는 거의 다 출석한 베이스 단원과 원래 잘하는 정예만으로 구성된 테너는 최소한의 음정 박자를 보다 상대적으로 빠르게 따라잡는 소프라노와 엘토만큼이나 오늘 잘했다.
이것이 상반기 동안 어려운 그레고리안 성가 2곡을 연습하면서 성장한 이들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방학 동안 에너지와 의지를 보충했기 때문에, 군대로 치자면 사기 충천한 부대가 되어 있는 상태 같았다. 이런 집단 안에서 같은 목표를 향해 전진할 수 있다는 것이 영광스럽다.
그리고 하나 더 귀에 들어온 내용은 지휘자님이 8인 정도의 다른 별도의 고난이도 곡을 연습해서 무대에 올릴 인원을 지원자를 통해서 모집해서 별도의 연습을 진행할 계획이 있고, 이에 참여코자 하는 이에게 길이 열려 있단 것이었다. 이것은 내 글에 씌여져 있는 아이디어이기도 하기 때문에, 혹시, 내가 쓴 글이 나도 모르게 이뤄지고 있는 것인가 싶었다.
동시에, 내가 "O'Fortuna"를 희망곡으로 단톡방에 올린 적이 있었는데, 이것을 기억해주었다는 것도 내겐 잔잔한 감동을 울려주었다. 이곡을 부르기 위한 강력한 음을 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머리 속 깊이 박혔다.
그럼 하반기도 즐겁게, 의미 있게 활동해 보자!
*#유니세프 #합창단 #평화를노래하다